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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커피처럼 향수도 갈아끼워 쓴다...佛서 온 신기방기 향수템

  • 박수호
  • 기사입력:2025.05.17 16:56:37
  • 최종수정:2025.05.17 16:5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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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 반듯한 모양의 기기 위에 항공기 엔진 같은 동그란 물체가 달려있다. 동작 버튼을 누르자 하단 덮개가 스르륵 열린다. 준비된 직사각형 형태의 캡슐을 끼운다. 최대 5개까지 가능하다. 캡슐 삽입이 끝나면 다시 동작 버튼을 누른다. 열렸던 덮개가 ‘철컥’ 소리를 내며 안전하게 닫힌다.

이제 스마트폰에서 전용 앱을 실행한다. 앱 화면에는 방금 기기에 넣은 5개 캡슐의 향기 이름과 정보가 자동으로 뜬다. 라벤더, 베르가못, 샌달우드... 각 향기 이름 옆에는 숫자가 뜬다. 일명 발향(發香) 비율이다. 화면엔 이를 조절하는 세로 막대가 하나씩 보인다. 이 조절 막대를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위아래로 움직인다. 그러면 원하는 대로 향기 강도가 1% 단위로 세밀하게 설정된다. ‘라벤더 50%, 베르가못 30%, 샌달우드 20%’ 이런 식이다. 이렇게 나만의 향기가 완성된다. 앱 화면 하단의 ‘시작’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기기에서 향이 조용히 공간으로 퍼져 나오기 시작한다. 단 몇 번의 조작만으로 나만의 향기 레시피를 만들고 공간 분위기를 바꾸는 특별한 경험이 시작된다.

프랑스에서 건너온 ‘컴포즈 파리(COMPOZ Paris)’ 얘기다. 발향기기(컴포지터, Compozitor)와 26가지 천연 에센셜 오일 캡슐, 그리고 이를 조작하는 스마트폰 앱으로 구성된 이 시스템은 기존 방향제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디올과 협업해 출시한 ‘디올 x 컴포즈 디-에어(Dior x COMPOZ D-Air)’(아르티리스 제공)
디올과 협업해 출시한 ‘디올 x 컴포즈 디-에어(Dior x COMPOZ D-Air)’(아르티리스 제공)

열, 물, 알코올 ‘無’...‘건식 확산 기술’ 핵심

컴포즈 파리가 기존 방향제와 차원이 다른 경험을 제공하는 비결은 바로 ‘건식 확산 기술’에 있다. 일반적인 디퓨저나 방향제는 오일을 가열하거나 물, 알코올과 섞어 증기 형태로 확산시킨다. 하지만 이 방식은 열에 의해 오일 성분이 변질되거나 물, 알코올 때문에 향의 순수함이 희석될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잔여물이 남거나 벽 등에 묻어 얼룩을 남기기도 한다. 향초는 연소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발생할 우려도 있다.

반면 컴포즈 파리의 건식 확산 기술은 열이나 물, 알코올 없이 고체화된 에센셜 오일 자체를 극미세 입자로 분사한다. 꽃잎에서 자연적으로 향이 공기 중에 퍼져나가는 원리와 유사하다. 회사 관계자는 “그래서 자연 생체 모방 기술”이라고 설명한다. 이를 통해 오일 본연의 순수하고 섬세한 향을 그대로 공간에 전달하며 잔여물이나 잔향 걱정 없이 깔끔하고 위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회사 측은 50㎡ 공간을 8분 만에 향으로 채울 만큼 확산 속도가 빠르고 균일하다고 강조한다. 이 기술 덕분에 아코르그룹의 최고급 호텔인 래플스, 페어몬트 객실은 물론, 포시즌스 파리나 크리스찬디올의 럭셔리 스파 시설 등에서도 컴포즈 파리를 채택했다. 대외 기관 인정도 받았다. 이 기술과 디자인으로 CES 혁신상, LVMH 럭셔리 랩 혁신상,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등 국제 어워드를 휩쓸었다.

르마제스틱호텔 객실에 비치된 컴포즈파리(아르티리스 제공)
르마제스틱호텔 객실에 비치된 컴포즈파리(아르티리스 제공)

슈퍼리치 ‘은밀한 요청’...디올과 협업도

이런 ‘향기 프린터’를 만든 회사는 바로 프랑스의 ‘아르티리스(Artiris)’다. 글로벌 화장품 ODM 기업 코티(Coty)에서 함께 일했던 에메릭 위다르(Emerik Widart) 대표와 데이비드 로페즈(David Lopez) COO가 의기투합해 설립했다. 애초 이들의 사업모델은 좀 달랐다. 처음에는 초고액 자산가들을 위한 맞춤형 개인 향수 사업(업체명 아트앤상스)을 했다. 그런데 일부 VIP 고객으로부터 휴대용 말고 자신의 요트나 전용기, 별장 등 개인 공간에 ‘나만의 향’을 채워달라는 특별한 요청을 받게 된다. 넓은 공간에 원하는 향기를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제공해야 하는 도전 과제였다.

이들은 5년이 넘는 연구 개발 끝에 캡슐 커피에서 영감을 얻어 지금의 ‘컴포즈 파리 시스템’을 완성했다. 향기를 ‘음표’, 기기를 ‘악기’, 앱을 ‘지휘자’에 비유하며 사용자가 직접 ‘향기를 작곡하고 연주’한다는 개념을 브랜드명에 담았다.

이 회사 제품이 결정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크리스챤 디올(Christian Dior)과 손잡으면서다. 디올은 컴포즈 파리의 기술력을 채택해 ‘디올 x 컴포즈 디-에어(Dior x COMPOZ D-Air)’라는 이름으로 제품을 출시, 글로벌 럭셔리 시장에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현재도 다양한 명품 브랜드와 각 브랜드 아이덴티티에 맞는 맞춤형 기기를 개발하며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에메릭 위다르 대표는 “컴포즈 파리는 향기를 통해 감정을 저장하고 기억을 디자인하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제시한다”라고 소개했다.

아시아 전초기지 ‘한국’ 상륙

아르티리스는 이제 한국을 아시아 시장 공략의 핵심 거점이자 글로벌 생산 기지로 삼고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지난해 7월 아르티리스 코리아를 설립하고 장석재 대표를 선임했다. 한국 시장의 높은 기술 수용성, 럭셔리·웰니스 시장 성장 가능성, 그리고 뛰어난 제조 인프라가 한국을 선택한 주된 이유다.

한국 시장에서 컴포즈 파리 기기는 249만원, 향수 카트리지 5개는 28만원으로 책정됐다. 럭셔리 브랜드로서의 가치를 반영한 가격대다. 이에 대해 아르티리스코리아의 장석재 대표는 “컴포즈 파리는 단순한 디퓨저가 아니라 기술 혁신과 최고 품질의 천연 원료, 그리고 사용자의 감정과 웰니스를 디자인하는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제공하는 럭셔리 솔루션”이라며 “제품의 진정한 가치와 차별점을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높은 가격대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아르티리스는 소형화, 대중화 모델(COMPOZ3, COMPOZ1 등) 개발을 진행 중이며 2026년 하반기 출시를 목표하고 있다. 또한 올해 말 한국 시장에 ‘향기 구독 서비스’를 도입, 초기 구매 비용 부담 없이 컴포즈 파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 밝힌다. 마침 프랑스 공동창업자가 방한, 장석재 대표와 함께 보다 자세한 얘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장석재 한국법인 대표(좌), 데이비드 본사 COO, 에메릭 위다르 본사 대표(우).(아르티리스 제공)
장석재 한국법인 대표(좌), 데이비드 본사 COO, 에메릭 위다르 본사 대표(우).(아르티리스 제공)

Q. 컴포즈 파리 사업 모델의 차별점은?

위다르 CEO : 기존 향기 제품이 수동적으로 향을 확산시키는 방식이라면 우리는 사용자가 직접 향기의 ‘창작자’이자 ‘지휘자’가 된다는 점이 다르다. 26가지 향기 ‘음표’로 자신만의 ‘향기 악보’를 만들고 컴포지터라는 ‘악기’로 연주하며 앱으로 ‘조율’한다. 단순히 좋은 냄새를 넘어 ‘감정’과 ‘기억’을 디자인하는 도구다. 특정 감정이나 상황에 맞는 향을 선택하거나 조합하며 공간의 무드를 바꾸고 특별한 순간을 향기와 함께 저장한다. 독서, 숙면, 활력 등 기능성 향기 조향도 가능하다. 세계적인 향수 제조사 스위스 ‘지보단’과 기능성 캡슐도 개발 중이다.

로페즈 COO : 디지털 감성을 녹여낸 것도 특징이다. 앱 조작만으로 조향사들이 만든 100여개 테마의 ‘향기 플레이리스트’를 즉시 재생하거나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저장할 수 있다. 공간 인테리어는 매시간 변할 수 없지만 컴포즈 파리는 공간의 무드와 감성을 원하는 대로 디자인한다.

Q. 향기 플레이리스트라? 좀 자세히 설명해달라.

장석재 대표 : 각종 연구에서 후각은 인간의 오감 중 유일하게 기억과 감정을 담당하는 뇌 영역에 직접 연결돼 있다고 알려져 있다. 컴포즈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는 특정 감정(기쁨, 설렘, 위로 등)이나 상황(집중, 휴식, 활력 등)에 맞는 향을 선택하거나 직접 조합, 향기를 통해 공간의 무드를 변화시키고 자신의 감정을 디자인하며 특별한 순간을 기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치 스마트폰에 담긴 나만의 음악 플레이리스트처럼 그날의 분위기에 따라 원하는 향기 플레이리스트를 선택하고 재생하는 새로운 일상을 경험할 수 있다.

Q. 한국을 아시아 본부 겸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 택한 이유는?

위다르 CEO :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중 하나다. 한국 소비자는 새로운 기술과 프리미엄 경험에 관심이 많아 잠재력이 크다고 판단했다. 한국 내수시장에서 컴포즈 파리의 IoT 기술과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잘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제조 관점에서는 뛰어난 가전 제조 기술과 효율적인 공급망을 갖춰 글로벌 생산 거점으로서 매력도 높다. 한국 생산 기지를 통해 전 세계 시장에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하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Q. 한국 시장 공략 전략은?

장석재 대표 : 한국 소비자들에게 컴포즈 파리의 가치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다각적인 전략을 펼칠 계획이다. 주요 백화점, 프리미엄 편집숍 등 럭셔리 유통 채널을 활용하고, 플래그십 스토어, 팝업 스토어 운영으로 직접 체험 기회를 확대할 것이다. 디지털 채널 마케팅과 함께 ‘향기 구독 서비스’를 빠르게 안착시켜 초기 비용 부담 없이 컴포즈 파리를 즐길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한국 소비자는 기술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나만의 것’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한 점을 고려, 앱 사용 경험을 개선하고 한국적인 감성의 향기 플레이리스트 개발도 검토하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 예술가, 셀럽(유명인사) 등과 협업도 적극 진행할 것이다. 한국 시장 성공의 핵심은 컴포즈 파리가 단순 디퓨저가 아닌 ‘기술 혁신과 최고 품질, 감정과 웰니스를 디자인하는 럭셔리 솔루션’이라는 가치를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다. 럭셔리 브랜드로서 일관된 이미지 유지, 고객 신뢰 구축, 시장 변화에 대한 유연성도 중요하다.

에메릭 위다르 대표는 “소형화, 대중화 모델 개발을 진행 중이며 2026년 하반기 출시가 목표”라고 밝혔다.(아르티리스 제공)
에메릭 위다르 대표는 “소형화, 대중화 모델 개발을 진행 중이며 2026년 하반기 출시가 목표”라고 밝혔다.(아르티리스 제공)

Q. 생소한 제품인데다 가격대도 만만찮은데 시장 안착을 자신하나.

로페즈 COO : 컴포즈 파리는 최첨단 기술, 천연 재료, 혁신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럭셔리 아로마테라피 솔루션을 지향한다. 그래서 가격도 제품 개발 비용, 최고 등급 원료, 정교한 제조, 개인 맞춤화, IoT 기능 가치를 반영했다. 디올과의 협업이 성공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시장이 이런 가격 전략을 인정해주고 있다. 현재 다른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들과도 협업 중인데 이는 컴포즈 파리의 기술 위에 각 브랜드가 자신들의 가치를 더해 가격을 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다르 CEO : 가격 경쟁보다는 가치 경쟁을 통해 럭셔리 시장에서 독보적 입지를 구축할 것이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다양한 대중화 모델도 내놓을 것이다. 내년 정도면 중소형, 휴대형 등 다양한 제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향기 구독 서비스(올해 말 한국 도입 예정)를 통해 더 많은 소비자가 컴포즈 파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접근성도 높일 계획이다.

Q. 컴포즈 파리의 비전과 아시아 성장 계획은?

위다르 CEO : 궁극적 비전은 ‘향기를 통해 공간과 감정, 기억을 디자인하는 새로운 럭셔리 경험’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것이다. 후각의 힘으로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한다. 단기적으로 럭셔리 향기 시장 리더십 강화와 글로벌 파트너십 확장에 집중한다.

로페즈 COO : 아시아 시장은 중요한 성장 동력이다. 한국에 본부와 생산 거점을 설립한 것은 이 의지를 보여준다.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주요국으로 확장하고, 각국의 문화와 니즈를 반영한 현지화 전략으로 시장에 안착할 계획이다. 한국 생산 기지를 통해 아시아, 전 세계 시장에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하며 성장을 가속화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컴포즈 파리가 감성 웰니스를 위한 필수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목표다. 우리의 기술은 이제 ‘향기를 프린트’할 수 있게 했다. 이는 향기 산업 전체를 재설계하는 원천이며, 컴포즈 파리는 그 게임 체인저로서 복합 산업의 중심을 이끌 것이다.

장석재 대표 : 독서나 공부, 글을 쓰거나 연구 등을 할 때 집중이 필요한 경우, 혹은 수면을 취하려고 노력할 때 또 반대로 잠을 깨고자 할 때 등 상황별로 다양한 향기를 맡게 할 수 있다. 생체리듬, 건강관리, 슬리포노믹스(수면 산업) 등 이종 산업과 다양하게 협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링처럼 수면 품질을 측정해주는 IT업체가 있다면 이와 연동, 잠 잘 오는 맞춤형 향기를 제공하는 식이다. 한국엔 이밖에도 뛰어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기업이 많다. 이미 국내외 기업의 전략적 투자 유치 협의도 활발하게 논의 중이다. 이들과 손잡고 해외 시장 개척도 도모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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