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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 [신간]

가난한 자에게 ‘100세 시대’는 사치다

  • 반진욱
  • 기사입력:2025.04.25 10:26:46
  • 최종수정:2025.04.25 10:2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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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에게 ‘100세 시대’는 사치다
알린 T. 제로니머스 지음/ 방진이 옮김/ 돌베개/ 3만1000원
알린 T. 제로니머스 지음/ 방진이 옮김/ 돌베개/ 3만1000원

의학 기술의 발달과 경제적 풍요 덕분에 인류 수명은 대폭 늘어났다. 60살만 넘어도 장수했다는 말이 나오던 과거와 달라졌다. 이제는 100살까지도 거뜬한 ‘100세 시대’가 됐다.

그러나 모든 이가 100세 시대를 맞이하는 것은 아니다. 권력과 계급, 그리고 자본에 따라 허락된 수명은 모두 다르다. 호화로운 삶을 누리는 상위 계층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반면, 하위 계층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일찍 생을 마감한다.

평생 공공보건학자로 연구를 해온 저자 알린 제로니머스는 불공평한 사회가 개인의 건강을 서서히 무너뜨린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차별과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의 사다리 맨 밑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아프고 더 일찍 죽는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차별과 불평등에 의한 만성적인 스트레스가 신체에서 생리학적 작용을 일으켜 건강을 서서히 갉아먹는 과정을 차례로 설명한다. 불공정한 사회 구조는 시스템 하중을 그대로 받는 사람들에게 가시적이고 생심리사회적인(biopsychosocial) 스트레스를 준다. 이 스트레스가 우리 몸에서 생리학적 반응을 일으켜 노화와 만성 질환, 장애, 심지어 돌연사의 원인이 된다.

저자는 동시에 사회 구조적 억압이 개인의 신체·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웨더링(weathering)’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전적으로 ‘마모’ ‘침식’ ‘풍화’를 뜻하는 웨더링은 인종·민족·종교·계급·성별·성정체성 등에 따른 차별과 편견에 의한 반복적인 스트레스가 신체에 끼치는 생리학적 작용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나이는 같아도 반복적으로 차별을 받은 흑인 여성은 그렇지 않은 백인 여성보다 몸이 더 빨리 늙는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세포가 손상되고, 질병에 더 쉽게 걸린다. 고혈압, 당뇨, 심장병 같은 병도 더 일찍 나타난다.

책은 사회적 약자들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자세히 설명한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일수록 성공을 위해 자신을 갈아넣는다. 그 스트레스가 몸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 차별받는 약자 집단은 편견과 배제를 뚫고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다 더 많은 웨더링 가능성에 노출된다. 불공정한 사회가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때 이른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진단이다.

저자는 웨더링 작용을 중단시키는 것만으로도 사회가 한층 건강해진다고 강조한다. 불평등을 넘어 평등한 사회로 가기 위한 방안을 들려준다.

[반진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7호 (2025.04.30~2025.05.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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