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을 기자로 살아오다 보니 휴대폰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이 1만명에 가깝다. 사람 만나는 게 일인 직업이라 전화번호는 계속 쌓여 간다. 물론 평소에 연락하고 지내는 사람은 100명이 될까 말까다.
올해 들어 '이 사람은 뭐하고 사나'라는 생각을 부쩍 자주 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 텔레그램 가입 알림 메시지다. 기억 저편 너머 잊고 있던 사람들, 연락하고 지내지 않지만 뭘 하나 궁금했던 사람들이 새로 텔레그램에 가입했다며 알림이 날아온다.
휴대폰을 바꾸면서 새로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는 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작년 말 온 나라를 뒤흔든 비상계엄과 이어진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상황에서 기존에 텔레그램을 썼다가 탈퇴한 후 새로 가입한 사람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기자의 주소록에 한정해서 본 것이긴 하지만, 메신저 앱을 새로 깐 사람 중 상당수는 대통령실에서 근무했거나, 정치권에 몸담았던 사람들이었다. 혹시나 탄핵 이후 '털릴까봐' 휴대폰을 바꾸고 새로 메신저를 깔았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추정을 해본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카카오톡이나 다른 메신저보다 텔레그램을 선호했다. 국내 메신저의 보안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아서다. 텔레그램의 경우 카카오톡과 달리 '대화 지우기'가 가능하다는 점, '비밀 대화방'을 열면 대화 캡처가 불가능하다는 점 등도 아마 비밀이 많은 정치권하고 잘 맞았던 것 같다.
몇 년 전 용산 대통령실을 출입했을 때 행정관들과 텔레그램으로 대화를 나누고 다시 찾아보려 하면 이미 대화가 모두 삭제된 경우가 허다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안'을 이유로 전 정부에서 즐겨 썼던 텔레그램은 신규 앱 설치를 알람으로 송신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른 측면의 '보안'에 취약하다는 걸 드러냈다.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나고 나흘이 지난 작년 12월 7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텔레그램에 새로 가입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아니나 다를까, 검찰은 그가 '깡통폰'을 내고 텔레그램 계정을 삭제해 증거 인멸을 시도했을 수 있다고 봤고, 결국 그는 구속됐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여러 일이 온 국민을 피곤하게 하고 우리는 지난 4일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했다. 사고는 정치하는 자들이 치고, 그 뒤처리는 세금으로 했으며, 스트레스는 국민이 받았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도 2주가 돼 간다. 정권 말 현상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 같은 '텔레그램 가입 알림'이 이번 정부 임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엔 적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