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사업청과 폴란드 정부가 확정한 현대로템의 K2 전차 2차 수출 계약은 'K방산의 진화'라고 평가할 만하다. 수출 규모가 단일 계약 기준으로 사상 최대인 9조원에 달하는 데다 단순한 무기 수출을 넘어 폴란드 현지에 생산거점을 구축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방산 수출이 '제품' 중심에서 '생태계' 중심으로 본격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계약의 핵심은 전체 수출 물량 180대 중 63대를 폴란드 현지 방산업체가 직접 생산한다는 점이다. 현대로템이 생산 노하우를 전수하고 생산시설 구축과 MRO(유지·보수·정비)도 지원한다. 수출 물량은 2022년 1차 계약 때와 같지만 금액이 2배 가까이 늘어난 것도 이처럼 고도화된 수출 방식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미국의 기술을 토대로 K1 전차를 국내에서 생산하며 방산 자립의 씨앗을 뿌렸던 한국이 2008년 K2 전차를 고유 기술로 개발하고, 다른 나라에 기술이전까지 하게 된 것은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세계 각국이 군사력 강화를 서두르는 국제 정세도 K방산에 호재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32개 회원국은 미국의 요구를 수용해 2035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5%까지 증액하는 데 합의했다. 유럽연합(EU)도 2030년까지 8000억유로의 재무장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고, 역내 생산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런 흐름 속에 한국이 제시하는 '생태계 수출'이라는 현지화 방식은 유럽 시장을 뚫는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완제품만을 파는 방식은 무역장벽에 가로막힐 수 있지만 기술이전, 부품 공급 등을 포괄하는 협력 모델은 현지 산업과 공존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호주 현지에서 '레드백' 장갑차를 생산 중이며, 한국항공우주산업(KAI)도 페루와 FA-50 경공격기 부품 현지 생산 협약을 체결했다. 경쟁력이 입증된 K방산은 한국 수출을 이끌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수 있다. 방위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격상시켜 미래 성장의 핵심축으로 키워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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