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분 15% 더존비즈온에 넘겨 ERP와 금융 접목 신사업 추진 전국 기업 대상 영업 가능해져 중기·소상공인 특화금융 추진
신한금융 계열사인 제주은행이 국내 전사적자원관리(ERP) 시스템 1위 기업 더존비즈온과 손잡고 중소기업·소상공인 특화 디지털 은행으로 변신에 나선다. 지방은행이라는 한계에 작년 기준 당기순이익이 104억원에 불과했던 제주은행의 체급을 전국구로 키우겠다는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제4인터넷은행(제4인뱅) 예비인가 참가를 포기했던 더존비즈온은 제주은행을 통해 금융사업으로 영토 확장에 나선다.
제주은행은 18일 임시 이사회를 열고 더존비즈온을 대상으로 한 제3자 배정방식 유상증자 결의안을 승인했다. 주당 발행가액은 1만55원으로 직전일 종가(8630원) 대비 16.5%가량 높았다. 유상증자 가액은 570억원가량이다. 기존에 신한지주 75.31%, 기타주주 24.69%였던 제주은행 지분율은 이번 증자를 통해 신한지주 64.01%, 더존비즈온 14.99%, 기타주주 21%로 변경됐다. 유증 발표와 함께 8000원 수준이던 제주은행 주가는 1만원대로 급등했다. 이날 제주은행 주가는 전일 대비 28.62% 상승한 1만1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번 전략적 제휴를 통해 제주은행은 그동안 지방은행, 그중에서도 시장 규모가 작은 제주라는 지역적 한계를 넘어서길 기대하고 있다. 더존비즈온이 가지고 있는 약 300만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기업정보를 금융에 접목한 서비스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은행은 더존비즈온의 방대한 ERP 시스템에 접근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된 만큼, 기업의 동의를 받아 실시간 자금흐름과 거래정보를 바탕으로 맞춤형 금융 제안을 할 수 있게 된다. 1차 타깃은 자금 공급에서 소외된 지방 소재 기업이나 중저신용 중소기업이다. ERP 뱅킹은 전국 대상 온라인 사업으로, 기존 오프라인 채널과 함께 '투 트랙'으로 영업을 진행한다. 제주은행은 지점을 제주에서 낼 수밖에 없다 보니 비대면 채널을 고도화해 100% 비대면 기업금융 거래를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제주은행과 더존비즈온은 인력을 선발해 전담조직을 만들어 내년 초에 상품 및 서비스를 내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제주은행 측은 "국내 은행 최초로 ERP 뱅킹 사업을 추진함으로써 지방은행 위기가 심화하는 상황 속에 장기화되고 있는 경영 위기를 타개하겠다"면서 "기존 비즈니스 전략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진옥동 회장은 지방은행 위기를 지속적으로 언급하며 해결책을 모색해왔다. 지방은행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지역에 돈이 돌지 못하고, 그 결과 수도권으로 모든 것이 집중되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진 회장의 생각이다. 신한은행이 작년 말 광주은행과 '같이성장' 협약을 맺고 지방은행이 있는 곳의 시도금고 입찰 등에는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제주은행이 디지털과 300만 중소기업 ERP를 업고 전국으로 영업 무대를 넓히지만 수익은 모두 제주 지역에 재투자하겠다고 밝힌 것도 진 회장이 가진 '지방은행의 지역사회 역할론'과 무관하지 않다. 제주은행 측은 "사업 성과로 창출된 수익은 지역금융 활성화에 재투자해 지역은행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신한은행과 함께 제4인뱅에 도전하려 했던 더존비즈온은 이를 접은 후 또 다른 사업 기회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제주은행 지분투자 및 자사 시스템 공급 등을 통해 금융으로의 확장에 다가설 수 있게 됐다. 제4인뱅 신청 때 더존비즈온이 내세운 것도 디지털과 중소기업·소상공인 특화 은행이었다. 이번 협약을 통해 제4인뱅에 비해 적은 초기 투자 비용으로 비슷한 목적의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게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