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로당구선수다③]이영주 와일드카드로 1부투어行 “운명처럼 휴가와 PBA트라이아웃 일정 겹쳐” 이라크 연봉 7000만원, 당구때문에 포기 쉽지않았다 “간절한 만큼 열심히 해야죠. 하루 8시간씩 맹연습”
[편집자주] 지난 4월 21일부터 1일까지 진행된 PBA(프로당구협회) 트라이아웃에서 48명의 프로당구선수가 탄생했다. 이번에 프로당구선수 타이틀을 획득한 주인공들은 올해 67세인 왕년의 고수도 있고, 동호인 출신도 있다. 또한 선수활동을 중단했다가 프로당구 출범을 계기로 다시 큐를 잡은 선수도 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프로선수가 된 주인공들을 만나봤다. 세 번째는 프로당구선수가 되기 위해 바다를 건넌 이영주 선수다.
[MK빌리어드뉴스 최대환 기자] ‘프로당구 선수’ 이영주(42)는 PBA트라이아웃 참가하는 것부터 사연이 많았다. 그는 지난해까지 안양연맹 소속으로 선수생활했다. 그 무렵 프로당구 소식을 듣고 출범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생각보다 프로당구 출범이 늦어졌고, ‘돈 벌기’ 위해 8개월 전(작년 8월)이라크로 떠났다. 이라크 현지 석유회사에서 일하던 이영주는 미리 잡아놓은 휴가날짜가 운명처럼 트라이아웃 경기일정과 겹쳐 프로당구 문을 두드리게 됐다.
그렇게 출전한 트라이아웃은 쉽지 않았다. 조별리그를 무난하게 통과했지만 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패해 2차전을 기약해야 했고, 2차전에서도 마지막 관문에서 승부치기 끝에 아깝게 패했다. 하지만 마지막 경기에서의 선전으로 와일드카드를 획득, 극적으로 ‘프로당구선수’ 타이틀을 따냈다. 이영주는 프로선수가 되자 미련없이 연봉 7000만원 이라크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요즘은 하루 7~8시간씩 맹연습하며 투어 개막을 기다리고 있다. 그와 전화로 얘기를 나눴다.
이영주가 자신의 연습구장에서 큐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영주는 "아직도 프로당구선수가 됐다는 것이 실감도 잘 안 나고 얼떨떨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이영주 선수)
▲트라이아웃을 통과해 프로당구 선수가 됐다. 지금 일주일 정도 지났는데 어떤 기분인가.
=아직도 실감이 잘 안나고 얼떨떨하다. PBA 개막전을 치르고 나면 실감이 나지 않을까.
▲지난해까지 선수생활하다 생계유지를 위해 이라크로 떠났다고 들었다.
=맞다. 생계유지를 위해서였다. 작년부터 프로당구가 출범한다는 얘기를 듣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늦어졌다. 그래서 버티기 힘들었고, 슬럼프도 길어졌다. 마침 이라크에 괜찮은 일자리가 생겨 떠났다.
▲당구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지는 않았나.
=사실 이라크에 갈지 말지 고민을 많이 했다. 그 동안 나름 열심히 선수생활을 해왔고, 프로당구가 생긴다는 얘기도 들으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다. 프로당구는 당구치는 사람들에게는 꿈 아닌가.
▲이라크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
=석유를 만드는 회사에 있었다. 난 현장 인력을 관리감독하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PBA 트라이아웃 소식을 듣고 이라크 현지에서 휴가를 냈다고 하던데.
=이라크에서는 선발전 얘기만 들었고 언제 하는지도 몰랐다. 휴가날짜는 미리 잡아둔 것인데 운 좋게 트라이아웃과 겹쳤다. 일부러 의도했던 건 아니었는데, 운명인가. 하하.
▲그런데도 처음에는 출전을 망설였다고.
=이라크에 간지 8개월 정도 됐는데 그 사이에 거의 공을 치지 않았다. 공백기도 길었고, 그 공백기를 상쇄할 만한 연습시간도 부족했기 때문에 참가를 망설였다. 그러던 차에 평소 친분이 있던 구민수 선수가 ‘한번 나가봐야하지 않겠냐’라며 권유했다. 그래서 2부투어라도 참가 해보자는 생각에 출전을 결심했다. 트라이아웃에 참가할 때도 ‘내가 설마 되겠어’라는 생각에 반신반의했다. 하하.
1년 가까이 큐를 손에서 놓다시피한 이영주는 짧은 시간 동안 트라이아웃 참가를 준비하면서 맹연습과 함께 정신무장을 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사진은 PBA 트라이아웃 경기 도중 스트로크를 준비하고 있는 이영주.
▲외국에서 한국까지 날아와서 트라이아웃에 참가한 만큼 더 열심히 준비했을 것 같다.
=4월 15일 한국에 들어와서 21일 바로 경기를 치러야 했다. 큐를 손에서 거의 놓다시피한 상태에서 단 5~6일 만에 예전 감각을 되찾을 수는 없다. 그래서 ‘열심히 치자’라며 정신무장하는데 신경을 많이 썼다. 물론 짧은 시간이지만 연습도 정말 열심히 했다.
▲이라크에서 하던 일은 정리했나.
=프로당구 선수가 된 후 사직서를 냈다. 연봉이 7000만원 정도여서 생활하는데 충분했다. 당구 때문에 그걸 포기하는게 쉽지 않았다. 이젠 프로가 됐으니 하루 7~8시간씩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프로가 된 만큼 열심히 당구를 쳐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트라이아웃 경기 얘기를 해보자. 1차전 22조 조별예선은 2승1패로 무난히 통과했다. 하지만 결선토너먼트 첫 경기에서 패하며 탈락했다. 아쉬움은 없었나.
=많이 아쉬웠다. 그런데 상대였던 이교석 선수가 워낙 잘 쳤다. 내가 경기에 적응하기도 전에 많이 뚜드려 맞으면서(많은 점수를 허용하면서) 끌려갔다.
▲2차전 토너먼트에서는 4연승하다 마지막 경기에서 현창화(동호인) 선수를 만났다. 이 경기에서는 시종일관 접전을 벌이다 2차 승부치기까지 가서 졌다.
=돌이켜보면 아쉬운 경기였다. 경기 중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승부가 다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이라크에 그만둔다고 전화를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하하. 그 순간 실수가 나오면서 경기가 어려워졌다. 나중에 그 상황을 많이 자책했다.
▲승부치기 들어간 뒤 초구에서 실패했다. 그때는 어떤 심정이었나.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쉽다는 생각조차 들 겨를이 없었다. 생각보다 공이 길게 빠진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데 후구 현창화 선수도 초구를 놓쳐 나한테 운이 따른다고 생각했다.
▲2차 승부치기에서 또 초구를 놓쳐 패했다. 이겼으면 바로 1부투어 직행인데.
=1차 승부치기에서 공이 길게 빠지는 바람에 초구를 놓쳤다. 그래서 2차 승부치기에서는 의도적으로 공이 짧게 빠지게 쳤는데 이번에는 너무 짧았다. 그래서 초구를 또 놓쳤고 경기도 내줬다.
지난달 25일 경기도 고양시 엠블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PBA 트라이아웃 2차전 마지막 경기에서 승부치기를 앞둔 이영주(왼쪽)와 현창화. 이 경기에서 이영주는 2차 승부치기 끝에 석패했다. 하지만 이영주는 이 경기에서의 선전으로 와일드카드를 획득, 1부투어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아쉽게 패한 후 현창화 선수와 뭔가 이야기를 나누던데.
=와일드카드 선발기준을 확실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현창화 선수한테 물어봤다. 그런데 내가 매우 유리한 상황이라고 알려줬다(PBA 트라이아웃 와일드카드는 마지막 경기 탈락자 중 상위권 선수들에게 돌아갔으며, 선발 기준은 무승부를 최우선으로 적용했다). 그래도 1부투어 진출이 확정된 것은 아니기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천신만고 끝에 와일드카드를 획득하며 1부투어에 입성했다. 1부투어 진출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떤 생각이 들던가.
=사실 믿기지 않았다. 다른 선수에 비해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출전했던 터라 내가 1부투어에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예상했던 것보다 경기력은 나쁘지 않았다.
▲트라이아웃 현장에서 이영주 선수 경기를 지켜볼 때 강렬한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남다른 절박함에서 나온 눈빛인가.
=(쑥스러워하며) 남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게 치려고 집중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 하하. 표정을 편안하게 지으면 내가 풀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지난달 30일 와일드카드 확정 소식을 듣고 뒤늦게 PBA 1부투어 참가증서를 전달받은 이영주(오른쪽)가 PBA 안진환 심판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영주는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프로무대에 임하는 각오를 전했다.
▲프로당구선수가 되면서 당구인생이 극적으로 반전됐다. 1부투어 진출권도 힘겹게 따낸 만큼 프로무대에 임하는 각오가 궁금하다.
=그렇다. 간절하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더 열심히 할 생각이다. 프로당구도 처음 출범하는 것이기에 그동안의 선수생활과 뭐가 바뀔지는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열심히 하면 좋은 기회가 생기기 때문에 한 경기라도 후회없이 치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당구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누구를 만나도 자신있는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그 동안 슬럼프를 겪었을 때는 자신없는 경기를 했던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그런 모습을 떨쳐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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