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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새로운 미래’ 찾는다...승부수 던진 이재용, 다음은 AI

이재용, AI 산업전환 흐름에 결단 삼성, 獨 플랙트 2.4조원에 인수해 업계 최고수준 냉각처리 성능 보유 AI 핵심 데이터센터 끌어들이는 수단 美이어 유럽까지...공조 삼각구도 완성 로봇∙AI∙의료기술 등 통합 생태계 구축

  • 박소라,박승주,우수민
  • 기사입력:2025.05.14 20:05:25
  • 최종수정:2025.05.14 20: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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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AI 산업전환 흐름에 결단

삼성, 獨 플랙트 2.4조원에 인수해
업계 최고수준 냉각처리 성능 보유
AI 핵심 데이터센터 끌어들이는 수단
美이어 유럽까지...공조 삼각구도 완성

로봇∙AI∙의료기술 등 통합 생태계 구축
독일에 위치한 플랙트그룹. [사진 = 플랙트그룹]
독일에 위치한 플랙트그룹. [사진 = 플랙트그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하만 인수 이후 8년6개월 만에 ‘조’ 단위 대형 인수·합병(M&A) 카드를 꺼내든 가장 큰 이유는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산업전환 흐름 때문이다.

공조는 냉방·난방, 환기, 습도 조절을 아우르는 기반 산업으로, 지금까지는 가정용 에어컨 시장과 같은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제품이 중심이었다. 하지만 공조는 최근 몇 년 새 대형 데이터센터와 기가팩토리·클린룸을 중심으로 ‘인프라 산업’으로 격상됐다. AI 확산으로 데이터센터 서버 열관리 중요성이 커지면서다. 뛰어난 반도체 성능도 냉각 없이는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삼성전자가 유럽 최대 공조기업 플랙트를 약 2조4000억원에 인수하면서 해당 산업에 깊숙이 진입한 이유다. 플랙트그룹은 독일에 본사를 둔 유럽 최대 공조 전문업체다. 플랙트는 일반 건물뿐 아니라 공항, 터미널, 박물관, 병원, 도서관, 데이터센터 등 까다로운 조건의 시설에 최적화된 솔루션을 공급해 오며 노하우를 다져온 기업이다. 특히 액체 냉각 방식을 일컫는 CDU 장비에선 업계 최고 수준의 냉각 성능을 확보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최근엔 AI 열처리 수요 급증으로 대형 고객사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가 플랙트를 택한 이유는 제품이나 부품을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용하는 환경까지 공략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만이 차량 인포테인먼트 분야를 통해 자동차 내부를 ‘삼성의 플랫폼’으로 만든 것처럼 플랙트는 AI 시대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를 삼성 사업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수단이다.

아울러 공조는 유지 보수 수요가 꾸준히 발생하는 구조여서 단발성 제품 판매보다 수익구조가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사진 = 플랙트그룹]
[사진 = 플랙트그룹]

삼성전자의 공조사업은 지금까지 ‘덕트리스’라 불리는 개별공조 위주였다. 아파트·상가·사무실처럼 비교적 단순한 공간에 제품을 공급해온 B2B 구조다. 그러나 글로벌 수요는 B2B 산업 설비로 빠르게 이동 중이다. 공조 산업 전체는 연평균 8% 성장하지만, 데이터센터 공조 시장은 연 18%로 성장 속도가 다르다. 산업용 제품은 단가와 기술 장벽 모두 차원이 다른 시장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공조 시스템은 구조에 따라 방식이 나뉜다. 건물 전체를 하나의 냉난방기로 제어하는 중앙집중식부터 공기처리장치(AHU)를 천장에 설치해 공기를 분배하는 덕트형, 실내기와 실외기를 직접 연결하는 덕트리스까지 크게 세 가지다. 삼성전자는 지금까지 덕트리스에 집중해왔고, 플랙트 인수를 통해 중앙집중식 시스템까지 사업 범위를 확장하게 됐다.

플랙트는 유럽을 기반으로 세계 60개 이상의 산업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다. 이번 인수는 단순히 기술을 보완하는 수준이 아니라 플랙트의 영업 채널과 서비스 체계, 고객 기반 전체를 한 번에 확보하게 된 셈이다. 삼성전자는 미국에선 냉난방 공조업체 레녹스와 합작법인을 운영 중이며, 이번엔 유럽 거점을 추가하면서 글로벌 공조사업 삼각 구도를 완성하게 됐다.

IT(정보기술) 업계 관계자는 “공조는 모빌리티나 IT처럼 빠르게 혁신이 일어나는 산업은 아니다”면서 “하지만 한번 점유율을 확보하면 흔들리기 어렵고 설계, 납품, 유지보수까지 이어지는 수직계열 구조가 한번 형성되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재용 회장의 ‘미래 승부수’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은 최근 수년간 AI, 로봇, 의료기술, 오디오 등 미래 산업 전반에 걸쳐 꾸준히 투자를 확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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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는 로봇 분야에서는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을 확보하며 로봇 기술력을 강화했고, AI 분야에서는 옥스퍼드 시멘틱 테크놀로지스를 인수해 자연어 처리 기반의 인공지능 역량을 확보했다. 의료기술 분야에서는 영상 분석 기반 진단 솔루션 기업 소니오를 인수했으며 오디오·전장 부문에서는 룬, 마시모 오디오사업부 등을 인수해 하만과의 시너지를 키워왔다. 개별 기술 확보를 넘어 디바이스와 서비스, 콘텐츠, 사용 환경을 아우르는 통합 생태계 구축을 겨냥한 전략적 행보라는 평가다.

한편 삼성전자가 8년 만에 단행한 이번 인수는 글로벌 투자은행(IB)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삼성전자는 이번 플랙트 인수과정에서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을 인수 자문사로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하만 인수 당시 글로벌 부티크 자문사인 에버코어 파트너스를 고용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대형 IB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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