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미래정책 사령탑 AI·디지털 자산 정책 주도 혁명적 변화 물결 이끌어 파괴적 혁신가 역할 기대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A는 내분비학자였던 아버지의 길을 걷기를 거부했다. 오히려 할아버지가 운영했던 사탕 공장에 더 관심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맥킨지에 잠시 근무했던 그는 이후 스타트업 창업자, 벤처캐피털리스트로 경력을 쌓았다. 본인이 창업한 회사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해 수천억 원대 자산가가 됐다. 그는 지금 인공지능(AI)과 디지털자산이 바꿀 세계를 설계하는 총책임자 자리에 올랐다.
B는 대학 졸업 후 30년 이상을 엘리트 경제 관료로 살아왔다. 굳건한 소신 탓일까. 정무직 공무원 시절 이례적으로 여당 의원들로부터 사퇴 요구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적었고 이후 다른 경제부처 핵심 요직으로 영전했다. 그랬던 그가 3년 전 블록체인 회사로 이직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최근 정부의 정책 최고사령관을 맡게 됐다.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은 이렇게 달랐다. 하지만 맡은 일은 비슷해졌다.
A는 백악관 AI 및 가상자산 차르(최고책임자)에 오른 데이비드 색스다. B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다. 미국과 한국에서 각각 미래의 판도를 바꿀 AI, 디지털자산 정책을 다룰 책임자 위치에 오른 것이다.
색스는 취임 6개월 만에 새 정책을 연쇄적으로 쏟아냈다. 비트코인을 석유, 금, 희토류처럼 전략 비축 자산화하겠다고 선언했다. 그가 15년간 페이팔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일하며 꿈꿨던 스테이블코인은 이제 제도권 화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는 2017년 한 인터뷰에서 "가상화폐는 페이팔이 꿈꿨던 새로운 세상의 화폐(New World Currency)"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 화폐는 찍어낼수록 가치가 떨어지지만 채굴량 한도가 있는 비트코인은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국가가 존재하고 그 국가를 토대로 중앙은행이 화폐 발행 권력을 독점하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당장 국가와 분리되는 화폐(Separation of State and Money)를 인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일수록 이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내재 가치가 없어서 가상화폐를 인정할 수 없다는 반론이 많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내재 가치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가 시작된 것이다. 지폐에 처음부터 내재 가치가 있었을까. 종이 쪼가리였지만 신뢰의 자본을 쌓아가자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중앙집권적인 정부는 인위적으로 통화량을 조절할 수 있다. 하지만 탈중앙화된 수학적 프로토콜로 관리되는 비트코인은 누구도 발행량을 조작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의 자본이 축적되고 있다.
이미 앞선 국가에선 정폐분리(政幣分離·국가와 화폐 발행 주체의 분리)라는 새로운 시대적 사조를 받아들이고 있다. 경쟁국인 싱가포르에선 QR코드만 찍으면 가상화폐로 편리하게 결제할 수 있다. 복잡한 기술적 개념 또는 결제 흐름도를 이해할 필요도 없다. 마치 디지털 포인트를 쓰듯 결제의 한 수단으로 들어왔다. 송금 또한 혁명적으로 신속해지고 비용은 낮아졌다.
김 실장은 그 누구보다 이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이름까지 같아 오랫동안 교류해왔다. 그를 만날 때마다 탁월한 식견, 다부진 논리에 늘 뇌에 침을 맞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정책실장에 발탁됐을 때 디지털자산 분야에서 '흥선대원군식 쇄국정책'이 끝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한국이 갈라파고스 군도로 몰락할 것인가. 아니면 이런 새로운 시대적 물결에 올라탈 것인가. 그의 어깨에 무거운 책무가 놓여 있다. 색스와 김용범. 두 사람이 역사적 변혁기에 새 시대정신을 만들어갔다는 후대의 평가가 내려지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