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제조 혁신의 물결이 산업 현장을 급속히 변화시키고 있다. 세계 제조 강국들은 이미 앞다퉈 생산설비에 인공지능(AI)을 도입했다. 독일 지멘스는 디지털 트윈과 AI 예지보전 시스템을 자사 공장에 도입해 불량률을 대폭 낮췄다. 생산성도 20% 이상 끌어올렸다. 보쉬는 AI 기반 품질 검사로 수억유로의 비용을 절감했고, GE는 전 세계 공장에 산업용 AI를 공급하며 글로벌 제조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 이들 기업은 AI를 단순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공장 전체를 최적화하는 두뇌로 활용하는 것이 공통된 특징이다.
이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우리나라 중소기업도 따라잡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이 주관하고 경남을 포함한 부산, 대구, 울산, 경북 5개 지역이 협력하는 '제조업 AI융합 기반 조성사업'이 이런 흐름을 따라잡기 위한 움직임 중 하나다. 이 사업은 제조 현장에 산업용 AI 기술을 실증하고 확산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 사업을 총괄하는 경남테크노파크는 영남권 5개 지역에서 만들어내는 현장의 변화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고, 기업들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적의 솔루션을 찾고 있다. 경남테크노파크는 경남의 자동차 부품, 부산의 기계부품, 대구의 지능형기계, 경북·포항의 철강, 울산의 화학 산업 등 지역 주력 산업의 문제를 수요 기업과 AI 기술 공급자가 함께 정의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솔루션을 설계해 실증하는 '실행형 모델'을 추진 중이다. AI 기술이 현장에 뿌리내리도록 만드는 구조다.
이 사업에 참여한 26개 기업은 지난 3월 31일부터 4월 4일까지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산업기술 전시회 '하노버 메세'에 참가했다. 공정 자동화, 고장 예지(고장을 예측하고 사전에 유지·보수하는 작업), AI 트윈 솔루션 등 각기 다른 현장 맞춤형 기술이 전시됐다. 모두 실증을 마친 결과물이다. 전시 기간에 6개 기업이 독일, 네덜란드, 스리랑카 등 글로벌 기업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26개 기업들은 총 555건의 기술 상담을 통해 600만달러 이상의 수출 상담 실적을 기록하며 글로벌 진출 가능성을 확인했다.
기술 개발 기반시설 구축도 속도를 내고 있다. 경남테크노파크를 비롯해 부산정보산업진흥원, 대구디지털혁신진흥원, 울산정보산업진흥원, 포항테크노파크 등 5개 지역 지원 기관은 지난해 말 제조AI 실증 거점인 'AX랩'을 구축했다. 이곳에서는 데이터 수집부터 모델 개발, 테스트, 운영까지 AI 솔루션 개발의 전 과정을 지원한다. AX랩은 지역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을 이끄는 플랫폼이자 AI 기반 혁신의 허브다. 경남테크노파크는 이번 사업을 계기로 기술 도입부터 고도화, 마케팅, 수출, 투자 유치까지 기업 성장의 전 주기를 아우르는 기업 지원 체계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중소기업들의 AI 혁신은 제조업 현장의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일과 직결된다. 고령화와 노동 인구 감소라는 이중고에 직면한 제조업 현장에 AI는 단비 같은 해답이 될 수 있다. 지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장기적인 기술 생태계를 고도화하기 위한 국가전략 사업으로 육성할 수 있도록 정부의 계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제조업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그 중심에는 현장을 바꾸는 AI가 있고 AI와 함께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중소기업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