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12 09:45:09
국민의힘의 대선 최종 후보가 우여곡절 막장 드라마 끝에 김문수 후보로 결정됐다.
하지만 경선과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국힘 의원들의 실망스런 행태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김 후보와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간 후보 단일화가 늦어지자 앞서 탈락한 경선 후보들은 비방과 면책성 훈수두기에 바빴다. “내 그럴줄 알았다”며 본인 선견지명을 과시하려 하거나, 과거 주요 직책을 맡은 당은(黨恩)을 입고도 당에 대한 섭섭함부터 털어놨다.
10일 새벽 당 지도부는 갑작스런 대선 후보 등록 재공고로 12·3 비상계엄 발표 저리가라 할 만한 섬뜩한 장면도 연출했다. 한 전 총리로의 단일화가 최종 목표였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그간 김 후보의 쇠고집을 욕했던 사람들마저 ‘저건 아니지’라며 반감을 키웠다. 국힘 의원들이 당원 투표로 김 후보를 원위치시켜 민주 정당임을 입증해낸 것이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기존 국힘 문법대로라면 한 전 총리 역시 경선 후보들처럼 6·3 대선은 이젠 본인과는 무관하다고 치부할지 모른다. 그동안 후보들 대다수는 겉으론 김 후보를 돕겠다고 했지만 뒤에선 잡음을 내며 단합을 해쳐왔다.
그러나 한 전 총리만은 국힘을 이제껏 망쳐온 각자도생·사분오열·적전분열·동상이몽의 모습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한 전 총리는 11일 김 후보를 만나 “대선 승리를 기원한다”며 “할 수 있는 일을 돕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다른 후보들도 립서비스로 했던 말이다. 한 전 총리는 정치권 때가 덜 묻은 사람인 만큼 좀 달라야 한다. 그가 “이제 저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간다”고 했는데, 홍준표 전 대구시장과 비슷한 말로써 국힘이 처한 고난에 나몰라라 해선 안된다.
한 전 총리는 줄곧 이재명 정권 탄생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이는 후보에서 물러난 지금도 달라질 게 없다. 이재명 정권이 향후 대한민국 발전에 해가 되는 것을 막고자 총리를 그만두고 나왔다면 김 후보 승리에 다소 언짢더라도 그가 판단한 국익과 대의를 위해 행동을 계속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분의 국가 사랑과 그 실행은 일반 정치인과는 차원이 달라야 한다. 그가 단일화에서 뜻을 이루진 못했지만 지고도 김 후보를 적극 돕는 모습은 향후 대선 결과를 떠나 불신이 가득한 우리 정치계에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다. 그가 솔선한다면 다른 국힘 의원들도 따라 움직일 것이다.
특히 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내며 했던 일이 지속되길 바란다면 국힘의 정권 재창출은 그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경제통상 분야 전문성과 무수한 국정 경험은 김 후보와 국힘의 수권 능력에 안정감을 더할 큰 자산이다. 김 후보 역시 최종 목적이 단일화 자체가 아니라 대선 승리라면 한 전 총리를 삼고초려라도 해서 모셔와야 한다.
국힘의 향후 빅텐트 시도에서 ‘반(反)이재명’ 명제는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됐다. 정책 공약과 비전도 좋지만 일단 좁아진 빅텐트에라도 모이려면 우선 명분은 반이재명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선을 3주일 남겨놓고 정책 궁합만 맞추다간 빅텐트는 물건너간다.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을 놓고 사법부를 겁박하며 대법원장 청문회를 열고, 탄핵·특검·국정조사 추진, 이재명 방탄 입법까지 나선 민주당에 맞서 반이재명 연대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 후보가 국회와 정부까지 장악하게 됐을 때 그동안 없던 무슨 또 황당한 일을 겪게될지 모른다. 그가 지금은 웃으며 우클릭 행보를 강조하지만 집권 후 원상복귀 한다고 해서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때그때 말이 달라지는 그의 성향 때문인데,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존경한다 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는 뒷담화가 집권 후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민의힘과 상당수 국민은 이런 예측불가한 이재명 정권 탄생에 걱정이 크다. 유권자는 표로 결단하면 되지만 국힘은 대선 전까지 혼연일치로 뛰어야 한다.
한 전 총리가 김 후보에 적극 협력한다면 기성 정치에 깨달음을 주고 ‘한덕수는 그릇이 크다’는 점을 보여줄 것이다. 총리직 사퇴가 대권이라는 개인 영달이 아니라 이재명 독재를 막기 위한 결단이었음을 다시 한번 입증하는 길이다.
김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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