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년생 동갑 원혜영·김무성 의원 "실용의 시대, 이념타령 그만…정치는 싸움이 아니라 협상"
최초입력 2020.05.25 17:35:14
`국회 떠나는` 51년생 동갑 원혜영·김무성 의원
세상 바뀌었는데 통합당만 몰라 회의 참석은 의원 책무, 왜 빠지나 YS 당선 희열, 朴 탄핵 가장 괴로워 제왕적 대통령제가 만악의 근원
국회 선진화법 통과 때 큰 보람 작년 `동물국회` 보며 가슴 아파 당론 최소화, 의원에 자율성 줘야 친문 없어…급진·온건만 있을뿐
오는 30일 개원하는 21대 국회는 초선 의원이 151명이다. 국회의원의 절반이 '정치 신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엔 국회를 줄곧 지켜온 중진들의 퇴장이 자리하고 있다. 매일경제는 여야를 대표하는 중진들의 대담을 주선했다. 김무성 미래통합당 의원(69·6선)과 원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69·5선)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자리를 함께했다. 1951년생 토끼띠 동갑인 이들 두 명은 20년 넘게 국회 생활을 했고 다음달이면 '원외'가 된다. 두 중진은 "국회의원 본연의 책무인 회의 참석에 신경을 쓰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하면서 "정치는 협상과 타협이 기본이다. 이념이나 관념에 함몰되지 말고 실용을 추구하라"고 후배들에게 당부했다.
■ 사회 = 이상훈 정치전문기자
―20여 년의 의정생활을 접는 소회는.
▷원혜영 민주당 의원=한마디로 '시원섭섭'하다. 나름대로 열심히 정치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시원하고, 열린 국회·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게 모두 다 실현되지 못하고 떠나는 점에선 섭섭하다.
▷김무성 통합당 의원=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다. 공인으로 산 지 36년이다. 내 인생이 다 여기(국회)에 있었다. 인생 그 자체다. '희로애락'이라는 단어에 다 서려 있다.
―가장 아쉬웠던 순간·보람 있던 순간.
▷원 의원=국회선진화법을 (18대 국회 막바지에) 어렵게 제정했을 때가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이다. 언제까지 국회를 싸움의 장으로 만들어야 하나 하는 고민이 들었다. 몸싸움 말고 대화와 타협을 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20대 국회에서 다시 몸싸움이 재연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김 의원=오랜 민주화 투쟁을 하다가 6·29선언(1987년)을 쟁취했을 때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1992년)가 제일 희열을 느낀 순간이었다. 제일 괴로웠던 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할 때였다.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김 의원=인생은 지나고 보면 후회와 번민으로 얼룩져 있다. 나쁜 점수를 매길 수밖에 없다. 내 점수는 낙제점.
▷원 의원=내 점수를 내가 준다면 후하게 주지 않을까. 노력상은 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싸우지 않는 국회, 일하는 국회를 만드는 데 노력했다.
▷김 의원=(두 중진의 평가가 사뭇 다르다고 하자) 원 의원은 지난 대선과 이번 총선을 잘 치르고 떠나는 것이고, 나는 (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절치부심의 입장이라서 그렇다.
―4·15 총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김 의원=선거 전까지는 여론조사가 틀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를 놓고 보니 여론조사가 틀리지 않았다는 게 증명됐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바뀐 줄 모르고 함몰됐다가 졌다고 생각한다. 통합당 내부에 문제가 있었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도 영향이 컸다.
▷원 의원=촛불혁명의 큰 흐름이 있다. 현재진행형이다. 핵심적인 사건이 탄핵이다. 탄핵은 국민 대다수의 뜻이 모아진 것이다. 그러나 탄핵을 부정하는 소수 강경 세력 목소리가 크다 보니 갇혀버린 것이다.
―만약 당을 이끄는 위치라면.
▷김 의원=더 이상 이념에 함몰되지 말고 실용과 민생에 초점을 맞추는 정당이 돼야 한다. 정당은 정체성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정권 창출을 목적으로 모인 것이다. 그간 정체성의 기준은 이념이었다. 거기서도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실용주의 노선으로 가야 한다.
▷원 의원=민주당은 명실상부한 집권 다수당이 됐다. 무한책임을 느껴야 한다. 김 의원 말에 동의한다. 지금 세상은 격변의 시대다. 변화 속도와 규모가 상상을 뛰어넘는다. 열린 자세가 제일 중요하다. 관념보다는 실제를 보는, 실사구시 자세가 필요하다. 관념으로 정치하지 말고 실제 상황을 중심으로 정치를 해야 한다.
―후배 의원들에게 당부를 한다면.
▷김 의원=국회의원은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이다. 선출해준 주민들을 제일로 생각해야 한다. 공천권을 가진 이들에게 숙이는 비민주적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또 정치는 협상과 타협이라는 점을 절대로 잊어선 안된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면 안된다. 또 의원들이 회의에 잘 안 나온다. 의원총회는 출석률이 90%를 넘어야 하는데 현실은 60~70%다. 상임위원회나 본회의에 가도 빈자리가 많다. 의원에겐 회의 참석이 일인데, 망각하는 듯하다.
▷원 의원=회의 참석을 강조한 것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세미나에서 의원의 99%가 시작할 때 인사말만 하거나 내빈을 소개할 때 소개받고 자리를 뜬다. 자기가 주최한 세미나조차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는 의원도 있다. 버릇인 거 같다. '바쁘다. 바쁘다' 하다 보니 금세 자리를 뜨는 게 익숙해진 거다.
―일하는 국회가 숙원 과제인데.
▷원 의원=국회의 주인은 국회의원이지, 당이 아니다. 꼭 필요한 경우에만 당론으로 다뤄야 하는데, 모든 게 여야 원내대표 협상 테이블에 올라가서 주거니 받거니 '바터'를 한다. 모든 것을 여야 원내대표가 결정하면서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과 책임을 침해한다. 아주 잘못된 것이다. 의원 개개인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당론화는 최소화해야 한다. 이게 일하는 국회의 핵심이다.
▷김 의원=지금까지는 '전부 아니면 전무'였다. 어떤 법이 쟁점이 됐는데, 한쪽은 한 글자도 못 고친다고 하면 다른 한쪽은 장외로 나간다. 그러다 법은 그냥 그대로 통과된다. 원내대표가 가장 하기 쉬운 방법이 장외투쟁이다.
―개헌에 대한 생각은.
▷김 의원=만악의 근원은 제왕적 대통령제다. 이걸 바꾸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비전이 없다. 개헌은 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공약한 사람들도 대통령이 되면 마음이 바뀌더라. 정치권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권력 분산이다.
▷원 의원=개헌은 김 의원과 내가 가장 앞서서 주장하고 추진에 노력했던 주제다. 그러나 시기에 있어서 지금은 코로나19 국난 극복이 먼저다. 개헌은 중장기적 과제로 추진돼야 한다. 개헌을 통해 정부와 국회가 협치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여당은 권력의 호위무사가 되고, 야당은 반대만 하는 행태가 고착화됐다.
―친문이나 친박 등 계파 얘기가 여전히 나오는데.
▷원 의원=친문이라면 반문도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반문은 20대 국회 직전 당을 다 나가버렸다. 민주당 내에는 급진과 온건 정도만 있다고 본다.
▷김 의원=나는 생각이 다르다. 권력에 아부하는 세력은 언제나 있다.
―동갑이다. 서로를 평가하면.
▷원 의원=민주화운동을 같은 시기에 했고, 정치에도 비슷한 때 뛰어들었다. 친구라고 얘기할 수 있는 동료다. 남북 관계에선 이견이 있지만 국회와 정당 개혁 등에선 상당 부분 공감하는 사이.
▷김 의원=이쪽은 젠틀맨이고, 나는 거친 편이다(웃음). (원 의원은) 대화하고 싶고, 통하고, 존중하고 싶은 몇 안되는 사람이다.
■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元 "기부문화 확산 앞장"…金 "싱크탱크 구성할 것"
20여 년의 의정생활을 뒤로하는 두 중진 의원에게 '6월 이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19대 국회 시절부터 20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결심했다는 원혜영 의원은 기부문화 선진화와 웰다잉 전파에 힘쓰고 싶다고 밝혔다.
김무성 의원은 2년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서 미래통합당 등 야권이 정권을 창출할 수 있는 밑거름을 다지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원 의원은 "국회에 있는 동안 꾸준히 활동해온 분야가 기부문화 선진화와 웰다잉"이라며 "국회를 떠난 뒤에는 두 가지를 접목해 유산기부운동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열심히 일해서 자산을 형성한 세대들이 이제 장·노년층이 됐는데, 돌아가실 때 유산 중 일부를 기부하는 것"이라며 "예컨대 영국은 십일조운동으로 유산의 일부를 기부한다. 우리도 귀하게 모은 재산 10%를 사회 필요한 곳에 기부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 의원은 유산 기부의 세금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원외에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의원은 향후 대선 국면에서 야권 경쟁력을 끌어올릴 방안을 찾는 '싱크탱크'를 꾸릴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선이 2년도 남지 않았다. '이대로는 끝낼 수 없다'는 생각"이라면서 "마포에 사무실을 내고 20대 의원들이 중심이 돼 머리를 맞대며 대선 전략과 국정 방향을 논의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무실은 공유오피스 개념으로 운영될 것"이라며 "전문가들을 모셔 쌍방향 토론도 자주 하고, 물론 대권주자가 될 인물들을 탐색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인물난이란 평가가 많은 야권에 대권주자 자질을 지닌 인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김 의원은 "찾아야 한다"며 "또 찾는 것도 좋지만 본인이 (대권 도전을) 하겠다는 의지가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인터뷰 전문은 레이더P, 동영상은 매일경제 유튜브 채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 김무성은…
△1951년 부산 출생 △중동고 △한양대 경영학과 △대통령비서실 민정비서관 △내무부 차관 △15·16·17·18·19·20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18대 대선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 △새누리당 대표
▶▶ 원혜영은…
△1951년 부천 출생 △경복고 △서울대 역사교육학과 △풀무원식품 창업 △14·17·18·19·20대 국회의원 △민선 2·3기 부천시장 △민주당 원내대표 △민주통합당 공동대표 △민주당 공직선거후보자추천관리위원장
[정리 = 김명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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