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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팃포탯’ 전략 통했다…韓도 배우자

美·中 관세 90일 ‘일단 멈춤’

  • 명순영,베이징 = 송광섭 특파원
  • 기사입력:2025.05.16 13:07:10
  • 최종수정:2025.05.16 1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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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 관세 90일 ‘일단 멈춤’
무역 전쟁을 벌이던 미국과 중국이 파국을 피했다. ‘탐색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던 첫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상호 간 관세율을 대폭 인하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AP=연합뉴스)
무역 전쟁을 벌이던 미국과 중국이 파국을 피했다. ‘탐색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던 첫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상호 간 관세율을 대폭 인하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AP=연합뉴스)

무역 전쟁을 벌이던 미국과 중국이 파국을 피했다. ‘탐색전’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던 첫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상호 간 관세율을 대폭 인하하기로 전격 합의했다. 세계 1·2위 경제 대국 간 무역 갈등의 실마리를 푸는 첫걸음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세계 경제 위기에 대한 우려도 잦아들 전망이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 5월 10일(현지 시간)부터 이틀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무역 협상을 벌인 뒤 12일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공동성명에 따르면 미·중은 5월 14일부터 향후 90일간 상대국 제품에 적용하던 관세율을 각각 115%씩 인하하기로 했다. 이로써 미국의 대중 관세율은 145%에서 30%, 중국의 대미 관세율은 125%에서 10%로 낮아지게 됐다.

미국 측 수석대표인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은 5월 12일 “높은 관세로 인한 결과는 양국 간 금수조치에 해당하는 것이었다”며 “어느 쪽도 그런 결과는 원하지 않으며, 우리는 균형 잡힌 무역을 원한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대표단은 어느 쪽도 디커플링(공급망 분리)은 원하지 않는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덧붙였다.

중국 상무부도 “양측이 평등한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이견을 해결하기 위한 내디딘 발걸음”이라고 평가한 뒤 “(이번 합의는) 양국 생산자와 소비자의 기대뿐 아니라 양국과 세계의 공동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이번 회담을 기초로 중국과 계속 마주보고 일방적 관세 인상이라는 잘못된 처사를 철저히 고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를 통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던 양국 간 관세 전쟁이 일단은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동성명을 통해 양측은 고위급 협의체가 정례화될 것임을 예고했다. 전문가들은 예상을 벗어나는 관세 인하폭을 반기며 향후 90일간 미·중이 추가 협상 과정에서 무엇을 주고받을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타이 후이 JP모건자산운용 아시아태평양 수석시장전략가는 블룸버그에 “90일이라는 기간은 양측이 세부적인 합의에 도달하기에 충분하지 않을 수 있지만, 협상 과정에 대한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며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을 완화할지 여부와 같은 다른 조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직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추가 협상 과정에서 ‘펜타닐 관세’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지도 관심사다. 중국 외교부는 5월 14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은 펜타닐 문제를 이유로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불합리하게 두 차례나 인상했고 (이번 합의에도) 이를 유지했다”며 “중국은 두 차례 관세 부과에 모두 즉시 대응해 정당한 권익을 수호했고 이러한 조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했다.

이번 합의 이후 인하된 미국의 대중 관세율 30%에는 펜타닐 관세 20%가 포함돼 있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펜타닐을 이유로 지난 2월과 3월 두 차례에 걸쳐 중국산 제품에 총 20%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중국은 지난 2월 미국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등에 최대 15%, 3월에는 미국산 농축산품에 최대 15%의 관세를 추가로 부과했다. 또 텅스텐·텔루륨·비스무트·몰리브덴·인듐 등 핵심 광물의 수출을 통제하고 일부 미국 기업에 대한 전략물자 수출 통제 조치를 내렸다. 린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5월 14일 “펜타닐은 미국의 문제이지 중국의 문제가 아니며, 그 책임은 미국에 있다. 미국은 중국의 선의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펜타닐 관세를 부과했다며 이는 중국 이익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설명

“서로 이겼다” 자평하지만…

협상 서두른 트럼프 ‘판정패’

협상 결과를 두고 양국은 서로 “우리가 이겼다”라며 자축하는 분위기다. 중국 상무부는 이번 합의를 대등한 입장에서 이뤄진 중요한 조치라고 평가한다. 중국의 유명 논객 후시진 전 환구시보 편집장은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에서 “이번 합의는 중국의 큰 승리이고, 중국은 유일하게 미국과 협상에서 ‘평등 원칙’을 지켜낸 나라”라고 주장했다. 중국 주요 언론 기조도 이와 비슷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관세 전쟁’을 90일간 유예하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 “가장 큰 것은 중국이 시장을 개방하기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어제 우리는 중국과 (무역) 관계의 완전한 재설정(total reset)을 이뤘다”고도 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역시 “엄청난 진전이 있었다”며 “중국이 관계 정상화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미·중이 관세 유예에 합의하며 트럼프는 취임 후 전방위적으로 벌여온 주요 관세 전쟁에서 대부분 한 발 물러난 상황이 됐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캐나다·멕시코에 국경 통제와 펜타닐 유입 문제를 들어 국가 관세 25%를 부과했다가 곧 유예했다. 지난 4월 초 한국 25%를 포함해 세계 57국에 매긴 상호관세 또한 중국을 제외하고 7월까지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이어 12일 중국과의 협상으로 전 세계에 일괄적으로 추가 부과한 10% 일률관세와 자동차 등 일부 상품에 대한 품목관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관세가 축소·유예됐다. 경기 침체 확률도 낮아졌다. 골드만삭스는 미·중 관세 전쟁 완화로 미국의 경기 침체 확율을 기존 45%에서 35%로 하향했다.

다만 이번에 타결된 관세 인하 방안에 ‘90일간’이라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관세 인하폭이 시장 예상보다 크다는 긍정 평가와 달리, 미·중 간 인식 차이가 커 향후 추가 협상 과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 함께 나온다. 또한 중요한 비관세 장벽 이슈들이 합의문에서 빠져 있고, 양국 간 기본적인 입장 차이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번 합의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뉴욕타임스는 “충격적인 고율 관세가 일시적으로나마 유예된 점은 양국 기업에 축하할 만한 일이지만 관세 전쟁 후유증은 더 지속될 수 있다”며 “기업들이 유예 기간 중의 낮은 관세를 활용하려 수입 경쟁을 벌이면 해상 운임이 일시적으로 치솟는 등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중국이 보여준 ‘협상의 정석’

韓 서두르지 말고 반대급부 노려야

한국은 이미 관세 여파를 체감 중이다. 철강과 알루미늄의 1분기 대미 수출액은 각각 17%, 7%대 줄어들었다. 지난 3월 두 품목 대상 발효된 미국의 25% 관세 부과가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수출도 줄었다. 5월 1일부터 10일까지 승용차 수출은 11억22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대 감소했다. 지난 4월까지만 해도 미국 현지 대량 재고를 활용해 소비자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하지만 5월과 6월에는 관세 여파가 미칠 수 있다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미·중 관세 유예로 갈등 완화 국면에 돌입하면 한국 역시 훈풍을 기대할 여지가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협상 전략을 예의 주시하라고 조언한다. 이번 합의를 끌어낸 중국 대응은 게임이론의 고전인 ‘팃포탯(Tit for Tat)’으로 평가받는다. 상대가 공격하면 반드시 보복하지만 손을 내밀어 오면 다시 협력한다는 전략이다. 1980년대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액설로드가 개최한 컴퓨터 전략 게임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며 주목받았다. 보복으로 ‘호구’가 될 위험을 없애는 동시에 협력 이익은 극대화한다.

중국은 미국이 145%까지 관세를 올릴 때마다 단계별로 대응관세로 보복했다. 감정적이거나 지나치지 않았고, 협상 여지를 남겼다. 이후 미국이 대화로 무게를 옮기자 협상장에 바로 나와 중국 이익을 살리는 결과를 냈다. 중국 전략은 트럼프에게 아부하고 내주기만 하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중국만큼 힘이 세진 않아도 한국이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다.

미 정부가 한국에도 먼저 통상 협의를 요청한 배경에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관세 압박이 미국 예상 경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이 조급해지며 자신이 발표한 관세 정책을 스스로 뒤집는 일이 잦아졌다.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주목을 끌기 위해 충격적인 주제를 던져 기존 논의나 비판을 엎어 버리는, 일명 ‘테이블 위 죽은 고양이 전략’이 간파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 협약 체결 시 국회에 사전에 보고하도록 한 국내법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 정부는 2012년 ‘통상조약의 체결 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통상 협상에 대한 국회 감독 기능을 강화했다. 이 법은 정부가 통상조약을 체결하기 위한 협상을 시작하기 전 공청회를 개최하고 그 경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한다. 정부가 한미 통상·재무 회의 성격을 ‘협상(negotiation)’이 아닌 ‘협의(consulation)’로 규정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한국이 지켜야 할 산업은 양보해선 안 된다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반도체와 자동차·배터리 등은 우리나라 생존이 걸린 핵심 산업이다. 향후 협의가 ‘주고받기 식’ 협상으로 진전되더라도 이들 핵심 산업의 기술 경쟁력과 핵심 공급망이 훼손되는 결정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미국이 모든 수출품에 10% 기본관세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경쟁 우위 산업에서 반드시 반대급부를 챙겨야 한다는 데 통상 전문가 의견이 모인다. “급하게 협상을 서둘러 반대급부 없이 미국에 퍼주기만 하면 차기 정부에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주게 된다”는 목소리에도 힘이 실린다.

한미 통상당국은 지난 4월 워싱턴 ‘2+2’ 통상 협의 이후 실무선에서 관세 등 협의를 이어가는 중이다. 현재 관세·비관세, 경제 안보, 투자 협력, 통화 정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제를 좁혀가며 실무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통상 수뇌부도 마주 앉았다. 미국 통상 정책을 총괄하는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최근 제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장관회의에 참석했다. 그리어 대표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양자 회담을 하고 미국이 한국에 예고한 25%의 상호관세 부과 문제와 조선 등 산업 협력 문제 등을 의제로 놓고 협상을 벌였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베이징 = 송광섭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0호 (2025.05.21~2025.05.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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