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1.14 10:40:39
국민의힘 극단세력과 밀착 대통령 감싸는 것은 퇴행 민심과 역주행도 위험 보수 재편·쇄신없인 미래없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전통과 기존 제도를 유지하려는 보수 정당을 도널드 트럼프 같은 급진적인 지도자가 장악하면서 민주주의 근간이 위협받는 상황을 ‘보수의 자폭’이라고 표현했다. 신작 ‘넥서스’에서다. 지금까지 대체로 합리적으로 작동돼 온 제도를 파괴하고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건설하자는 것은 보수주의가 아니라 혁명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 정상화’란 명분으로 선포한 12·3 비상계엄도 ‘보수의 자폭’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계엄 헛발질로 ‘공정과 상식’이라는 보수의 자산은 날아가버렸다. 경제는 박살났고, 국격은 속절없이 추락 중이다.
계엄도 놀라웠지만 이후 보수정당 국민의힘이 보여준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행보는 더 놀라웠다. 국회로 계엄군이 난입하던 그날 밤,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계엄 해제 요구안에 찬성표를 던진 의원은 18명에 불과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한 국민의힘 의원도 12명에 그쳤고 당은 이들을 배신자로 낙인찍고 ‘왕따’시켰다.
윤 대통령이 관저를 ‘철조망 요새화’하고 버티기에 들어가자 국민의힘의 ‘대통령 감싸기’ 행태는 더 노골화하고 있다. ‘대통령 지킴이’를 자처하고 한남동 관저에 모습을 드러낸 의원들은 40여 명에 달했다.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이 위법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함이라지만, 계엄 옹호이자 아스팔트 보수층에 동조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윤상현 의원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최하는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해 90도 ‘폴더 인사’를 해 논란을 자초했다. 국민의힘이 임명한 대변인이 계엄군의 선거관리위원회 장악을 ‘과천 상륙작전’이라고 미화한 과거 발언이 알려져 반나절 만에 자진사퇴하는 일도 벌어졌다. 급기야 김민전 의원은 과거 사복 체포조인 ‘백골단’ 이름을 붙인 한남동 관저 사수 단체의 국회 기자회견을 주선해 물의를 일으켰다. 계엄을 정당화하고 총선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극단세력과 국민의힘의 밀착은 우려를 자아낸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를 쓴 하버드대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공당이 극단주의 세력과 손잡고 이를 정당화할 때 민주주의 기반이 침식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의 우경화가 위태로워 보이는 이유다. 강성지지층에 기대는 이런 모습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보수가 제대로 쇄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당시 보수진영은 내부경쟁으로 분당까지 갔지만 중도우파를 중심으로 한 바른정당의 실험이 실패하면서 보수 혁신의 기회를 잃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의 학습효과도 있다. 탄핵 찬성파들이 배신자로 몰려 정치 생명이 끊어진 것을 보며 강성 지지층에 끌려가고 있는 형국이다. 오로지 정치적 생존과 권력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최근 정당 지지율이 12·3 이전으로 돌아가자 국민의힘은 더 고무된 모양새다. 하지만 자신들이 잘해서라고 착각해선 곤란하다. 민주당이 잇단 탄핵으로 국정 혼란을 방치하고, 윤 대통령 수사에 조급증을 보인 데 따른 반사효과일 뿐이다.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다는 여론은 64%로 여전히 압도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보주주의 창시자 에드먼드 버크가 정의한 보수의 요체는 신중하고 질서 있는 변화, 점진적 개혁이다.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는 ‘수구’도, 급진적인 ‘극우’도 아니다. 지금 국민의힘은 자기성찰도, 쇄신도 안중에 없다. 경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데도 관심이 없다. 민심을 외면한 채 혁신과 재편 없이 민주당의 헛발질만 기다려서는 미래가 없다. 중도층 외연 확장 없이 극단세력과만 연대하는 것은 보수의 자멸을 재촉하는 것이다. 비겁하고 쉬운 길을 선택할 때가 아니다. 보수가 지켜야 할 가치와 품격을 다시 올곧게 세울 때다.
[심윤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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