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1 09:00:00
[그거사전 - 67] 창문 잠글 때 위아래로 회전시키는 ‘그거’
명사. 1. 크리센트, 크레센트【예문】창문 크리센트 잠갔던가? 가스는? 화장실은 불은 껐나? 집 밖을 나오기가 무섭게 걱정이 몰려온다.
크리센트(crescent)다. 원어 발음 기호에 따르자면 크레센(슨)트지만, 창호 제작사를 비롯해 업계에서는 크리센트로 통용된다. 알루미늄 창호의 잠금장치 중, 한쪽 창호에 180도 회전이 가능한 걸쇠를 달고, 다른 한쪽에는 걸쇠와 맞물리는 고리를 달아 고정하는 장치다. 고리에 걸리는 돌출부가 마치 초승달 모양(crescent)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엇이든 첫인상이 중요한 법이다. 크리센트가 알루미늄 창호의 대표 잠금장치가 된 덕에, 이후 등장한 후배 잠금장치들은 작동 방식만 비슷하면 죄다 크리센트로 통일됐다. 심지어 일자 크리센트도 있다. 직선 같은 곡선이라니,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시적이다. 애초에 크리센트가 국내에 도입됐을 때, 낯선 영문 표기를 직관적인 우리말 표기로 바꿔두었다면 ‘일자 초승달’ 같은 이상한 표현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거실 창호 잠금장치 중에는 긴 손잡이가 있어서 손잡이를 옆으로 잡아당기면 열리고, 닫으며 수직으로 돌려놓으면 자동으로 잠기는 장치가 많은데, 그거의 이름은 레버 핸들(lever handle)이다.
잠금장치(잠금쇠) 면면을 살펴보면, 크리센트 외에도 낯선 이름이 경우가 많다.
우선 빗장(문빗장)이다. 문을 닫고 가로질러 잠그는 막대기를 뜻한다. 쇠로 만든 빗장은 빗장쇠라고 한다. 단순한 구조와 오랜 역사로 검증된 견고함 덕에 지금까지도 쓰인다. 창고 문 등에 쓰는 좌우로 움직여 잠그거나 열 수 있는 잠금장치로, 보통 자물쇠로 잠글 수 있게 빗장걸고리가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빗장은 경관(扃關)·염이(扊扅)라고도 하는데 재미있게도 문빗장 경·문빗장 관·문빗장 염·문빗장 이 네 글자 모두 문빗장을 뜻하는 한자어다. 포도 포(葡)와 포도 도(萄)가 합쳐져 된 포도와 유사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중국이 서역과의 교역 과정에서 포도(葡萄)와 낙타(駱駝) 같은 새로운 문물을 지칭하기 위해 두 개의 새로운 한자를 묶어서 하나의 뜻을 나타내는 단어를 만들었는데, 이를 연면사(連綿詞)라고 한다. 연면사는 낱자로는 쓰이지 않고, 함께 써야만 비로소 의미가 있는 단어다.
지금은 거의 안 쓰지만, 옛날 목제 미닫이문이나 창문 따위에 쓰는 창문꽂이쇠·창문정도 있다. 잡아 빼면 ㄱ자 모양으로 꺾이지만, 一자로 펴서 밀어 넣으면 앞쪽 창문과 뒤쪽 창문이 고정되는 형태다. 표준어는 아니다. ‘찔러 넣는다’라는 의미의 일본어 사시꼬미(さしこみ)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대학교 일어일문학과보다 일본식 표현을 더 자주 쓰는 곳을 찾자면 건설 현장일 것이다. 아교도시·아교오도시는 방화문 등 두꺼운 철문 틀 위나 아래쪽에 설치하고 문지방이나 바닥의 구멍에 고정하는 잠금장치다. 일본어 아게오토시(上げ落し)가 대한해협을 건너오는 과정에서 발음이 변한 것으로 추정한다. 국내 건축·인테리어 업계에서는 오르내리꽂이쇠로 순환해서 사용하는 추세다.
오토시(落し)에서 유래한 잠금쇠가 하나 더 있다. 오도시다. 좌우로 빗장쇠를 움직여 문을 걸어 잠그는 장치를 통틀어 말한다. 아게오토시에서 오름(上げ)만 빠진 것이니 굳이 번역하자면 내리꽂이쇠가 되겠지만 아직 적당한 한국어는 없다. 무엇보다 내리꽂지도 않고 좌우로 빗장을 움직일 뿐인데 내리꽂이쇠라는 이름이 붙는 것도 영 이상하다. 왜냐하면 원래 내리꽂아 문을 잠그거나 고정하던 마루오토시(丸落し)라는 잠금장치를 슬며시 옆으로 돌려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알게 되니 허탈하다. 화장실 칸막이 문을 잠글 때 쓰는 오도시는 큐비클 잠금장치라고도 한다. 칸막이를 뜻하는 큐비클(cubicle)이 화장실 칸막이 시공 작업에서 벽체와 문, 잠금쇠 등 부자재를 통칭하는 단어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 화장실 문이나 전주 한옥마을에서 종종 보는 물음표처럼 구부러진 쇠붙이를 고리에 걸어 잠그는 물건은 괘정(掛釘)이다. 갈고리걸쇠라고도 한다. 철문 전문점에서는 실외고리·캐빈 후크(cabin hook)·아오리링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아오리링의 어원이 꽤 복잡하다. 일본에서는 괘정을 아오리도메(煽り止め)라고 하는데, 이는 센 바람에 의한 충격을 의미하는 일본어 아오리(煽り) 뒤에 ‘멈추게 하다’를 의미하는 도메(止め)를 붙인 단어다. 번역하자면 ‘바람막이(용 잠금쇠)’ 정도 되겠다. 아오리링은 일본어 단어에서 아오리만 가져다가 고리를 의미하는 링(ring)을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식 표현을 쓸 거면 다 가져오든지, 대체 일부분만 빌려오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창조적인 작명 센스 덕분에 잠금쇠 이름이 무슨 게임 아이템 같은 ‘바람의 반지’가 됐다.
회사·오피스텔의 밀어서 여는 창문(프로젝트창·PJ창)에 달린 잠금장치는 프로젝트 손잡이라고 한다. 프로젝트창은 아랫부분을 앞으로 밀어서 열 수 있는데, 완전히 열리지 않고 제한적으로만 열린다. 좌우로 완전히 열리는 창문보다 안정성이 높아 바람이 세게 부는 고층 빌딩에 주로 쓴다. 창문 개폐에 큰 공간이 필요하지 않아 공간 활용에 용이하고, 비가 와도 환기할 수 있다. 반대로 아래가 아닌 윗부분을 밀어서 여는 방식의 창호는 틸트창이라고 한다.
군대 총기함 잠금쇠처럼 자물쇠를 이용해 견고하게 잠그는 장치는 (자물쇠)걸고리·자물쇠걸이다. 총기함 잠금쇠를 두고 ‘시건장치(施鍵裝置)’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일본식 표현으로 잠금장치 등으로 순화하는 편이 낫겠다. 순화하는 김에 촉수엄금도 ‘손대지 마시오’로 바꾸면 좋겠다.
크리센트로부터 출발한 모험이 멀리도 돌아왔다. 크리센트가 주는 교훈은, 무엇이든 첫인상이 중요하단 거다. 2019년 한 취업 포털의 직장인 설문 결과에 따르면, 상대방의 ‘첫인상이 유지된다’ 혹은 ‘유지되는 편이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75.8%에 달했다. 직장 생활의 일자 크리센트인 셈이다.
그렇다면 직장에서 좋은 첫인상을 남기기 위한 전략은 무엇일까? 설문에 참여한 직장인들은 첫 출근 날 의상(39.2%)과 예의(25.8%)에 가장 많이 신경 쓴다고 답했다. 이어서 표정(20.3%), 헤어스타일(6.8%), 말투(5.5%), 화장(6.4%) 순으로 응답했다. 그러나 정작 첫인상을 결정하는 주요 요소로는 표정(28.6%)과 말투(26.0%), 소위 애티튜드(태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외모(15.1%)나 복장(13.1%), 목소리(8.7%)와 같은 외적 요소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생활을 해보면 업무적으로 아쉬운 성과를 낸 후배에 대해 “그래도 애티튜드는 좋은 친구인데…”라고 편드는 경우는 봤어도 “그래도 잘생긴/예쁜 친구잖아”라고 용서해주는 경우는 보기 어려운 이유다. 환하게 웃는 표정 한 번에, 혼날 일 한 번씩 탕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첫인상의 힘이다. 2012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사진이 있다. 교실 칠판에 적힌 짧은 문장이었다.
너희들은 못생겨서 항상 웃어야 한다.
그러니 우리는 항상 웃어야 한다. 웃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