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30 11:01:14
올해 IMF 쿼터 조정 앞두고 미·중 의결권 확대·견제 치열 美에 ‘IMF 의결권=달러 패권’ 中, 경제대국 비례 확대 요구 16% ‘절대반지’ 가진 美에 유일한 변수는 ‘트럼프 발작’
지난달 말 중국의 중앙은행인 인민은행 총재가 미국 워싱턴 국제통화기금(IMF) 회의에서 ‘쿼터’를 조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회원국 경제력을 평가해 IMF에 얼마를 출자할지 금액을 정하는 이 쿼터는 곧 IMF 정책 결정에서 ‘의결권 파워’로 연결됩니다. 많이 낸 만큼 의결권을 넉넉하게 인정합니다.
중국은 거대해진 경제력과 비교해 이 쿼터가 너무 낮다고 투덜대며 재조정을 요구해왔습니다.
만약 중국의 요구대로 올해 쿼터 재조정이 이뤄져 중국과 신흥경제국 쿼터가 대폭 확대되면 ‘워싱턴 컨센서스’로 불리는 IMF의 미국 패권에 역사적 사건이 될 것입니다.
관세전쟁에 묻혀 대중의 관심이 크지 않지만 IMF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미·중 간 ‘찐’ 밸런싱 게임을 소개합니다.
아마도 1997년 환란을 겪은 한국인의 머릿속에는 워싱턴 컨센서스라는 용어가 씁쓸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IMF에 가장 많은 출자금을 내는 최대주주로써 미국은 IMF 특별인출권(SDR)을 통해 달러 기축통화 지위를 공고히 해왔습니다. 여기에 더해 이사회 결정에서도 가장 큰 의결권 파워로 개발도상국 구제금융에 실력을 행사해왔죠.
여기에서 SDR란 IMF 회원국들이 외환 위기 등을 겪을 경우 담보 없이 달러화 등으로 인출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SDR는 기축통화인 미 달러화를 포함해 5개 통화로 구성됩니다. 외환위기 때 우리 정부는 IMF에 155억 SDR를 요청했고 달러화로 환산해 총 210억 달러의 구제금융이 제공됐습니다.
중국은 2015년 IMF 집행이사회를 통해 SDR 통화 바스켓에 새롭게 위안화를 추가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후 10년이 흘러 중국은 세계 2위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몸집에 맞는 확실한 쿼터 할당과 이에 연동하는 의결권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비록 트럼프 관세전쟁이 일으키는 거대한 소음에 묻혀 조용한 듯 보이지만 IMF 쿼터를 바꾸려는 중국의 의지는 최근 미 달러 패권이 관세전쟁으로 흔들리면서 더 강해지는 분위기입니다.
관련해서 미국 브라운대 연구팀이 최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현행 쿼터 계산은 선진국에 유리한 평가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위 이미지에 복잡하게 설명된 공식을 단순화하면 IMF 쿼터 공식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GDP는 시장 환율(exchange rates) 기준 60%, 구매력 평가(PPP) 기준 40%를 혼합하는 방식입니다. 일반적으로 시장 환율로 환산할 경우 저소득 국가의 국내총생산은 과소평가되고 고소득 국가는 과대평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브라운대는 빅맥지수 같은 PPP가 아닌 시장 환율 중심으로 경제력을 환산하다 보니 신흥국 의결권이 축소되는 편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산식에 포함되는 경상수지의 개방성에서도 세계 자본 흐름과 유동성, 그리고 글로벌 자산과 부채를 표시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통화일수록 높은 점수를 받아 선진국 쿼터에 확장 편향될 수 있습니다.
이런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팀은 임시로 쿼터를 늘려 중국을 비롯해 최빈국들에 쿼터를 보상하는 메커니즘이 필요하다고 제시합니다.
미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도 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의결권을 기대하는 글로벌 사우스(아시아·중남미·중동·아프리카 신흥경제국) 열망과 막대한 기여를 하는 선진국 간 좁힐 수 없는 틈이 존재한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를 풀 돌파구는 복잡한 산식이 아닌 ‘상호 신뢰’ 기반의 정치적 합의뿐이라고 지적합니다.
문제는 작금의 지정학적 경쟁 상황이 신뢰보다는 불신과 반목으로 대체되고 있어 상대적 분배를 변경하는 정치 합의를 이루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죠.
한편으로는 탄소 배출량을 쿼터 공식에 새롭게 반영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습니다. 이 경우 탄소를 많이 뿜어내는 미·중 경제의 의결권이 축소되고 상대적으로 글로벌 사우스 국가 의결권이 확대되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특히 중국의 패권을 견제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반발이 불 보듯 뻔하지만 백번 양보해 이런 외부 평가를 반영하고 새 쿼터 도입안이 마련되더라도 미국의 손가락에는 이를 거부할 절대반지가 있습니다. 16%가 넘는 의결권 파워가 그것입니다.
IMF의 모든 결정은 회원국 85%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 승인되기 때문에 미국 한 나라의 반대만으로 도입안은 무력화합니다.
IMF 사이트를 확인한 결과 미국은 830억 달러의 SDR를 확보하며 회원국 중 가장 많은 16.49%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은 이에 한참 모자라는 6.08%입니다.
이처럼 미국 한 나라의 거부만으로 쿼터 재조정은 성취 불가능한 목표이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근 중국 인민은행장은 쿼터제 변경에 날을 세웠습니다.
중국이 이처럼 실현 불가능한 목표에 목을 매는 이유는 ‘트럼프’ 변수 때문으로 보입니다. 더 쉽게 말해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그가 ‘발작 버튼’을 누르길 기다리는 것이죠.
주지하듯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과도한 분담금을 요구하는 반면 글로벌 상관행을 교란하는 중국을 관대하게 대한다며 글로벌 다자주의 시스템을 혐오해왔습니다.
그래서 취임과 동시에 파리 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고 세계무역기구(WTO),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겨냥해 사사건건 탈퇴 엄포를 늘어놓습니다. 트럼프 2기에서는 탈퇴 위협 목록에 세계은행과 IMF가 새롭게 추가되는 분위기입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세계은행과 IMF의 최대주주로써 현재 이들 기구에 요구할 개혁 과제를 발굴해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 개혁 목록에서 그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은행과 IMF 탈퇴라는 최악의 발작 버튼을 누를 가능성까지 중국은 상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손대지 않고 쉽게 코를 풀 수 있죠.
과연 중국의 소망대로 트럼프가 발작 버튼을 눌러 IMF의 최대주주가 바뀌는 격변을 초래할까요. 아니면 스콧 베선트 재무 장관 등 그나마 현실을 직시하는 참모들의 말을 듣고 엄포만 놓다가 끝날까요.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 IMF 탈퇴를 감행할 경우 미 달러화에 대한 글로벌 신용도 추락 등 후폭풍이 워낙 커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지 않아 보입니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이 행동에 나서려 해도 관세전쟁 이상으로 백악관 참모들과 월가의 큰손들이 가만 있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은 IMF에서 꿈꾸는 의결권 확대가 실패하더라도 이미 현 국면에서 많은 전리품을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트럼프 2기에서 미국의 변절과 이기주의에 질린 선진국들의 ‘탈미국’화가 중국 국익에 도움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십 년이 걸려도 모자랄 워싱턴 컨센서스 기반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고 대체 세력으로 ‘베이징 컨센서스’를 구축할 수 있는 힘이 모이고 있습니다.
기존 중국이 연대와 협력에 공을 들인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은 물론 최근 바이든 정부에서 날카롭게 대립하던 유럽연합(EU)이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쇼크’에 질린 동맹들의 태세 전환 등 급격한 탈미국화가 중국에 위기가 아닌 기회로 둔갑하며 새로운 데탕트(긴장 완화) 국면을 조성하고 있는 것입니다.
취임 100일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ABC 방송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의 위기를 묻는 말에 “위대한 시기가 다가올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트럼프가 자화자찬하는 이 순간에도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신뢰’와 ‘연대’라는 소프트파워는 썰물처럼 빠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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