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시장에 간다고 생각해 보자. 반짝이는 조명, 상인들의 활기찬 목소리, 진열대에 놓인 신선한 상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어떤 가게에서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냉동 수산물에다가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생선을 내놓는다. 포장만 화려한 빈 상자다. 이런 상품이 계속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파리 떼가 꼬이고 옆에 있던 좋은 물건까지 덩달아 하등품 취급을 받게 된다.
요즘 우리 자본시장은 어떠한가. 경제 규모에 비해 상장기업 수는 지나치게 많고, 그중엔 성장성이나 생존 능력이 의심되는 '좀비기업'들도 여럿 진열된 채 남아 있다. 문제는 이런 기업들이 좀처럼 시장을 떠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퇴출이 지지부진하면, 전체 시장의 매력도 함께 희석된다. 주가 조작 세력의 타깃이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장이 비싸게 평가받을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는 셈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도 어떤 기업을 진열대에 올릴지, 내릴지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 듯하다. 작년부터 심사 기조가 변화되고 투자자가 찾지 않는 종목을 좀 더 과감히 퇴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불공정 거래를 선제적으로 방지하는 차원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행보다. 하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상장 문턱에서 탈락한 기업은 "기술력을 보지 않고 숫자만 본다"고 항변한다. 기업의 성장 경로를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퇴출 대상이 된 기업은 로비에 소송까지 동원하며 버티기에 나선다. 이에 거래소 직원이나 외부 심사위원들이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명심하자. 상장은 엑시트(exit)의 도구가 아니라, 점프(jump)의 기회여야 한다. 기존 투자자가 돈을 회수하는 장이 아니라, 기업이 한 단계 더 성장하기 위한 무대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거래소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짜 기술' '부풀린 매출'과 같은 화려한 포장지에 현혹되지 말고 '한 번 더 도약할 힘이 있는지' '투자자들의 자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
사실 진주를 고르기는 쉽지 않다. 투박하지만 진귀한 천연 진주가 있는 반면, 사람 눈을 속이는 가짜 진주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진짜와 가짜는 빛깔부터 다르다. 거래소의 안목은 단기 이해관계보다, 장기 신뢰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
물론 당장은 불평이 나올 수 있다. 기술력 하나만 믿고 특례상장을 하던 기업들이 심사에서 탈락하고, 엑시트 타이밍을 기다리던 투자자들은 예민해진다. 하지만 '묻지 마' 상장, 무늬만 혁신 기업이 넘치는 시장은 결국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불신은 금세 전염되고, 시장 전체를 싸게 만들어 버린다.
'진주 같은 기업'을 발굴하는 일이 바로 상장 업무다. 비전과 실행력을 갖춘 알짜 기업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것. 거래소는 선택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 역할을 잘해낼 때, 기업공개(IPO)는 기업엔 도약대가 되고, 투자자에겐 신뢰의 회복이 되며, 시장은 건강한 선순환에 접어들 수 있다.
좋은 시장이란 상품만 많이 늘어놓는 시장이 아니라 '질 좋은' 상품이 진열된 시장이다. 오늘도 거래소는 그 진열대를 부지런히 정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