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01 13:02:54
유형 2. 변화 포착 → 선점, ‘전략적 민첩성’
산업 트렌드는 시시각각 변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술과 개념이 등장한다. 후발주자 입장에선 기회다. 전략적 민첩성(Strategic agility)을 극대화해 새롭게 열린 시장을 선점할 수 있어서다. 전략적 민첩성은 이브 도즈 프랑스 인시아드 경영대학원 교수가 저서 ‘빠른 전략’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변화를 포착하고 새로운 경쟁 우위를 확립하는 역량을 일컫는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역전극을 써낸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선점 사례가 대표적이다.
SK하이닉스의 HBM 개발은 2010년대 미국 반도체 기업 AMD와 고성능 메모리 반도체 제품 스펙을 논의하면서 시작됐다.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의 중요성이 부각되던 시기다. 하지만 제조 공정이 복잡한 데다 비싼 가격·발열 등이 발목을 잡았다. SK하이닉스의 1세대 HBM은 이렇다 할 주목도 못 받고 시장에서 잊혔다. 비슷한 시기인 2015년 삼성전자도 HBM 개발에 착수했지만, 시장 개화 가능성을 낮게 평가해 2019년 HBM 전담 연구개발팀을 해체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HBM의 상방 잠재력에 주목해 개발을 지속했다. 그러던 2022년 엔비디아가 H100 텐서코어 GPU에 탑재할 4세대 HBM(HBM3) 생산을 삼성전자에 의뢰했다. 삼성전자는 HBM 연구개발팀을 해체한 탓에 주문에 응할 여력이 없었다. 결국 계약은 SK하이닉스로 넘어갔다. 이후 엔비디아-SK하이닉스 밸류체인은 AI 시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됐다.
HBM 개발을 둔 엇갈린 선택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시장 지위도 바꿔놓았다. 시장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1분기 D램 시장 매출 36%를 점유해 사상 처음으로 삼성전자(34%)를 제쳤다.
삼양식품도 변화를 빠르게 포착, 기민하게 적응한 기업 중 하나다. 덕분에 암울했던 시기를 벗어던지고 경쟁사인 농심을 제쳤다.
불닭볶음면이 본격적인 인기를 끌기 이전인 2015년까지 삼양식품은 부진한 실적을 냈다. 2013년 118억원이던 영업이익은 2015년 69억원으로 급감했다. 위기의 순간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SNS(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매운맛 마니아들의 불닭볶음면 체험기가 하나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 삼양식품은 이를 포착해 열풍을 키웠다. SNS에 최적화된 짧고 중독성 있는 콘텐츠를 전략적으로 밀어붙였다. 불닭볶음면이 본격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2016년, 삼양식품 영업이익은 253억원으로 급증했다. 불닭 열풍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K컬처 흐름과 현지화 전략까지 더해져 실적은 폭증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지난해를 기점으로 경쟁사 농심의 영업이익을 넘어섰다. 연간 영업이익은 3445억원으로 농심(1630억원)의 2배 수준이다. 전체 매출의 91%(1조5866억원)가 면·스낵 부문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닭볶음면이 써내린 신화다.
독서 시장에서도 변화 조짐을 포착해 성장한 언더독이 있다. KT 밀리의서재는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하는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변화를 포착해 ‘디지털 독서’ 영역을 개척했다. 구독료를 내고 수천 권의 전자책을 무제한으로 읽는 ‘전자책 구독 서비스’는 기존 대형 서점이 시도하지 않았던 방식이다. 초기에는 전통적 독서 습관에 가로막혀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도 밀리의서재는 미묘한 변화를 단순 유행이 아닌 패러다임 전환으로 믿고 사업을 지속, 결과물을 냈다.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726억원, 110억원이다. 수익성만 놓고 보면 선발 주자보다 앞서거나 맞먹는 수준이다. 교보문고는 지난해 12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예스24도 영업이익 162억원에 그쳤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지유진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8호 (2025.05.07~2025.05.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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