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오션 수주한 美해군 '유콘함 정비'현장 가보니 31년된 美함정 거제서 '수술' 美서 의뢰받은 80건 고장에 검사통해 200여건까지 해결 美검사관 "속도·품질 놀라워" 美해군 최대약점 된 조선업 인프라 낡고 인력도 부족 공급망 와해까지 3대 악재 경쟁력 1위 K조선에는 기회
한화오션 거제 조선소로 미국 해군 7함대 소속 유류 보급함 유콘함이 지난 3월 6일 입항하고 있다. 한화오션
철저하게 출입이 통제되는 한화오션 거제 조선소의 특수선 야드. 군함을 건조하고 정비하는 사업장이어서 기밀 시설이다. 지난 21일 보안서약서를 작성하고 특수선 야드에 들어서자 미국 해군 유콘함(유류 보급함)이 눈에 들어왔다. 도크에 놓인 유콘함의 선미 쪽 갑판과 지상을 연결하는 계단의 끝까지만 접근이 허용됐다. 유콘함 선상은 국제법상 미국 영토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2~3m 건너에 있는 갑판 위는 미국 해군 군무원들과 한화오션 직원들이 유콘함 도면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한미 조선 협력의 현장이었다.
박정훈 한화오션 특수선 MRO TF팀 책임은 "30년 넘게 쓰던 배가 들어오고 나서 검사해봤는데 당초에 발주된 80여 건의 수리 항목 외에 200여 건이 추가로 확인됐다"면서 "5월 말에 미국 해군으로 넘겨줄 계획인데 항목이 계속 늘어나 350건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화오션이 미국 해군 유지·보수·정비(MRO) 사업에 참여해 두 번째로 수주한 유콘함은 1994년에 취역해 선령이 31년에 달한다.
박정훈 한화오션 특수선 MRO TF팀 책임(왼쪽)과 볼로디미르 보로베츠 미국선급협회(ABS) 수석검사관이 조선소에서 손을 맞잡은 모습. 한화오션
거제 조선소에서 미국 해군 함정의 MRO 사업을 관리·감독하는 볼로디미르 보로베츠 미국선급협회(ABS) 수석검사관이 유콘함에서 내려왔다. ABS 현장 책임자의 언론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한화오션은 설명했다. ABS 경력 10년 차인 보로베츠 검사관은 2023년 말부터 가족과 함께 한국에서 살고 있다. 첫 번째 미국 해군 MRO 대상이었던 '월리 시라'호도 그의 서명을 받은 뒤 한국에서 출항할 수 있었다. 보로베츠 검사관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양국 전문가들이 더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소통한 경험"이라면서 "앞으로 한국 조선소들이 미국 해군과 협력할 때 이것이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한미 조선 협력에 힘을 실었다. 그는 "특히 품질이 떨어지지 않으면서 작업 속도가 빠른 것은 쉽지 않은데 한국이 이를 실현해낸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강조했다.
미국 조선업계 경력이 짧지 않은 보로베츠 검사관의 평가대로 한국은 미국 조선업의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 조선사들의 3대 문제점인 △노후화된 생산 인프라스트럭처 △인력 부족 △공급망 와해를 해결해줄 수 있는 세계 1위의 경쟁력을 한국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업 경쟁력은 글로벌 수주로 확인된다. 영국 클라크슨리서치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 수주량은 한국이 55%로 1위에 올랐고, 중국이 35%로 뒤를 이었다. 중국은 자국 물량을 소화하는 비율이 매우 높다. 유럽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발주하는 최신 대형 선박은 첨단기술과 납기 준수를 인정받아야 하는데, 한국 조선업체들이 대부분 수주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조선소는 상선 건조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혁신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결과로 얻어낸 효율성이 최근 들어 미국 조선산업과 비교돼 회자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미국에서 선박을 건조하는 비용이 한국보다 6배 더 비싸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이 같은 경쟁력을 갖춘 데는 글로벌 수주 1위에 오르기까지 지속적인 기술인력 확보와 함께 협력업체들과의 공급망 완비라는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업체 임원은 "전형적인 생태계 산업이라는 점에서 조선소뿐만 아니라 주변에도 납기와 품질, 비용 경쟁력을 갖춘 협력업체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선박이 다품종 소량생산이기 때문에 자동화보다는 숙련된 노동력으로 작업해야 하고 조선업 자체 규모가 지속돼온 덕분에 인력도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조선업 종사자 중에서 단순 기술직을 제외한 연구개발(R&D) 인력은 약 20%에 이르는데, 약 1만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대부분 설계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조선소가 미국 해군 MRO 사업에 진출할 수 있던 배경도 이러한 역량을 인정받은 결과다. 올해 초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에서 개최한 회의에 참석했던 우리 군 관계자는 "미국 해군 장성이 '서태평양에서 작전 중인 우리 군함을 기존 방식으로 수리하면 몇 개월 걸리는데 한국에서는 불과 3일 만에 끝났다'고 놀라워했다"면서 "한국 기술력과 빠른 업무를 인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조선 협력은 미국 해군 함정의 MRO와 더 나아가 신규 건조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사업이다. 하지만 수주를 하려면 사업장(조선소)의 군사적 요건을 갖춰야 한다. 국내 사업장은 미국 정부와 군 규정에 부합하는 보안이나 방공망 체계가 아직 부족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