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대한당구연맹회장배 결승에서 김행직 꺾고 전국대회 정상 당구큐 잡은지 9년, 당구선수 6년만에 거둔 성과 “늦게 시작한 만큼 잠 줄이며 하루 14시간씩 연습” “롤모델은 김행직…결승서 경기해보니 역시 김행직” 당구치기 위해 일산-영종도-영등포-목동-안산으로 “세계대회 입상, 한국 대표하는 선수 되고 싶어”
당구큐를 잡은지 9년, 당구선수로 활동한지 6년만에 자신의 첫번째 결승전에서 국내랭킹 1위 김행직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허진우가 안산 빌포츠 당구클럽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행직 대 허진우.
지난 9월 대한당구연맹회장배 전국당구선수권 결승 대진이 확정됐을 때, 대부분 김행직 우세를 점쳤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밖’으로 허진우(27·김포당구연매) 우승이었다. 일대사건이었다. 김행직이야 세계적인 선수이니 새삼 설명이 필요 없지만, 허진우는 ‘무명’이었다. 당구큐를 잡은지 9년, 당구선수 된지 6년밖에 안됐다. 허진우는 첫 결승무대임에도 침착하게 점수를 쌓으며 50:35로 승리, 우승컵을 들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때 처음 당구큐를 잡아 당구를 늦게 시작한 만큼 누구보다 기본기를 쌓는데 노력했다고 한다. 잠을 줄여가며 하루 14시간씩 연습에 매진했다. 노력이 보답하며 올해부터 상승세를 타고 있다. 7월 정읍대회 8강, 8월 경남고성군수배 16강에 올랐다.
이번 대회에서 허진우는 허정한(32강) 조치연(16강)에 이어 김행직(전남당구연맹)까지 강호들을 꺾으며 전국대회 첫 정상에 올랐다. 당구를 늦게 시작한 허진우는 스스로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했다. 그의 연습장이자 생활터전인 경기도 안산 빌포츠당구클럽에서 얘기를 나눴다.
태백에서 열린 "대한당구연맹회장배"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며칠이 지나서야 우승을 실감했다는 허진우.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포당구연맹 소속 허진우입니다.
▲지난9월 태백에서 열린 ‘대한당구연맹회장배 전국당구선수권’에서 우승했는데 우승소감은.
=실감이 안났다. 어머니는 전화해서 우시고 주변에서도 난리가 났다. 생각했던거 보다 빨리 찾아온 순간이라 얼떨떨했다. 며칠 지나서야 실감이 났다. 대회 끝나고 2주 정도 지났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믿기지 않는다. 우승했으니 다음 시합을 위해 좀 더 부담을 갖고 연습을 더 하고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
▲결승전에서 롤모델인 김행직 선수를 만났을 때 기분은.
=경기 시작 전에도 그렇고 경기하는 중간에도 그렇고 역시 김행직이구나 했다. 행직이 형이 테이블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서로 실수하는 와중에 경기 흐름이 넘어왔을 때 우승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운이 따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시 붙으면 질 거 같다. 하하. 전체적으로 결승뿐만 아니라 대회 내내 운이 많이 따라줬다.
▲강자들을 꺾고 우승했는데. (32강서 허정한, 16강서 조치연, 결승 김행직)
=대선배고 객관적으로 저보다 위에 계신 분들이다.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보다 최선을 다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8강에 진출하고 나서는 첫 입상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경기는.
=허정한(3위·경남당구연맹) 선수와의 경기다. 행직이 형, 조치연(10위·안산시체육회) 선수와의 경기도 기억에 남지만 허정한 선수와의 경기는 진 경기를 가져온 경기라 느낌이 남달랐다. 이기겠다는 생각보단 한 수 배우겠다는 느낌으로 쳤고 경기 내내 테이블에 속아서 쉬운 공을 놓쳤다. 허정한 선수가 2~3번 놓치는 사이 행운이 따랐고 3점씩 득점하며 따라갔다. 허정한 선수의 마지막 옆돌리기가 실패하면서 쉬운 배치가 찾아왔다. 그때 놓치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마무리지었다. 경기 끝나고 허정한 선수가 옆돌리기가 아니라 안쪽 더블쿠션으로 쳤으면 이겼을 거라고 말했다.
▲전국대회 첫 결승이었는데 긴장은 안됐나.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긴장이 됐다. 하지만 부담 없이 쳤다. 결승전 시작하기 전에 지인들에게서 연락이 많이 왔다. 다들 기회 왔을 때 잡아보자, 한번 일내보자고 했다. 그 말에 동의했지만 이번에 반드시 우승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마침 상대도 김행직 선수였기 때문에 마음을 비웠고, 너무 강한 상대다 보니 오히려 긴장이 풀렸다.
다른 선수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잠도 줄여가면서 하루에 14시간씩 연습에 매진했다.
▲당구를 시작하게된 계기는.
=고등학교 3학년때 친구들 따라 처음 당구를 접하게 됐다. 재미도 있었고 실력도 금방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나중에 알아보니 당구선수가 선수생활을 길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당구선수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선수생활은 언제부터.
=2016년에 선수등록했고 그해 10월에 첫 대회에 나갔다. 그전까지는 동호인대회만 나갔다.
▲당구를 늦게 시작한 만큼 연습은 어떻게 했는지.
=고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한 만큼 그때는 잠자는 시간도 줄여가면서 하루 14시간씩 연습했다. 졸업 이후에는 사회복무요원 근무로 생긴 공백기 때문에 대회에 나가기보다 기본기와 실력을 다져갔다.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할 때 멘탈적인 부분을 고쳤다고.
=사회복무요원 근무 이전 대회에 나갔을 때는 제 실력이 나오지 않았다. 멘탈적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람의 타고난 성향에 따라 무대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경쟁을 즐기는 사람이 있다. 저는 소심하고 나서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경쟁도 마찬가지로 피했다. 하지만 시합을 하기 위해 선수로서 갖춰야할 소양들을 배워가다 보니 부족한 점이 많았고 성격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당구선수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
=고등학교 때 말씀 드렸더니 거세게 반대했다. 그때문에 당시에 집을 나간 적도 있다. 고집을 꺾지 않고 꾸준히 이야기하니 허락해주셨다.
▲당구선수하면서 여러 지역으로 옮겨 다녔다고.
=20살 때부터 집안에 일이 있어서 부모님은 지방으로 내려가셨고 나는 일산, 영종도, 영등포, 목동 등 구장에 따라 계속 집을 옮겨다녔다. 지금까지 생활비를 위해 당구장 오픈부터 마감까지 단 하루도 당구장 일을 안한 적 없다.
▲올들어 꾸준한 성적을 내고 있다.
=곧 30살이라 언제까지 시합을 경험삼아 다닐 수는 없고, 성적을 내고 싶었다. 한살 한살 먹으면서 조급해졌다. 정읍대회랑 고성대회를 거치면서 시합해보니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대진표만 봐도 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젠 자신감이 생기면서 좋은 결과가 나온거 같다.
"대한당구연맹회장배"에서 롤모델 김행직을 꺾고 성인대회 첫 번째 우승을 차지한 허진우. (사진=MK빌리어드뉴스 DB)
▲연습할 때 루틴이 있는지.
=따로 루틴은 없고 안 맞는 공이나 자신 없는 공이 있으면 메모해두고 그 부분을 될 때까지 친다. 연습경기 할 때도 멘탈적인 부분이 필요하기에 모든 걸 고려하고 연습한다. 당구장에 오래 있는 만큼 연습을 많이 한다. 최소 8시간에서 10시간은 당구장에서 보낸다. 제가 정한 쉬는 날은 일요일이지만 약속이 없다면 일요일도 나와서 연습한다. 대한당구연맹회장배(태백) 끝난 후로 하루도 쉬지 않고 연습하고 있다.
▲매일 연습하면 하루 정도 쉬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가.
=생각은 하지만 아예 당구를 안 치는게 아니다. 하루이틀 쉬면 감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쉬더라도 2~3시간은 연습한다. 그리고 다른 취미가 없어서 당구 안치면 딱히 할 게 없어 오히려 연습에 집중한다. 오히려 지금은 많이 풀어졌다. 고등학교 3학년 당구 시작할 땐 잠도 줄여가면서 하루 14시간씩 연습했다. 35점을 치기 시작할 때부턴 조금씩 느슨해진 것 같다. 재작년 말쯤 40점으로 올리고 계속 유지 중이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멘토가 있다면.
=당구실력은 김봉철(PBA) 선수가 만들어줬다. 30점 칠 때 만났을 때 한 게임치고 물어보고 하다가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됐다. 선수준비생이었기 때문에 치는 스타일, 두께, 스트로크를 처음부터 다 바꿔주셨다. 이후에도 여러 가지 물어보고 배웠다.
허진우가 현재 연습하고 있는 안산 빌포츠 당구클럽에는 허진우의 우승을 축하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자신의 강점을 꼽자면.
=독기와 근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안되는게 있으면 끈질기게 달라붙어 풀려고 한다. 그런게 있어서 지금까지 칠 수 있었다. 연습에서 치지 못했던 것들을 메모하고 될 때까지 연습한다.
▲롤모델인 김행직 선수 말고 존경하는 선수를 꼽자면.
=브롬달(스웨덴)과 야스퍼스(네덜란드)다. 브롬달이 3쿠션월드컵 최다우승(44회) 기록을 낼 수 있던 건 기술적인 부분 외에 멘탈적으로 승부를 즐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을 존경한다. 야스퍼스도 심리적인 요인인데 어떤 상대와 붙어도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 대단해 보인다.
▲당구용품은 어떤 걸 사용하나.
=빌킹코리아의 후원을 받고 있어서 모든 장비를 빌킹 제품을 쓰고 있다.
▲당구선수로서의 목표
=선수라면 누구나 그렇듯 우승하고 싶고 김행직 최성원 조명우(27위·실크로드시앤티) 허정한 선수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세계 대회에 나가서 입상도 하고싶다. 항상 최대치의 목표를 두고 생각한다. [김우진 MK빌리어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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