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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태’같은 제네시스 봤나”…벤츠·포르쉐와 대결, ‘탐욕 끝판왕’ 나올까 [세상만車]

車 미학·기술의 제왕 ‘쿠페’ 곤충에서 영감받은 ‘변태美’ ‘파괴=창조’, 완전변태 추구 벤츠·BMW·제네시스도 탐나

  • 최기성
  • 기사입력:2025.05.15 12:00:00
  • 최종수정:2025-05-18 06: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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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 미학·기술의 제왕 ‘쿠페’
곤충에서 영감받은 ‘변태美’
‘파괴=창조’, 완전변태 추구
벤츠·BMW·제네시스도 탐나
곤충의 변태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퓨전 쿠페 [사진제공=포르쉐, 제네시스]
곤충의 변태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퓨전 쿠페 [사진제공=포르쉐, 제네시스]

“어차피 맛없는 신 포도일 거야.”

이솝 우화 ‘여우와 신 포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배고픈 여우가 먹음직스러운 포도를 발견하고 기뻐했지만 결국 너무 높은 곳에 매달려 있어 먹지 못했을 때 내 뱉은 말이죠.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라는 고약한 심정과는 다릅니다. 일종의 ‘정신 승리’이기 때문입니다.

신 포도 같은 이성을 대할 때도 “저 사람은 성격이 나쁠 거야, 사귀면 피곤할거야,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거야” 등 갖은 이유를 내세워 ‘자기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노랫말처럼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고 위안을 삼죠.

자동차를 예술로 승화시킨 정통 쿠페도 보는 순간 “우와!” 하고 감탄사를 터지게 만들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입니다.

쿠페는 ‘자동차 디자인과 기술의 정수’입니다. 군더더기 없는 아름다운 외관과 스포츠카 뺨치는 강력한 드라이빙 퍼포먼스를 갖췄기 때문입니다.

자동차 예술품으로 여겨지기에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없는 비싼 가격대에 나옵니다. 베이스 모델로 여겨지는 동급 세단보다도 비쌉니다.

911 카레라 4S 쿠페와 카브리올레 [사진제공=포르쉐]
911 카레라 4S 쿠페와 카브리올레 [사진제공=포르쉐]

쿠페는 동전의 양면처럼 치명적인 매력을 지녔지만 치명적인 단점도 있습니다. 예술을 위해 편의와 실용을 버린 결과죠.

정통 쿠페는 2도어 2인승이어서 불편하고 활용도가 적습니다. 베이스 모델이 된 세단보다 주행성능을 향상하고 유려한 외모를 갖추기 위해 뒤 유리가 상당히 눕혀진 날렵한 모습으로 디자인됩니다.

당연히 뒷좌석 머리 공간이 협소합니다. 전고가 낮은 쿠페들은 앞좌석에 타고 내릴 때도 불편합니다.

고성능 오픈카(컨버터블)처럼 꿈에서나 탈 수 있는 ‘남자의 로망’으로 여겨집니다.

자동차 브랜드 입장에서도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차종입니다. 디자인·기술 능력이 뛰어나야 만들 수 있는데다 수요도 한정돼 자칫 큰 손해를 볼 수 있어서죠. 정통 쿠페가 럭셔리·프리미엄 브랜드 전유물이 된 이유입니다.

결국 매출보다는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는 ‘용도’로 국한됐습니다. 럭셔리·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수천억원을 들여 애써 개발한 쿠페가 단지 예술품 영역에만 머무는 용도로만 쓰이는 것을 안타까워했습니다.

BMW M8 쿠페 컴페티션 [사진제공=BMW]
BMW M8 쿠페 컴페티션 [사진제공=BMW]

방법을 찾았습니다. 곤충에서 영감을 받은 변태(變態, 탈바꿈)입니다. 쿠페 미학은 추구하면서 가족용으로 쓸 수 있도록 쿠페를 4·5도어 형태로 변태시켰습니다. 세단과 정통 쿠페의 앙상블인 퓨전 쿠페입니다.

퓨전 쿠페 시대가 열리면서 쿠페 개념도 ‘쿠페스러운’ 차체 스타일을 가진 차라는 넓은 뜻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실용성을 추구해 예술품과는 거리가 먼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도 ‘쿠페’ 타이틀을 붙이게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쿠페 SUV는 ‘불완전 변태’에 그친 퓨전 쿠페와 달리 ‘우화’(羽化)를 거친 ‘완전 변태’에 해당합니다.

예술성과 실용성을 단순 결합(+)한 ‘쿠페+SUV’가 아니라 넘어 시너지(×)를 추구한 탐욕스러운 ‘쿠페×SUV’이기 때문이죠.

퓨전 쿠페 그 자체도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싶어 한 탐욕의 결과물이지만 보는 사람에게도 탐욕을 불러일으킵니다.

쿠페를 파괴하라, 창조적으로
벤츠 CLS [사진제공=벤츠]
벤츠 CLS [사진제공=벤츠]

정통 쿠페 파괴를 통해 퓨전 쿠페를 창조한 첫 번째 모델은 2003년 나온 메르세데스-벤츠 CLS 클래스입니다.

벤츠 CLS 클래스는 쿠페의 우아하고 다이내믹한 매력에 세단의 편안함과 실용성을 결합, 4도어 쿠페 세그먼트를 개척했습니다.

벤츠는 CLS 디자인을 재해석해 5도어 쿠페인 CLS 슈팅 브레이크도 선보였습니다.

벤츠 CLS의 동생 ‘CLA’도 소형차로 4도어 쿠페 계보를 이었습니다. 2013년 독일 아우토빌트 디자인 어워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로 선정되는 영예도 차지했죠.

퓨전 쿠페 대중화에 기여한 모델은 폭스바겐 CC입니다. 컴포트 쿠페(Comfort Coupe)의 약자인 CC는 매력적인 쿠페 외모와 성능을 갖춘 4도어 4인승 쿠페로 사랑받았습니다.

포르쉐가 911, 박스터와 카이맨, 카이엔에 이어 네 번째 선보인 모델이자 포르쉐 최초의 4인승 럭셔리 세단인 파나메라도 퓨전 쿠페 범주에 넣을 수 있습니다.

스포츠 쿠페, 럭셔리 세단, 왜건을 혼합해 포르쉐 스포츠카 유전자(DNA)는 계승하면서 세단의 안락함과 왜건의 실용성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BMW M4 쿠페 컴페티션 M xDrive 퍼스트 에디션 [사진제공=BMW]
BMW M4 쿠페 컴페티션 M xDrive 퍼스트 에디션 [사진제공=BMW]

퓨전 쿠페에 가장 적극적인 브랜드는 BMW입니다. BMW는 볼륨 모델인 3·5·7 홀수 시리즈에 이어 4·6·8 짝수 시리즈에 쿠페를 합류시켰습니다.

BMW 최초의 4도어 쿠페는 비즈니스와 레저를 모두 충족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BMW 6시리즈 그란 쿠페입니다. BMW 쿠페의 정점인 8시리즈 그란 쿠페도 나왔죠.

롤스로이스도 쿠페 정통성을 계승한 블랙배지 스펙터를 지난 13일 한국에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2도어 4인승 럭셔리 쿠페 전기차인 스펙터는 지난해 롤스로이스 전체 라인업 가운데 두 번째로 높은 수요를 기록했습니다.

스펙터의 고성능 버전인 블랙배지 스펙터의 시작가는 7억1900만원에 달합니다. 대다수 한국인에게는 ‘가질 수 없는 너’입니다.

국산차 중에서는 세계적인 자동차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의 역작이자 기아가 2011년 공개한 콘셉트카 ‘GT콘셉트’를 계승한 스팅어가 퓨전 쿠페에 해당합니다.

퓨전 쿠페로 분류하기는 애매하지만 쿠페 스타일로 멋과 품격을 강조한 세단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기아 K5도 쿠페 스타일로 호평받았습니다.

독일 유력 자동차 전문지 아우토 모토 운트 슈포트는 K5에 대해 “공격적이고, 고결하며, ‘쿠페’처럼 보인다”고 평가했습니다.

‘탐욕 끝판왕’ 쿠페의 변태는 현재진행형
롤스로이스 블랙배지 스펙터 [사진제공=롤스로이스]
롤스로이스 블랙배지 스펙터 [사진제공=롤스로이스]

세단 대신 SUV가 대세가 되자 쿠페는 SUV도 탐하기 시작했습니다. SUV에 쿠페 이름을 처음 적용한 모델은 BMW X6입니다.

BMW는 SUV인 X6를 SAC(Sports Activity Coupe)라고 부릅니다. 쿠페의 특징인 우아한 실루엣에다 SUV의 장점인 실용성까지 지녔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죠.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쿠페 SUV 인지도를 확산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BMW X6 대신 이보크가 쿠페 SUV의 원조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보크 원조는 2008년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공개된 콘셉트카 ‘LRX’입니다. LRX 디자인을 충실히 반영한 1세대 이보크는 2011년 출시되면서 쿠페형 SUV 붐을 일으켰습니다.

벤츠 GLC 쿠페는 쿠페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디자인과 스포티한 주행 성능, 다재다능한 SUV의 장점을 결합한 미드 사이즈 쿠페 SUV입니다.

벤츠 GLE 쿠페는 럭셔리 쿠페 SUV입니다. 벤츠 GLE보다 길고 넓고 낮게 설계돼 스포티하고 날렵한 쿠페 디자인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마세라티가 100년이 넘는 브랜드 역사상 최초로 내놓은 SUV인 르반떼도 쿠페 SUV 범주에 포함됩니다.

제네시스 GV80 쿠페  [사진촬영=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제네시스 GV80 쿠페 [사진촬영=최기성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

국내에서는 르노 XM3가 쿠페 SUV 시대를 열었습니다. XM3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쿠페 SUV를 대중화한 모델입니다.

XM3는 동급보다 길어진 차체를 적극 활용해 쿠페 SUV의 단점인 적재용량 부족도 해결했습니다.

지난 2015년 현대차에서 브랜드 독립한 제네시스도 럭셔리·프리미엄 브랜드로 완전 정착하기 위해 쿠페 스타일에서 더 나아간 쿠페 모델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브랜드 독립 전인 2008년 선보인 제네시스 쿠페가 브랜드 최초의 쿠페이지만 디자인, 성능, 상품성 등에서 2% 부족해 일부 마니아의 전유물에 그친 아픔을 씻어내려는 목적도 있을 겁니다.

제네시스는 2022년 엑스 스피디움 쿠페, 2023년 GV80 쿠페 콘셉트를 선보였습니다. 양산에 들어간 차종은 GV80 쿠페입니다. BMW X6, 벤츠 GLE 쿠페와 경쟁하죠.

올해 브랜드 출범 10주년을 맞은 제네시스는 당장 그대로 양산해도 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쿠페를 지난 4월 킨텍스(경기도 고양)에서 열린 서울모빌리티쇼에서 선보였습니다.

제네시스 엑스 그란 컨버터블과 함께 공개된 엑스 그란 쿠페입니다.

G90 기반으로 설계된 두 차종은 브랜드 디자인 철학 ‘역동적인 우아함’(Athletic Elegance)을 충실히 적용해 플래그십다운 존재감과 조형미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양산 가능성도 높습니다. 제네시스도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 두 차종을 내놓은 게 아니라며 양산 뜻을 내비치기도 했죠.

쿠페는 틈새시장을 공략합니다. 가격도 비싸고 상대적으로 베이스모델이 되는 세단·SUV보다 실용적이지 않으니 볼륨 모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대신 자동차 기술과 디자인 미학의 결정체답게 가슴 설레게 만드는 매력을 발산하고 브랜드 인지도도 높여주면서 조금씩 시장 파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가까이하기에 너무나 멀었지만 이제는 디자인과 기술 발전에 힘입어 더 다양하게 변태하면서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쿠페의 변태는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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