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친구가 나에게 '한국인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한국 책 3권만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어떤 책을 추천할까. 실제로 이 질문을 122명의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던지고, 300여 권의 추천 리스트를 받아서 엮은 책 '한국의 마음을 읽다'가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출간됐다.
이 책을 기획하고 엮은 언어학자이자 미술가 노마 히데키를 서면으로 만났다. 도쿄외국어대 대학원 교수를 지낸 그는 한국어 연구에 매진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본인 최초로 한글학회가 주관하는 '주시경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한글의 탄생' 'K-POP 원론' 등이 있는데, 일본 내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 언어·문화 전문가인 셈이다. 이번 인터뷰도 전부 한국어로 진행됐다.
그는 한국과 일본 양쪽의 피를 이어받았다. 그는 "아버지는 일본인,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어머니가 1945년 해방 전에 아마도 열한 살 때쯤 혼자 일본 가고시마현에 왔다. 한국전쟁으로 한국과 연락이 완전히 끊겼고, 일본 사람의 양녀가 돼서 일본 국적이 됐다. 어머니는 한국어도 완전히 잊어버리셨다. 어머니는 한국 출신임을 나에게도 비밀로 했지만, 성인이 되자 그때서야 사정을 이야기해줬다. 이후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2014년 '한국의 지(知)를 읽다'를 시작으로 작년 '한국의 미(美)를 읽다'에 이어 이번 책이 나오면서 11년에 걸친 '한국을 읽다' 3부작 프로젝트가 완결됐다. 이 프로젝트는 원래 한국에 대해 더 잘 알고 싶은 일본인을 위해 기획됐다. 하지만 사실 한국인도 한국을 잘 모르기 때문에 한국인이 읽어도 무방하다.
3부작을 완결한 소감을 묻자 노마 히데키는 "감개무량하다. 한국 문화, 한국의 지적 세계를 함께하는 소중한 시도로 남는다면 기쁘겠다. 정말 많은 소설가, 국어학자, 평론가, 사상가들이 도와줘 큰 힘이 됐다. 10년 동안 시대가 많이 변화했다"고 답했다.
그가 체감하기에도 10년 동안 일본 내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극적으로 변했다. K팝·K드라마뿐 아니라 최근 K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노마 히데키는 "일례로 2011년 일본 구온출판사가 새로운 한국 문학 시리즈를 간행하겠다고 했을 때 무모한 실험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시리즈가 이미 30권 가까이 간행됐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한국인 47명, 일본인 75명 등 122명이 저자로 참여했다. 122명의 직업은 시인, 소설가, 언어학자, 번역가, 서점인, 출판인, 저널리스트, 심리학자, 철학자, 미술가, 음악가, 사진가, 건축가, 영화제작자 등 다양하다. 그들은 한국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책을 추천했고, 책마다 한두 쪽 분량의 선정 이유를 밝혔다.
노마 히데키의 추천 책은 따로 실려 있지 않다. 그래서 그에게 추천할 책을 묻자 "전공자로서 편애를 담아 꼽자면 '훈민정음 해례본' '훈민정음 언해본'이다. 기적과 같은 책"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 책 어디에서 '마음'을 읽을 수 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두 책 모두 뭐랄까, (언어학자로서 감동받아)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 출판사의 1962년 '조선말사전'도 대단한 책"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