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02 10:39:56
이미 예견된 7년내 불가 결론 정치권 몰랐다는듯 시공사 탓 무안공항 충돌참사 본 후에도 공사 속도만 그렇게 중요한가
“×자식들, 국토부 2차관 들어오라 해.”
2020년 늦가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실에서 당시 김태년 원내대표가 전화를 붙든 채 격앙된 목소리를 내질렀다. 국토교통부가 가덕도 신공항 용역비 예산 선반영에 미적대자, 민주당은 강하게 밀어붙였고, 같은 당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법 절차에 어긋난다”고 주저했지만 소용없었다. 170석 거대 여당의 힘 앞에 절차는 뒷순위였다. 불호령을 맞은 손명수 2차관은 결국 이듬해 봄 짐을 싸고 떠났다.(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같은 당 국회의원이 됐다.)
이렇듯 가덕도 신공항 사업에 중요한 것은 늘상 절차가 아니라 속도였다. 출발점은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의 “검토해보라”는 한마디였다. 이후 20년간 신공항은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단골 공약이 됐다.
박근혜 정부는 가덕도 신공항 대신 김해공항 확장을 추진했고, 영남권 단체장들도 합의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다시 뒤집혔다. 문재인 정부는 보궐선거를 앞두고 김해 확장을 백지화했고, 가덕도 특별법으로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면제하며 신공항을 밀어붙였다. 사업을 둘러싼 치열한 숙의는 없었고, 정치적 필요는 늘 속도만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는 가덕도 신공항 개항 시점을 당초 계획보다 무려 5년 이상 앞당겼다. 2030 부산엑스포 유치에 힘을 싣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엑스포는 무산됐고 10조원이 넘는 초대형 공사에도 불구하고 무려 네 번이나 입찰이 유찰됐다. 결국 수의계약으로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사업을 맡게 됐지만, 며칠 전 결국 기본설계안을 내면서 “7년 내 준공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부산시는 즉각 현대건설을 질타하고 나섰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 작년 12월 무안공항 참사가 발생했을 때 부산시장 머리 속엔 어떤 생각이 떠올랐나. 공항 59%는 바다를 매립하고, 나머지는 산봉우리 등을 깎은 뒤 메우는 고난도 공사에 철새충돌 위험도 무안공항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설마 시민 안전보다 내년 지방선거가 더 급하단 말은 아닐거라 믿는다.
애초에 무리한 조건을 내걸고 건설사 팔을 비튼 국토부 책임도 크다. 현대건설은 입찰 이후 줄곧 “공기는 9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최근 일어난 신안산선 공사현장 붕괴도 빡빡한 공기 추진이 한몫했다는 분석이 있다. 7년은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윤석열 정부에선 앞서 예든 손명수 전 차관처럼 자리걸고 바른소리 할 공무원도 없었다.
해외를 보자.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신공항(BER) 프로젝트는 정치적 결정과 졸속 추진의 교훈을 보여준다. 2006년 착공했지만 빡빡한 공기에 쫓겼던 부실 공사, 잦은 안전사고, 책임 회피가 이어지면서 2020년 개항했을 때 당초 예산의 세 배를 넘는 막대한 비용이 들었고, 국민 조롱과 불신을 샀다.
반면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 확장 사례는 다르다. 프랑스는 1990년대부터 단계별로 확장을 계획하고, 주변 지역과 지속적 협의를 거쳤다. 정치권이 조급증을 부리지 않고, 전문가 의견과 지역사회 목소리를 조화롭게 반영한 결과, 오래 걸렸지만 최종적으로는 안전하고 효율적 확장이 가능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민주당과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가 정해지고 부산에 가면 동남권 신공항 문제가 또 한번 뜨거운 감자가 될게 뻔하다. 후보자들이 “더 빨리”라는 속도를 약속하기 보다 어떻게 안전을 책임질 것인지를 먼저 말했으면 좋겠다. 무안공항 참사이후 무안은 ‘참사현장’이라는 오명 속에 관광객이 끊어져 지역경제가 엉망이라고 한다. 부산 시민도 그런 위험천만한 폭탄돌리기 실험대에 앉는 건 절대 사양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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