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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 자금력 믿고 도발…LS, 1위 수성 ‘총력’ [맞수맞짱]

(22) LS전선 vs 대한전선

  • 김경민
  • 기사입력:2025.03.28 13:07:13
  • 최종수정:2025-04-04 08:5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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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LS전선 vs 대한전선

국내 전선 업계 ‘투톱’인 LS전선과 대한전선 간 신경전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수년째 진행된 특허 침해 소송에서 LS전선이 승기를 굳혔지만 기술 탈취 의혹 수사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 소송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평가다. 이 와중에 대한전선 모기업인 호반그룹이 LS그룹 지주사 ㈜LS 지분을 매입하면서 반격에 나서는 움직임이어서 양측 갈등이 한 치 앞을 모르는 안갯속에 빠졌다.

LS전선 특허소송 2심 승소

1심 때보다 배상액 3배 늘어

특허법원 제24부는 최근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상대로 제기한 부스덕트 특허 침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에서 “대한전선이 LS전선에 15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앞서 2022년 9월 나온 1심에서도 LS전선이 승소했는데 당시 배상 금액(4억9000만원)보다 3배가량 늘었다. 부스덕트는 대용량 전력 배전 시스템으로 건축물에 전기에너지를 전달하는 장치다.

부스덕트 특허소송은 LS전선과 대한전선 간 갈등에 불이 붙게 한 ‘전초전’ 격이다. LS전선은 2019년 당시 대한전선이 제조, 판매하는 ‘부스덕트용 조인트 키트’ 제품이 특허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조인트 키트는 개별 부스덕트를 연결해 전류 흐름을 유지하는 부품을 의미한다. LS전선은 조인트 키트 외주 제작을 맡았던 하청 업체 직원이 2011년 대한전선으로 이직한 후 대한전선이 유사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대한전선은 “부스덕트용 조인트 키트가 너트의 파지 여부에 따른 볼트 체결 방법, 도체와 절연판 접촉 여부 등의 차이가 있다. 미국, 일본 등의 사례를 참고했다”고 항변한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승소한 LS전선은 “기술력과 권리를 인정한 중요한 결정이다. 임직원들이 수십년간 노력과 헌신으로 개발한 핵심 기술을 지키기 위해 엄중히 대처해나갈 계획”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대한전선은 “설계를 변경한 조인트 키트를 수년 전부터 사용해온 만큼 이번 판결이 부스덕트 사업에 주는 영향은 없다”며 애써 표정관리 중이다.

사진설명
LS전선 강원 동해사업장(위)과 대한전선 충남 당진케이블 공장 전경(아래). (LS전선, 대한전선 제공)
LS전선 강원 동해사업장(위)과 대한전선 충남 당진케이블 공장 전경(아래). (LS전선, 대한전선 제공)

해저케이블 기술 분쟁 격화

대한전선 혐의 나오면 소송 가능성

LS전선이 승기를 잡았지만 양측 소송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경찰이 대한전선의 LS전선 해저케이블 기술 탈취 의혹을 수사 중이기 때문이다.

경기남부경찰청 산업기술안보수사대는 지난해 6월부터 LS전선이 보유한 해저용·장거리 초고압직류송전(HVDC·High voltage direct current) 케이블 등을 생산하는 공장 설계 노하우가 건축설계 회사인 가운종합건축사사무소를 통해 대한전선에 유출된 정황을 수사 중이다.

가운건축은 20년 넘게 LS전선의 케이블공장 건설을 도맡아온 업체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LS전선이 강원 동해시에 지은 해저케이블 1~4공장 설계 프로젝트를 맡았다. 이후 지난해 5월 준공한 대한전선의 충남 당진공장 설계에도 참여했다.

경찰은 가운건축이 LS전선 노하우가 담긴 공장 도면을 대한전선 당진공장을 지을 때 활용했는지를 들여다보고 있다. LS전선 동해3공장과 대한전선 당진1공장의 내외부 설계가 비슷하게 설계된 배경을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공장 내부 설계와 기계 배치 방식은 케이블 공장의 핵심 노하우로 손꼽힌다. 대한전선 측은 “공개경쟁입찰을 통해 가운건축을 설계 업체로 꼽았다”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한다. 경찰은 올 상반기 내 조사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경찰 수사 결과 ‘기술 유출’로 결론이 날 경우 LS전선이 대한전선을 상대로 전면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LS전선은 2007년 전 세계에서 4번째로 초고압 해저케이블을 개발하고, 2009년 국내 최초 해저케이블 전용 공장까지 준공했다. 고전압 해저케이블 기술은 중저압 케이블에 비해 작동 속도, 내구성이 우수해 해상풍력발전의 고부가가치 기술로 평가받는다.

특히 LS전선이 2008년부터 해저케이블 사업에 투자한 금액이 1조원에 달하는 만큼 대규모 민사소송을 낼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앞서 LS전선은 “대한전선의 기술 탈취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국내외에서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대해 대한전선 측은 LS전선의 해저케이블 기술을 침해하거나 활용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전선 관계자는 “공장 레이아웃은 해외 설비 업체로부터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핵심적인 기술 사항이 아니다. 기술 침해 목적으로 경쟁사의 레이아웃과 도면을 확보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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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 ㈜LS 지분 매입

소송전 유리한 고지 선점 포석?

양측 소송전이 격해지는 상황에서 또 다른 변수가 생겼다. 대한전선을 계열사로 둔 호반그룹이 수차례에 걸쳐 LS그룹 지주사 ㈜LS 주식을 3%가량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지분율은 5% 미만으로 공시 의무가 없어 정확한 수치는 베일에 싸였다.

호반그룹의 주식 매입 소식이 알려지면서 ㈜LS 주가는 3월 14일 하루에만 18.96% 오른 12만1000만원에 장을 마쳤다. 이후 등락을 거듭했지만 11만원대를 유지하는 중이다(3월 26일 종가 11만5800원). LS전선은 비상장사로 모회사인 ㈜LS가 지분 92.26%를 보유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호반그룹이 LS그룹을 압박하고 소송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지분 3% 이상을 확보한 주주는 기업의 임시 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하고 이사·감사 해임 청구, 회계장부 열람권 등을 행사할 수 있다. 회계장부 열람권은 회사 경영진에 대한 형사 고소나 민사소송의 전제 절차로, 증거 수집에 활용되거나 경영권 분쟁이 일어날 때 활용할 수 있는 핵심 수단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전선이 정정당당하게 기술 경쟁을 해야 하는데, 소송전이 불리해지자 호반그룹의 막대한 현금을 활용해 LS를 견제하면서 소송전에서 우위를 점하려 하는 것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보낸다. 호반그룹 측은 “㈜LS 지분 매입은 투자 목적일 뿐이다. 건설 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전선 산업 분야 투자를 늘리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편에서는 LS 지분구조가 워낙 취약해 호반그룹이 이참에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나서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온다. LS그룹 오너 일가가 보유한 ㈜LS 지분율은 과반에 한참 못 미치는 32.1%로, 지분가치는 1조25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오너 일가 중 가장 지분이 많은 구자은 LS그룹 회장 지분율도 3.63%에 그친다. 나머지 지분은 자사주 15.1%, 국민연금 12.1%, 기타주주 40.7% 등이다. 기타주주들이 보유한 지분 40.7%를 사들이는 데 드는 비용도 1조6000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경영권 분쟁이 본격화하면 주가가 뛰어 인수 비용이 늘어날 수 있지만, 호반건설 자산이 넉넉해 ‘실탄’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2023년 말 기준 호반그룹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는 1조6225억원에 달한다. 실제로 활용 가능한 실탄은 4조원을 넘어선다는 관측도 나온다.

장재혁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호반그룹의 LS 지분 매입 과정에서 외부 주주가 참여하면 LS 지배구조가 흔들릴 여지를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처럼 두 회사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배경은 뭘까. 글로벌 전선 시장이 급성장하는 상황에서 양측 시장점유율 격차가 점차 줄어든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LS전선은 국내 전선 업계 부동의 1위를 지켜왔고, 대한전선은 2위를 달린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20년까지만 해도 국내 5개 전선사 매출에서 LS전선이 차지하는 비중, 즉 시장점유율이 50%였다. 대한전선은 절반에도 못 미친 22%에 그쳤다. 이후 대한전선 점유율이 점차 높아지면서 지난해 3분기 기준 LS전선 점유율은 37.6%까지 떨어졌다. 같은 시기 대한전선 점유율은 29.3%까지 늘었다.

다만 아직까지 매출, 영업이익 등 경영 지표 격차는 꽤 크다. LS전선은 지난해 매출 6조7653억원, 영업이익 2745억원을 기록했다. 국내 전선 기업 기준 최대 매출이다. 대한전선은 지난해 매출 3조2913억원, 영업이익 1152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이 3.5%에 달할 정도다. 대한전선 매출, 영업이익 모두 LS전선의 절반 수준에 그치지만 워낙 성장세가 가파르다는 점이 변수다.

국내 최초 전선 기업인 대한전선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부동의 선두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무리한 사업 확장을 시도하며 경영난을 겪었다. 이후 사모펀드인 IMM프라이빗에쿼티에 매각됐고 2021년 1월 호반이 IMM이 보유한 대한전선 지분을 매입한 이후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호반그룹의 과감한 지원으로 재무구조가 안정되자 넉넉한 현금을 바탕으로 공격 경영에 나섰고 어느새 LS전선을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기준 대한전선 신규 수주는 3조7000억원에 달했고 수주잔고도 2조8000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 중이다.

유재선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전력 수요가 늘면서 송전 설비뿐 아니라 초고압 케이블 수요도 증가해 중장기 수주 확대가 기대된다”며 “올해 대한전선 매출은 전년 대비 9.7% 증가한 3조6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LS전선은 1위 수성을 위해 해저케이블 시장 공략에 승부수를 던졌다. 해저케이블은 통신, 전기 전송을 위해 바다 아래에 놓는 케이블이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글로벌 전력망 수요가 늘면서 세계 각국이 해상풍력발전 사업에 뛰어들자 급속도로 성장하는 추세다. 영국 시장조사 업체 CRU에 따르면 전 세계 해저케이블 시장 규모는 2022년 49억달러(약 6조4000억원)에서 2029년 217억달러(약 29조5000억원)로 치솟을 전망이다.

특히 미래 먹거리로 HVDC 사업을 적극 육성하는 모습이다. HVDC 케이블은 교류(AC) 케이블보다 대용량 전류를 멀리 보낼 수 있고 손실률도 낮다. 글로벌 시장 장거리 송전망, 해상풍력 투자가 늘어나는 데다 재생에너지, 슈퍼 그리드(국가 간 전력망 연결) 확대로 장거리 전력 전송의 핵심 기술인 HVDC 케이블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 전망이 밝다.

LS전선은 2007년 국내 최초로 HVDC 케이블 기술을 개발한 이후 충남 당진, 제주 일대에서 HVDC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해왔다. 영국, 독일 등 유럽에서도 3조원 이상 HVDC 수주 실적을 올렸다.

대한전선도 발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국내 최초로 500㎸ 전류형, 525㎸ 전압형 HVDC 지중케이블 시스템을 개발하고 국제 공인 인증을 취득했다. 지난해 5월에는 충남 당진 해저케이블 1공장 1단계 건설을 완료했다. 2027년까지 2공장을 준공하는 것이 목표다. 해외 사업도 키우는 중이다. 지난해 9월 미국에서 320㎸ 전압형 HVDC 케이블을 처음 수주했다.

CEO 경쟁 구도도 눈길

구본규 vs 김대헌 오너 일가 경쟁

양측 경쟁이 격화되면서 CEO 경쟁 구도 역시 눈길을 끈다.

LS전선을 이끄는 인물은 구본규 사장이다. 구자엽 LS전선 회장 장남인 그는 미국 퍼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2007년 LS전선 미국법인에 입사한 후 차근차근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2010년 LS일렉트릭 자동화 아시아퍼시픽 영업팀장, 2019년 LS엠트론 경영관리 최고운영책임자(COO), 2021년 LS엠트론 CEO를 거쳐 2022년 초 LS전선 CEO(부사장)를 맡았다. 2022년 말 사장으로 승진한 뒤 회사 성장세를 이끌어왔다. 구본규 사장은 최근 ‘밸류업 데이’ 행사에서 “2030년 매출 1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밝혔다. 구본규 사장은 구자은 LS그룹 회장에 이은 차기 총수 후보로 이름을 올릴 정도로 그룹 내 위상도 탄탄하다는 평가다.

대한전선을 이끄는 인물은 호반건설 출신인 송종민 부회장이다. 2000년 호반건설에 입사해 호반그룹 재무회계, 경영 부문을 두루 거쳤다. 다만 재계에서는 대한전선 경영 전반을 챙기는 실질적인 인물은 김상열 호반그룹 창업주 아들인 김대헌 호반그룹 기획총괄사장이란 평가가 나온다. 김대헌 사장은 2011년 호반건설주택에 입사해 경영 수업을 받아왔다. 2013년 호반건설로 자리를 옮겼고, 2017년 호반건설 미래전략실 전무를 맡을 당시 호반건설의 주요 M&A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2020년 말 인사에서 호반건설 기획 부문 대표 사장으로 승진했고, 호반그룹 기획총괄사장도 맡았다. 다만 송종민 부회장, 김대헌 사장 모두 전선업 경험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김경민 기자 kim.kyungmi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3호 (2025.04.02~2025.04.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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