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7.29 11:54:00
정운(36)은 제주 SK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정운은 2016시즌 제주 유니폼을 입은 뒤 군 복무 시절(2018년 6월~2020년 1월)을 제외하고 팀을 떠난 적이 없다. 정운은 제주 유니폼을 입고 K리그(1·2)에서만 215경기(7골 15도움)에 출전했다. K리그1 191경기 5골 15도움, K리그2 24경기 2골이다. 정운은 제주가 첫 K리그2 강등이란 아픔을 느꼈을 때도 팀에 남아 K리그1 승격을 이끌었던 의리파다.
정운은 2024시즌을 마치고 제주와 2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구단을 향한 애정을 여러 차례 밝혀왔기에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정운의 꿈은 예나 지금이나 ‘제주 레전드’다.
그런데 2025시즌은 정운에게도 쉽지만은 않다. 정운은 올 시즌 제주가 치른 K리그1 24경기 중 2경기에만 나섰다.
올여름 이적시장에선 이적설이 불거졌다. ‘K리그1 승격에 도전 중인 서울 이랜드 FC가 정운을 원한다’는 소문이었다.
정운은 제주에 남았다.
정운은 “제주는 내 삶의 일부”라며 “제주와 재계약을 맺을 때도 ‘팀이 우선’이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여전히 선수다. 출전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내 욕심보다 팀이 먼저다. 팀이 잘되는 게 중요하다. 나는 우리 팀을 위해서라면 어떤 역할이든 해낼 것”이라고 했다.
‘MK스포츠’가 정운과 나눴던 이야기다.
Q. 지난 시즌을 마치고 제주와 재계약을 맺었다. 제주 레전드의 길을 택한 거다. 그런데 올 시즌 출전 기회를 잡는 게 어려워 보인다. 올 시즌 K리그1 2경기 출전에 그치고 있다. 올 시즌 K리그1 전반기가 누구보다 힘들었을 것 같은데.
솔직히 쉽지 않았다. 프로축구 선수가 된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경기를 못 뛴 적이 없었다. 특히나 제주에선 경기를 항상 뛰어왔다. 이런 상황에 빨리 적응하는 게 중요했다. 현실을 잘 받아들이고, 내가 해야 할 것에 계속 집중해야 했다. 김학범 감독께서 배려를 많이 해주신다. 지금은 훈련장에서 완벽한 몸 상태를 만들어놓는 것은 물론이고, 선임의 역할도 해내려고 한다.
Q. 경험이 풍부한 정운이지만, 경기를 이렇게까지 못 뛰어본 경험은 없지 않으냐. 멘털 관리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여기 있던 형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그다음엔 초심으로 돌아가 봤다. 내가 지난 시즌을 마치고 제주와 재계약을 맺은 이유는 명확했다. 나는 제주를 사랑한다. 이 팀과 재계약을 맺으면서 ‘팀이 우선’이란 생각을 했다. 내가 나를 먼저 생각했다면, 현재 상황에 화가 많이 났을 거다. 이적도 고려했을 거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제주란 팀이 먼저다. 감독님의 배려를 받으면서 선수들과 즐겁게 지내고 있다. 좋은 분위기를 계속해서 유지하는 데 힘을 보태는 것이 지금 나에게 준 역할 중 하나인 듯하다.
Q. 올여름 이적시장에서 ‘정운이 K리그2 이랜드로 이적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내가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적시장에서 접촉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나도 선수다. 솔직히 경기를 뛰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하지만, 앞서서도 말했다시피 나는 제주란 팀이 정말 좋다. 제주는 내 삶의 일부다. 그러다 보니 팀 사정을 이해해야 했다. 김학범 감독께서도 나를 필요로 했다. 내가 이 팀에서 해야 할 것도 있다.
내가 제주를 떠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팬들이나 다른 분들의 눈으로 봐도 내가 제주를 떠난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닐 것 같았다. 특히나 우리 팬들이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일찍이 제주 잔류를 결정했다. 지나고 나서 봐도 이 결정이 옳았다.
Q. 지난 시즌을 마치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한 팀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제주란 팀에 대한 애정이 누구보다 큰 듯하다. 제주는 정운에게 어떤 의미인 건가.
나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봤다. 대체 제주란 팀이 어떤 의미이길래 이렇게까지 좋은 걸까. 제주는 정운이란 프로축구 선수를 다시 태어나게 해 준 팀이다. 내 축구 인생은 제주 입단 전·후로 나뉜다. 그만큼 정운이란 사람의 인생에서 제주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이적을 상상해 보긴 했다. 그런데 상상 속에서도 이질감이 들더라. 이렇게 표현하는 게 맞나 싶은데 진짜 이상했다. 제주는 내게 집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집이 제일 편하지 않으냐. 아무리 좋은 호텔도 집만큼 편안할 순 없다.
Q. 제주의 올 시즌이 순조로운 건 아니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마다 후배들에게 해주는 이야기가 있나.
많은 얘길 하진 않는다. 후배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한다. 우리가 할 수 없는 걸 어떻게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것 아닌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에 신경 쓰면 큰 스트레스로 돌아온다. 힘들 때일수록 선수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안 좋은 상황을 빠르게 바꿀 수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무거운 이야기보단 좋은 말을 많이 하려고 한다.
Q. 올 시즌 리그 첫 출전이 많이 늦었다. 6월 21일 포항 스틸러스 원정 경기가 올 시즌 첫 리그 출전 경기였다. 정운에게 굉장히 낯선 상황 속 얻은 첫 출전 기회였지 않나. 감정이 남달랐을 것 같은데.
나도 그럴 줄 알았다. 그런데 크게 다른 건 없더라. 경기 전엔 나에 대해 의구심이 있었다. 경기를 계속 못 뛰다 보니 내 경기력에 확신이 없었던 거다. 그 모든 고민이 뛰면서 사라졌다. 그 자리에 항상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경기를 마무리했던 것 같다. ‘아직까진 괜찮다’란 자신감을 얻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뀐 경기였다.
Q. 제주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는 선수 아닌가. 제주 팬들이 정운의 몸 상태를 상당히 궁금해하고 있다.
내가 해야 할 것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항상 그래왔듯이 다가오는 경기 준비부터 철저히 한다. 김학범 감독께선 내 장점을 잘 알고 계신다. 기회를 주신다면, 감독님이 바라는 걸 완벽히 해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해낼 것이다.
[서귀포=이근승 MK스포츠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