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 열릴 시스티나 성당 미켈란젤로가 남긴 천지창조 후대의 엄중한 장소 예견한듯 신의 숭고한 뜻 생생히 담아내 낮은 곳 향한 프란치스코 교황 사회적 약자 돌본 진정한 어른 그런 어른 또 나타나길 기다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셨다. 부활절 미사에서 평화와 축복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바로 다음 날 우리 곁을 떠나셨다니, 아마도 마지막 순간까지 교황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려 노력하신 듯하다.
겸손하고 따뜻하게, 낮은 곳을 먼저 찾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전투구가 펼쳐지는 이 세상에서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이를 품어주었다. 그는 신의 대리인이라는 권위 대신, 한 명의 인간으로서 너무나도 상식적이고 친근하면서도 품위 있는 말과 행동으로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고 노력했다.
애도의 시간을 보낸 지금, 바티칸은 5월 7일부터 다시 시스티나 성당에서 '콘클라베'를 열 준비를 하고 있다. 이곳은 평소에는 바티칸을 방문하는 이들이 꼭 들러 보아야 하는 관광지로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짧게는 몇 년, 길게는 몇십 년에 한 번씩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엄중한 공간으로 돌아간다. 물론 이곳은 미켈란젤로의 천장화와 '최후의 심판' 벽화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1508년,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조각가로 이름을 날리던 젊은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을 장식해 달라고 요청한다. 나는 조각가이지 화가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미켈란젤로에게 율리우스 2세는 그저 예수님의 열두 사도 초상만 그리면 되는 단순한 작업이라며 작가를 달랬는데, 아마도 교황은 권력에 순종하지 않고 예술적 야망이 큰 미켈란젤로의 혈기 왕성한 성정을 미리 알아채고 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역시나 교황의 예상대로 미켈란젤로는 주문을 무시하고, 굳이 어렵고 복잡한 구도를 고안해 높은 곳에 매달려 무려 500㎡에 이르는 천장 가득히 창세기의 이야기를 그려 나아갔다. 빛과 어둠이 분리되던 순간부터, 노아의 방주와 그 이후의 기나긴 이야기를 담은 전체 천장화를 완성하는 데는 무려 4년이 걸렸다.
신이 손가락 끝으로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장면은 오늘까지도 인류 시각 문화의 정점 중 하나로 손꼽힌다. 미켈란젤로는 천장화에 원죄와 구원, 신의 권능과 인간의 한계, 그리고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들의 가르침을 모두 담아내려 했다. 특히 그는 조각가답게 생동하는 근육과 뒤틀린 자세 등으로 신의 피조물로서 완벽하면서도 불안정한 인체를 생생하게 표현했고, 그 앞에 서는 우리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창조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미켈란젤로가 이토록 공들여 그림을 그린 것은 이 공간이 후대에 어떤 역사·종교적 의의를 가질지 파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러 장소에서 번갈아 열리던 콘클라베는 19세기 말부터 시스티나 성당에 정착했다. 이에 참여하는 추기경들은 숭고한 신의 뜻이 인간의 위대한 능력으로 발현된 바로 그 장소에서 누가 우리를 가장 신과 가까운 곳으로 이끌어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되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중에도 지속적으로 이 고민을 담담하게 자문해온 듯하다. 그는 판단보다 이해를, 경직된 교리보다 자비와 연민을 우선시했다. 기후위기와 사회 불평등을 끊임없이 상기시켰고, 성소수자들을 내치지 않으면서 전통을 뒤흔든다는 내부적 비판도 받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해주며, 늘 사회의 밑바닥에 있는 이들 곁에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과 닮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는 목을 한껏 젖혀야만 볼 수 있는 거대한 그림 이야기로 땅 위에서 사는 인간이 신을 찾아 떠나는 신념의 여정을 우러러보게 만들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 늘 먼저 아래로 내려가 위를 올려다보는 행위를 통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고자 했던, 우리에게는 하늘이 내려준 축복과도 같은 지도자의 표상이었다.
세상은 점점 더 혼미해지지만, 한 사람의 진심이 담기기만 한다면 미켈란젤로의 그림처럼 하나의 공간이, 교황의 눈길처럼 온 세상이 바뀔 수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이번에도 사랑을 먼저 말하고, 가장 낮은 자리부터 찾는 그런 어른이 또 우리에게 와 주길, 다시 위를 올려다보며 새로운 이름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