1954년 봄, 갓 설립된 제일모직이 처음 뽑아낸 실에 붙인 이름은 ‘장미’였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아름다운 실로 국민에게 기쁨을 주자”며 첫 제품에 꽃 이름을 새겨 넣었다. 기업은 돈을 버는 조직이기 이전에 사람들에게 정신적 풍요를 주는 존재여야 한다는 철학이었다.

그리고 70년이 흐른 지금 그 ‘장미’가 실제 꽃이 되어 세계 무대에 섰다.

삼성물산 리조트부문 에버랜드는 자체 개발한 정원 장미 ‘퍼퓸에버스케이프’가 국내 최초로 일본에 수출돼 판매를 시작했다고 21일 밝혔다.

퍼퓸에버스케이프는 병충해와 기후 변화에 강하고 봄부터 가을까지 연달아 꽃을 피우는 장미다. 향기와 품종 경쟁력을 모두 갖춘 이 장미는 2022년 일본 기후세계장미대회에서 금상을 비롯한 4관왕을 차지하기도 했다.

퍼퓸에버스케이프는 일본 장미 유통 전문업체 키무라 플래닝과 독점 판매 계약을 체결하고 2년여의 증식과 품종보호출원 과정을 거쳐 올해부터 일본 전역에서 판매된다.

키무라 플래닝은 “더위와 추위에 모두 강해 초보자도 쉽게 기를 수 있는 장미”라며 “강하지만 아름다운 품종”이라고 평가했다.

삼성물산은 2013년부터 신품종 장미 개발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2만 회 이상의 인공 교배를 거쳐 40품종을 만들어냈다. 국내 정원 장미의 해외 진출은 기온 변화와 병충해 대응의 한계로 사례가 많지 않다.

에버랜드 장미 개발을 이끌어온 하호수 로자리안(장미를 키우는 사람)은 “장미 본고장인 유럽, 미주 진출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원 장미 수출은 ‘사업보국’뿐 아니라 ‘문화보국’이라는 창업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

이병철 창업주는 50년 전 민둥산이던 용인 일대에 자연농원(현 에버랜드)을 조성하며 식물과 동물, 자연을 통해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문화 공간을 만들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집이나 지어 장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얼과 문화가 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했고, “농원의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 하나에도 온갖 정성이 깃들어 있다”라고 남겼다.

이는 제조업 중심 경제 발전을 넘어서 국민의 정서와 삶의 질을 풍요롭게 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삼성이 추구해온 사업보국·인재제일·합리추구라는 이념은 기업이 이윤을 넘어 사회에 가치를 남겨야 한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 과거 실 한 타래에 담긴 염원이 이제 정원 속 장미로 되살아나, 문화와 품격을 수출하는 시대로 이어진 것이다.

에버랜드는 올해 장미축제 40주년을 맞아, 내달 15일까지 세계 720품종 300만 송이의 장미를 전시하는 ‘에버랜드 로로티’ 축제를 연다. 퍼퓸에버스케이프를 비롯한 자체 개발 장미 40종은 ‘에버로즈 향기존’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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