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사랑과 평화 인터뷰 DMZ 피스트레인 음악 축제서 히트곡 '한동안~' '장미' 연주 MZ세대 떼창하면서 열광해 "펑크는 격식 없이 놀던 음악 젊은이들에게 배우며 발전"
지난 13~15일 강원 철원 고석정에서 열린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마지막 무대에 오른 밴드 사랑과 평화가 관객에게 '러브 앤 피스!'를 외치며 인사하고 있다. 왼쪽부터 키보드 이권희, 드럼 정재욱, 보컬 이철호, 베이스 박태진, 기타 이해준. DMZ 피스트레인 사무국
"신인 그룹 '사랑과 평화'입니다. 올해 제가 일흔셋밖에 안 됐습니다. 여러분, 나 쫓아오려면 멀었죠? 용기를 가지세요!"
지난 13~15일 강원 철원 고석정 일대에서 열린 2025 DMZ 피스트레인 음악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 마지막 순서. 폭우를 뚫고 무대에 오른 밴드 사랑과 평화의 보컬 이철호가 너스레를 떨자 우비를 입고 몸을 흔들던 20·30대 관객도, 우산을 쓰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60대 철원군민 관객도 탄성을 내질렀다. 무대 직전 대기 중에 만난 그는 "서본 무대 중 가장 열광적인 분위기"라며 혀를 내둘렀는데, 무대에선 어느덧 노련하게 떼창을 유도하며 관객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원년 멤버 이철호는 1970년대 중반 최이철, 고(故) 이남이 등과 미8군 무대에서 '서울 나그네'로 활동했다. 이후 밴드는 지금의 이름으로 1978년 '한동안 뜸했었지', 이듬해 '장미' 등을 발표하고 인기를 끌었다. 1999년 키보드 이권희(61)가 합류하며 밴드의 명맥을 이었고, 이후 이해준(42·기타), 박태진(56·베이스), 정재욱(44·드럼)이 들어와 다섯 명이 11년째 합을 맞추고 있다. 2023년 MBN 경연 프로그램 '불꽃밴드'에선 뛰어난 팀워크와 음악성으로 재조명받았다. MZ세대가 몸 부딪쳐가며 춤추고 얽히던 현장에서 밴드에게 데뷔 47년째에도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현재진행형'의 비결을 물었다.
이철호는 "우리 음악이 젊은이들하고 놀기에 좋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 밴드의 음악은 깊은 보컬, 직설적인 표현, 몸을 흔들게 만드는 리듬 등 소위 '솔펑크'로 대변된다. "펑크는 그냥 자연스러운 음악, 흑인들이 길거리에서 아무 격식 없이 리듬 타고 놀던 음악이에요. 힙합이나 랩 같은 음악도 전부 우리 펑크에서 나왔죠."
이권희는 "펑크 음악을 즐기는 건 젊고 나이 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본능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 "누가 들어도 이질감 없고 속도도 딱 적당해요. 몇십 년 몇백 년이 흘러도 인간이 느끼는 리듬감에 큰 차이는 없거든요. 그러니 우리 음악이 '올드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거죠."
실제로 이날 무대에선 '왜 그럴까~ 아마 내가 바보인가 봐'(얘기할 수 없어요), '속절없이 화풀이를 달님에게 해댔지'(한동안 뜸했었지), '장미~ 장미 한 송이'(장미) 등 가사만 들어도 리듬이 떠오르는 곡들이 이어졌고 관객 반응도 '자유' 그 자체였다. 이철호가 허스키한 목소리로 내는 샤우팅과 애드리브, 멤버들의 연주력이 합쳐져 뜨거웠다. 팝송 '스탠드 바이 미', 박상민의 '청바지 아가씨' 등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까지 총 40분간 밴드 사운드를 선사했다.
이들의 연주가 세대 불문 감응하는 건 40~70대 멤버들이 서로 주고받는 자극 덕분이다. 밴드의 나이보다도 젊은 정재욱은 "연륜의 차원이 달라서 항상 배우면서 연주한다"며 "제가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어떻게 고치고 바꿔야 더 좋을지 딱딱 집어내신다"고 했다. 박태진도 "연배가 가장 위이신 철호 형님이 건강 관리를 잘하셔서 여전히 짱짱하신 것 보면 배우는 게 많다"며 "음악을 통한 감동도 중요하지만 외적으로도 관리가 잘된 밴드가 되고 싶다. 우리는 다 같이 모여도 술은 마시지 않는다"고 했다.
'형님' 이철호는 반대로 "막내한테서도 배우고 계속 발전한다"며 "그걸 내 것으로 만들어서 하니까 항상 새롭고 더 나은 게 나온다"고 말한다. 이권희도 "계속 비슷한 나이대 사람들과만 음악을 했다면 이런 색채가 안 나왔을 것"이라고 돌아봤다. "밴드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사람들에게 고정관념이란 게 생기죠. 하지만 지금의 멤버, 새로운 재료로 그걸 완전히 부쉈습니다."
팀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음악이라 소통에도 문제가 없다. 박태진은 "음악 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예민하기 마련인데, 리더가 어떤 의견을 내도 다 듣고 심사숙고해준다"며 "모두가 팀을 최우선에 두니 작은 갈등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공연이 없어도, 심지어 연습마저 하기 어려웠던 코로나19 유행 때도 종종 다 같이 모여 식사하고 차 마시는 게 이 팀의 소통 비결이란다.
지금의 멤버로 정규 10집도 준비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곡이 많아도 계속 내치면서 앨범을 단련하고 있다. '너무 기준이 높은 것 아니냐'고 물으니 "곡이 많아도 펑크다워야 한다"며 "기준은 높을 수밖에 없다. 그게 연륜"이란 답이 돌아왔다. "요즘 '밴드 붐'이라고 유행한 후배 밴드들 음악도 들어봤지만, 대부분 기획사를 등에 업고 나온 경우가 많죠. 모든 걸 직접 하는 우리와는 다른 세상이에요. 그 대신 우리는 우리만의 '오래된 묵은지'의 맛을 유지해야죠. 그걸 젊은 친구들이 보면서 또 새롭게 느끼는 거고."(이철호)
DMZ 피스트레인은 2018년부터 매년 여름철(2021년 제외) 고석정을 거점으로 개성 있는 음악 라인업과 체험을 선보여온 음악 축제다. 국내외 대세 뮤지션과 인디 밴드는 물론이고 사랑과 평화처럼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은 윤수일, 이상은, 최백호, 김수철 등이 관객과 호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