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6.20 19:33:50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관문...페즈 여행 핫샤워 전용 욕실 갖춘 낙타 사파리 여행 사하라가 선사한 힐링의 대미는 ‘편안함’ 아틀라스 산맥 바라보며 마라케시로 달리다
모로코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사하라 사막 투어. 세계에서 가장 큰 열대 사막으로 가는 여정은 페즈에서 출발했다. 여행사의 투어 상품을 이용하려던 원래의 계획이 무산되면서 나홀로 사막행을 택하게 된 것. 온갖 선택과 변수를 반복해가며 마침내 사하라의 황금빛 색채와 뜨거운 기운을 가슴에 품었다.
사막으로 가는 시작점, 어쩌다 페즈 여행
낯선 나라를 여행할 때 가장 골치 아픈 숙제는 어디로 갈지, 어떻게 갈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아닐까 싶다. 특히 1인 여행자라면 스스로 길을 찾고 선택하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변수를 홀로 떠안아야 하는데, 아무리 여러 번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다 해도 매번 버겁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그 속내를 감추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노력하는 것뿐, 한번도 닿지 않은 낯선 길에 홀로 두 발 내디딜 때마다 콩닥거리는 심장을 감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향해 전진하는 이유는 낯선 길에 도달했을 때 불확실한 여정이 주는 확실한 쾌감이 또다른 콩닥거림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많고 많은 선택지 가운데 어렵사리 결정한 그 장소가 항상 긍정적인 상황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기에, 여행의 결과는 목적지가 아닌 ‘순간’에 있다. 이렇게 생각해야 매 순간의 선택이 조금은 쉬워진다. 그로 인한 변수를 맞닥뜨리는 상황에서도.
모로코 북부를 둘러본 뒤, 중부를 거쳐 남부로 방향을 정한 건 ‘사하라 사막’이 그 이유였다. 페즈(Fes)에서 출발해 사하라 사막을 거쳐 마라케시(Marrakesh)까지 이어지는 1박2일 혹은 2박3일짜리 사막 투어상품을 온라인 여행사이트에서 확인한 뒤 일단 페즈로 향했다.
페즈 도심에 위치한 현지 여행사를 방문해 세부일정, 비용, 조건 등을 직접 확인해야 안심이 될 것 같았다. 온라인 사이트에 표기된 투어 비용이 모로코의 일반적인 물가를 감안하면 너무나 터무니없이 비쌌기 때문. 반드시 ‘흥정’이 필요해 보였다. 사하라 사막이 아니었다면 선택지에 오르지 않았을 페즈. 이제껏 다른 도시에서 경험한 올드타운은 맛보기용에 불과하다는 듯 거대도시가 뿜어내는 에너지에 압도되며 마침내 그 안에 발을 들였다.
페즈에 도착한 첫날부터 변수는 아주 빠르게 찾아왔다. 사하라 사막으로 가는 여정이 예상보다 훨씬 쉽지 않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흥정에 실패했다. 게다가 높은 비용은 자처하더라도 대다수 여행사에서 제시한 세부일정이나 조건에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대부분 겉핥기식 투어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 ‘사막에 그저 살짝 발만 담글 거라면 전문 가이드, 운전사, 여행사의 도움이 필요할까’ ‘그냥 사하라 사막 투어를 포기할까’ 싶은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곤 그 생각의 끝에서 던져진 질문, ‘그렇다면 나는 왜 페즈에 왔을까?’
이도 저도 아닌 난장판이 되어버린 사하라 사막 여정, 여러 변수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생각의 방향을 바꿔야 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페즈에 왔으니 페즈를 둘러보는 것으로.
페즈는 모로코의 교육적, 문화적 수도로 여겨지는 곳이다. 도시의 전성기로 평가받는 13~15세기에 지어진 이슬람 교육기관인 ‘마드라사’가 올드타운 곳곳에 자리하며, 예로부터 학자와 철학자, 수학자, 변호사, 천문학자, 신학자 등 모로코 전역에서 수많은 교육 및 연구자들이 페즈로 모여들어 교육의 꽃을 피웠다. 페즈 올드타운인 메디나의 명성과 가치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차가 없는 도심 보행자 전용 구역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무두질 공장이 위치해 있다. 페즈 하면 ‘가죽도시’라 불릴 만큼 가죽생산이 예나 지금이나 도시 경제의 주축을 이룬다. 페즈에는 3곳의 무두질 공장이 있으며, 그중 ‘슈아라 태너리(Chouara Tannery)’가 가장 크고 오래된 곳이다.
가죽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염료나 컬러 액체가 채워진 둥근 돌 용기가 가득 들어찬 이 공장은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건물 테라스에서 가죽 생산현장을 직접 볼 수 있다. 공장 내 자리한 상점 주인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물건을 팔기 위해 앞다퉈 가이드를 자처하며 친절하게 민트 잎을 관광객들 손에 쥐어 준다.
한데 향긋한 민트 잎으로 코를 막는다 한들 공장 내부를 꽉 채운 고약한 염료 향을 대신하기란 쉽지 않다. 중세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수작업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는 이곳의 가죽 생산과정은 오랜 세월 도시의 환경오염과 노동자의 건강 문제 등 여러 부정적 이슈를 낳고 있는 실정이다. 테라스에 30분 남짓 머물렀을 뿐인데, 고약한 악취가 온몸에 들러붙어 그곳을 빠져나온 뒤에도 한참동안 가시지 않았다.
10시간의 야간 버스, 마침내 사막마을에 닿다
비싼 비용을 지불해가며 성에도 차지 않는 투어상품을 선택할 바에는 차라리 나홀로 사막행을 택하는 것이 나아 보였다. 다시 말해 이제부터 사막 여행에 필요한 모든 제반 사항과 정보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 사실 사막마을로 가는 이동수단만 찾는다면 이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찾아낸 것이 야간 버스다. 밤새 이동하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으나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일몰이 내려앉은 뒤 어둠이 깔린 페즈 도심의 한 버스정류장, 사막마을로 향하는 밤 버스는 이곳에서 출발, 약 10시간 동안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내달려 다음날 일출과 동시에 도착을 알렸다.
초여름 같았던 페즈의 날씨는 약 450킬로미터를 지나오며 어느새 초겨울 날씨로 바뀌어 있었고, 온몸을 감싼 차디찬 기운이 또다른 변수로 떠올랐다. 사하라 사막은 북아프리카를 가로질러 동서로 약 4,800킬로미터, 남북으로 약 1,200킬로미터가 넘는 길이로 뻗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열대 사막이다. 알제리나 차드, 이집트 등 국토 면적의 대부분이 사하라 사막이 차지하고 있는 북아프리카의 국가들과 달리 모로코의 사막지대는 최남단 일부에만 해당된다. 사막이 차지하는 면적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만, 북아프리카 국가 중 모로코가 사하라 사막 투어로 유명한 데에는 접근이 쉽다는 이유 때문이다.
지역의 도시나 마을을 연결하는 시외버스, 셰어택시 등의 교통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데다, 일단 사막마을까지 버스를 이용해 이동하고 나면 마을에 위치한 호텔이나 여행사를 통해 당일치기 혹은 1박2일짜리 낙타 트레킹 투어에 참여하는 것이 비교적 용이하기 때문이다. 페즈에서 투어상품 대신 ‘나홀로 사막행’을 택한 건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된 것이었다.
사하라 사막에 덮여 있는 남부지대에는 여러 크고 작은 마을이 자리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곳이 메르주가(Merzouga)다. 이 마을은 사하라 사막에서 가장 높은 언덕 중 하나인 에르그 체비(Erg Chebbi)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 에르그 체비는 길이 50킬로미터, 너비 5킬로미터의 모래 언덕으로 평야에서 최대 350미터, 해발 808미터까지 뻗어 있다.
메르주가에서 북쪽으로 5킬로미터 떨어진 하시라비드(Ha-ssilabied)의 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모래 언덕을 마주한 채 일렬로 들어서 있는 여러 곳의 호텔 시설 대다수에는 야외수영장과 레스토랑, 테라스 등이 갖춰져 있어 사막이 아닌 휴양지의 숙박 시설을 떠올리게 만든다. 관광 시설이라고 해봤자 호텔이 전부인 이곳에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낙타 사파리 투어 때문이다.
낙타를 타고 광활한 황금빛 모래 언덕을 누비는 경험, 사실 사막에서의 액티비티는 이것이 전부지만 기나긴 이동과 숱한 선택의 피로를 잊게 해줄 만한 특별한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시시각각 자연에 의해 변화하는 모래 언덕의 신비로운 빛깔과 기운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닐까.
편리와 힐링, 아름다운 사하라 사막에서
사하라가 인생의 첫 사막은 아니다. 한데 어쩌면 여기가 첫 사막이었다면 좋았을 뻔했다. 호텔에서 마련한 1박2일짜리 낙타 사파리 투어는 오전 11시경 시작해 2시간가량 낙타를 타고 모래언덕을 누빈 후 점심식사와 휴식, 샌드보딩 등의 액티비티 활동이 이어진다. 그 다음 다시금 낙타 등에 올라타 1시간 정도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로 이동한다. 일몰 감상 후에는 차량을 타고 캠프로 이동해 그곳에서 저녁식사와 캠프파이어, 밤하늘의 별 관찰, 캠프 내에 마련된 숙박 시설에서 취침을 한 뒤 다음날 오전 일출 감상 후 투어는 끝이 난다.
사실 사막 여행을 떠올리면 뭔가 와일드한 느낌, 거칠고 험난한 야생의 환경, 경험 등을 예상하게 된다. 사하라에서 기대했던 것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놀라운 점은 투어의 시작부터 끝까지 너무나도 깨끗이 잘 정돈된, 달리 말하면 사막이 배경인 도시 여행을 하는 기분이었다는 점이다.
글램핑장에 가까운 사막의 대형 캠프시설에는 10개가 넘는 프라이빗 룸이 조성되어 있고, 각기 룸 내부에는 핫 샤워가 가능한 전용욕실이 있다. 이미 모로코의 사하라를 다녀간 여러 여행자들이 언급했던 대로 이곳의 사막여행은 ‘편리함’이 골자다. 10여 년 전, 인도와 몽골의 사막에서 무너져가는 텐트에 의지한 채 잠을 정했던, 그러나 쏟아질 듯 밤하늘을 빼곡히 수놓은 별을 감상하며 최고의 밤을 보냈던 날것의 경험이 사하라와 계속해서 교차됐다. 그러면서 강산이 변하는 시간 동안 지금쯤 인도와 몽골의 사막에도 글램핌장이 들어서 있지 않을까 싶은 상상이 사하라의 편리함에 명분을 실어줬다.
결론적으로 모로코 사하라 사막에서 ‘개고생’이란 단어는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잘 먹고, 쉬고, 즐긴 ‘힐링’에 가까운 여행이었다. 이곳은 인생의 첫 사막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은, 특히 편리를 쫓는 한국인에게 안성맞춤인 장소가 아닐까. 해가 지면서 주황색으로 변하는 모래언덕의 낯빛, 그리고 별이 뜨면서 보라색으로 또다시 낯빛이 변화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사막이 지닌 고유의 가치는 사하라가 선사한 ‘힐링의 대미’를 장식했다.
인생에서 한번쯤 머나먼 땅으로의 여행을
마지막 여정을 위해 사막을 떠나 도시로 이동한다. 마라케시(Marakesh)까지 안전하게 도달하는 것이 주어진 미션이다. 버스를 타고 12시간 넘게 달려야 한다. 메르주가 버스터미널에서 마라케시 도심까지 가는 시외버스는 오전 7시경에 출발해 하루를 꼬박 버스 안에서 대부분 소비한다. 장시간의 이동이 자칫 지루하지는 않을까 염려했던 마음이 차창 밖 풍경에 눈 녹듯 내려앉는다. 모로코 남부의 경치는 높은 산맥과 험준한 절벽이 서로 앞다퉈 위용을 뽐낸다. 황홀한 전망에 사로잡혀 아침 잠이 그새 달아나버렸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오르는 버스 역시 숨소리 한번 내지 않고 쌩쌩 오르막을 오른다. 잘 닦인 도로가 버스의 몸짓에 날개를 날아준다.
높다란 언덕 위에 조성된 집과 마을은 마치 그림처럼 비현실적인 모습이다. 그러다 그 주변에 서 있는 사람의 형체를 발견하곤 차창 밖으로 바라만 봐야 하는 현실이 아쉽다. 직접 두 발 닿아 저 마을을 둘러보고 주민을 만나면 좋겠지만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은 넓고 두 발은 모래알보다 작다. 아틀라스 산맥의 유려한 풍경을 차창 밖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얼마나 다행인가. 그걸로 충분했다.
12시간의 이동이 지루할 새 없이 한순간에 끝이 났다. 일몰이 내려 앉은 마라케시는 혼돈이 따로 없다. 역사적으로 모로코 왕국의 수도였던 곳, 오래된 요새 안에 상인들과 가판대로 어지러이 섞여 있는 무질서한 도시 풍경이 어느새 사막의 기억을 지운다. 모로코에서 또다시 맞닥뜨린 마라케시 메디나에서 이전의 경험을 다시금 갈아치운다.
모로코는 예스러우면서 현대적인, 낙후된 환경과 잘 정비된 사회시설 사이에 놓인, 도시와 사막을 가로지르며 여행자가 포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다채로운 관광요소를 제공한다. 머나먼 땅을 찾은 보람이 한없이 넘쳐났다. 인생에서 한번쯤 모로코 여행을 선택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로 인해 온갖 변수가 생긴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모로코 여행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경험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테니.
[AI로 요약한 본문 기사 한눈에 보기]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85호(25.06.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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