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사시대 수렵 채집인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미개인이었지만 이후 농업혁명으로 문명이 생기고 국가와 관료제가 나타나면서 불평등이 시작됐다는 게 서구 사회의 오랜 통념이다. 이들의 문명론은 제국주의의 식민지 지배, 약탈적 자본주의로 인한 빈부격차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쓰였다. 진보적인 현대 학자들도 이러한 통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수렵 채집인 무리를 정치적 자의식 없는 유인원으로 취급한다. 제러미 다이아몬드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복잡한 대규모 인간사회는 위계질서와 관료제를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저명한 인류학자와 고고학자인 저자들은 이러한 서구적 문명론이 ‘틀렸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구에는 수많은 국가와 문명이 존재한다. 삶의 방식, 정치 체제, 사회 형태 모두 제각각이다.
사회의 발전 방향도 당연히 천차만별이다. 이들 전체에 ‘서구식 문명론’을 들이대는 것 자체가 ‘오만하다’는 게 저자들의 지적이다.
‘선사시대에는 인류가 평등했다’는 가정부터 틀렸다. 선사시대 수렵 채집인도 평등하지 않았다. 선사시대부터 인류의 계급이 나뉘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속속 발굴되고 있다. 유라시아 서부에서 발견한 빙하시대 수렵 채집인들의 화려한 무덤과 장신구, 튀르키예 남동부 괴베클리 테페에서 발견한 거대한 구조물이 대표적인 예다. 농경시대 이전에도 대규모 집회와 협력적 건축이 가능했으며 농업 없이도 복잡한 사회와 지위, 계급, 세습 권력이 가능했음을 시사한다.
저자들은 유럽 지식인들이 만들었다고 알려진 민주주의, 자유·평등의 이념도 서구 문명이 원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아메리카 선주민에게서 발원했다는 주장이다. 스페인 문헌에 따르면 16세기 아즈텍에 대항해 틀락스칼라와 동맹을 맺는 과정에서 스페인인은 틀락스칼라의 민주적 사회 운영 시스템에 감명받았다. 당시 유럽에는 민주주의 개념이 없었다.
이처럼 저자들은 900페이지가 넘는 책을 통해, 유럽 중심주의 역사관을 반박하는 고고학, 인류학 증거를 빼곡하게 제시한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0호 (2025.05.21~2025.05.2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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