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경기도 이천에 다녀왔다. 시속 100㎞로 달리는 차들 사이에서 트럭 화물칸에 붙은 '부릅뜬 눈' '치켜뜬 눈'이 번뜩였다. 밤길엔 질주하는 트럭 눈이 고양이처럼 빛났다.
아이 장난 같은 이 트럭 스티커는 한국도로공사의 작품이다. 2020년 초 한국도로공사는 화물차 후면 추돌 사고를 줄이려 '잠 깨우는 왕눈이' 스티커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의 40%가 화물차 후면 추돌 사고에서 발생하자, 공사가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아이디어다. 전조등이 왕눈이를 비추면 반사된 빛이 200m까지 전달된다. 누가 지켜본다는 느낌을 줘 후방 운전자의 안전 운전도 유도했다.
다음달부터 '2025년 버전 왕눈이'를 연상시키는 고령자 표지가 서울에 배부된다. 서울시는 '어르신 운전 중' 표지를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가 모는 차량에 배부하기로 했다. 고령 운전자 차량을 주위에서 알아차리고 조심하라는 의도다. 서울에서는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사고가 지난해만 400건 이상 늘었다.
'고작 스티커냐'고 얕볼지 몰라도 제법 효과가 있다. 2010년 미국 뉴저지에서 21세 미만 운전자의 차량에 붉은색 반사 스티커를 부착하게 한 후, 청소년 운전자 교통사고 발생률이 9.5% 감소했다. 지난해 한국교통안전공단 조사에서 고령 운전자 10명 중 6명은 고령 운전자 표지가 안전성을 높인다고 답했다. 일반 시민 10명 중 9명도 '표지 부착 차량에 배려하겠다'고 화답했다.
우리나라 노인 인구는 이미 20.2%를 넘었다. 고령 운전 사고를 줄이려면 고령자 면허 반납을 최대한 유도하고, 필요하면 안전 장치를 다는 게 근본적인 해결이다. 그래도 사고 예방 첫걸음으로는 고령자 표지도 뜻깊다. 초보 딱지를 붙인 차에 너그럽듯, 어르신 운전 차량에도 배려가 필요하다.
누구나 '초보'로 시작하고, 대부분 '어르신 운전 중'으로 마무리하게 될 고령화사회다. '초보 운전'만큼 '어르신 운전 중' 표지가 익숙해질 날이 머지않았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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