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5.21 19:22:18
언제 어디서나 SW 업데이트 “자율주행 등 각종 서비스 변경·추가·삭제 자유자재” 즐길거리도 크게 늘릴 수 있어 차 업체는 부가수익창출 가능 초고성능 컴퓨터가 차체제어 두뇌 역할 OS 개발경쟁 치열 자율주행규제 등 장애물 많아 범정부 차원 지원 절실한 상황
글로벌 자동차 산업은 지난 100년 넘게 이어온 산업의 패러다임을 한꺼번에 바꿀 수 있는 커다란 혁신을 마주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Software Defined Vehicle)’이라고 불리우는 신개념 자동차가 그것이다.
SDV란 자동차의 전 생애주기에 걸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한 서비스의 변경·추가·삭제가 가능한 차량이다. 이에 더해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차량 운행 중 만들어지는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학습해 개인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 쉽게 말해 기존의 차량이 단순 통신 수단인 피처폰이라면 SDV는 통화 기능뿐만 아니라 인터넷 검색, 사진 촬영, 음악 감상 등 다양한 기능이 통합된 스마트폰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SDV는 ‘중앙집중형 하드웨어 플랫폼’과 ‘차량 제어 소프트웨어’를 두 개의 축으로 삼는다.
중앙집중형 하드웨어 플랫폼이란 차량의 모든 기능을 1~2개의 고성능 컴퓨터(HPC)와 극소수의 전자제어유닛(ECU) 만으로 작동시킬 수 있도록 단순화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차량은 엔진·변속기·공조장치 등 부품에 설치된 ECU를 통해 각각의 부속을 따로 제어한다. 이러다보니 대당 ECU가 수백 개 들어가고 ECU를 전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한 배선(와이어링 하네스)도 수백 m가 필요하다.
반면 SDV는 1~2개의 HPC와 차량 구역별(전면 왼쪽, 전면 오른쪽, 후면 왼쪽, 후면 오른쪽 등)로 설치된 소수의 ECU를 통신용 배선으로 연결하는 것만으로 자동차를 제어할 수 있다. 여러 개로 흩어져 있던 ECU를 한두 개에 집약했다고 보면 된다. 실제로 테슬라는 중앙집중형 하드웨어 플랫폼 설계를 통해 차량 1대당 ECU를 5개로 축소했고 배선도 1만피트(약 3048m)에서 328피트(약 100m)로 확 줄여 차량 무게를 덜고 공간 활용을 최적화할 수 있었다.
이재수 벡터코리아 사업부장은 “제어기가 여러 개면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할 때 제어기마다 따로 해야 하기 때문에 정비소를 찾아가도 시간이 많이 걸린다”며 “반면 SDV의 통합형 제어기는 중앙컴퓨터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를 통해 모든 기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드웨어 플랫폼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SDV를 구동하기 위한 소프트웨어다. SDV의 핵심 소프트웨어는 △차량제어용 소프트웨어 △자율주행 구현을 위한 소프트웨어 △인포테인먼트를 위한 소프트웨어 등이다. 이처럼 여러 소프트웨어 간에 충돌이나 오류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적화하는 기술도 필요하다. 특히 차량의 동작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차량제어용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커져 각 완성차 업체는 물론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까지 개발에 뛰어든 상황이다.
SDV의 또 다른 특징은 소프트웨어를 무선으로 업그레이드해 차량을 최신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예전보다 훨씬 정교한 주행이 가능한 새로운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면 SDV는 이를 무선으로 업데이트해 개선된 기술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 부장은 “스마트폰의 운영체제(OS)가 업데이트되면서 새로운 기능이 설치되기도 하고 기존 소프트웨어의 불안정한 부분을 수정할 수도 있는 것과 똑같다”고 설명했다.
SDV시장은 매우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프리시던스 리서치(Precedence Research)의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 SDV시장 규모는 2023년 425억달러(약 60조4350억원)에서 2028년 1035억달러(약 147조1770억원)로 성장하고 2034년에는 3001억달러(약 426조6821억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SDV가 각광받게 된 가장 큰 이유로 자율주행기술의 발전을 꼽는다. 기본적으로 자율주행 시스템은 고성능 컴퓨터를 요구한다. 이에 더해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므로 결함이 발생해서는 안되며 차량을 판매한 이후에도 더 안전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가 개발될 경우 업데이트를 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업데이트가 필요할 때마다 정비소에 차를 끌고가 부품별로 소프트웨어를 업데이트해야 한다면 시간과 비용이 늘어나고 이를 꺼리는 소비자도 있을 수 있다. 이때문에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간편한 SDV가 자율주행 시스템 보급·정착을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또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는 고성능 컴퓨터가 제어하는 SDV에서 구동될 때 더 정확하고 안전하다.
이뿐만 아니다. 다양한 인포테인먼트 소프트웨어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크게 늘려줄 수 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처럼 다양한 차량용 앱이 개발되면 무선 통신을 통해 내려 받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동차 제조사나 소프트웨어 개발자 입장에서도 차량을 판매한 후 앱 등을 통해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매력적인 부분이다. 심지어 자율주행용 소프트웨어 등도 성능에 따라 차별화된 가격에 판매할 수 있고 이를 구독형 서비스로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SDV는 일반 전기차에 비해 1회 충전으로 갈 수 있는 거리가 길고 공간 활용성이 좋다는 점도 강점이다. 기존 전기차의 경우 분산된 제어 시스템을 연결하기 위한 배선이 많이 들어간다. ‘얇은 배선 무게가 얼마나 나간다고’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수천 m 단위로 설치될 경우 그 무게는 수십 ㎏에 달하고 차지하는 공간도 많아진다. SDV의 통합형 시스템은 배선 수요가 대폭 줄기 때문에 차량 무게를 줄이고 차량 내부 공간을 넓힐 수 있다.
국내 업체 가운데 SDV 개발을 주도하는 회사는 현대자동차그룹이다. 현대차그룹은 연내 SDV 개발을 완료하고 2026년부터 양산 모델에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개발자 콘퍼런스 행사 ‘플레오스 25’에서 개발 중인 SDV에 대한 힌트를 제공했다. 송창현 현대자동차 사장은 “OS 소프트웨어인 ‘플레오스 비히클 OS’는 차량의 지속적인 연결과 무선 업데이트를 가능하게 해준다”며 “현대차그룹은 제어기 수를 고성능 컴퓨터와 존 컨트롤러 중심으로 통합해 전체 제어기기를 약 66%를 줄이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동시에 현대차그룹은 OS, 자율주행을 위한 AI, 거대언어모델(LLM) 등 핵심 소프트웨어 3종을 공개했다. SDV 출시를 위한 기본적인 준비가 끝났음을 선언한 셈이다.
이밖에 차량용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 업체인 오비고, 팝콘사 등과 SDV 시대를 맞아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차량 보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아우토크립트 등도 관련 회사로 분류된다.
어느 정도 수준의 기술이 적용된 자동차를 SDV로 분류하느냐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 하지만 미국 테슬라가 현재 판매하고 있는 차량은 SDV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또 중국의 샤오펑 등이 제조하는 차량도 SDV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다만 제동장치처럼 안전과 직결된 시스템은 통합하지 않고 따로 분리한 테슬라 같은 업체가 있는 반면 샤오펑처럼 안전 관련 시스템도 모두 하나의 컴퓨터로 통제하는 방식을 사용하는 회사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회사가 만드는 SDV는 안전에 보수적인 편인 반면 IT 업체 기반의 중국 기업들이 모든 시스템을 SDV 형태로 전환하는 데 적극적”이라며 “아직 어느쪽이 정답이라는 결론은 내려지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완성차 업체는 물론 반도체·배터리 기업, 스타트업을 모두 연결하는 ‘SDV 생태계’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한다. 중국은 2022년 국가적 차원에서 SDV용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만들었다. 이후 중국 각 업체들은 이 플랫폼을 기반으로 자체적인 OS를 만들고 있다. 일본 정부도 지난해 중국과 같은 SDV용 표준 모델을 개발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정구민 국민대 전자공학부 교수는 “SDV는 이제 막 시장이 형성되는 단계로 한국이 차세대 먹거리로 키울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며 “한국 정부는 분산돼 있는 SDV 관련 기술 업체들이 협력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SDV의 핵심인 자율주행 관련 규제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율주행 관련 규제가 꽉 막혀 있어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과 분석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개별 부처가 아닌 범정부 차원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자율주행이 가능한 SDV 개발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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