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9 07:15:00
EV4, 하극상 남발 ‘반칙의 제왕’ ‘한’ 많았던 기아 세단의 한풀이 준중형을 파괴하라, 창조적으로
‘한(恨)’
기아 준중형 전기차(EV)인 EV4를 처음 본 순간부터 시승을 마칠 때까지 한결같이 머리에 맴돈 단어다.
이유가 있다. 기아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와 미니밴 분야에서는 셀토스, 스포티지, 쏘렌토, 카니발을 앞세워 현대차보다 우위에 있다. 경차 분야에서도 모닝과 레이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세단 분야에서는 ‘넘버2’에 만족해야 했다. K시리즈로 이름까지 바꾸고 대대적인 혁신을 추구했지만 중형세단인 K5를 제외하면 이름값을 하지 못했다.
특히 준중형세단 분야에서는 현대차 아반떼에 압도당했다. 허울 좋은 ‘넘버2’에 그치면서 한이 쌓였고 뭉쳤다.
기아의 전동화를 가속화할 브랜드 최초의 준중형(글로벌 C세그먼트) 전동화 세단인 EV4에서는 뭉친 한을 풀기 위해 절치부심한 기아의 처절함과 간절함이 느껴졌다.
내연기관 준중형세단 시장에서는 봄날에도 ‘못다 핀 꽃 한 송이’에 그쳤지만 전기세단 시장에서는 꽃을 피우고 말겠다는 각오가 묻어났다.
실제로 파격적인 디자인, 하극상 성능은 ‘목숨 걸고 만들었다’는 말을 들을 수준이다. 드디어 아반떼에 당했던 굴욕을 씻어낼 ‘한풀이’ 준중형 모델이 나온 셈이다.
EV4는 한풀이를 위해 디자인부터 파격을 추구했다. 정형화된 모습으로는 SUV에 밀려 존재감이 약해진 세단 시장에서 아반떼의 ‘미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
외모는 정형화된 세단이 아니다. 크로스오버형 세단이다. 새로운 유형의 혁신적인 실루엣을 통해 기아가 추구하는 차세대 전동화 세단의 방향성을 보여준다.
기아 디자인 철학 ‘오퍼짓 유나이티드’를 바탕으로 세련되고 역동적인 디자인을 갖췄다. 전반적으로 바위를 깎아 만든 조각품 같은 이미지다.
낮게 떨어지는 후드 앞단에서 트렁크 끝단까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실루엣, 휠 아치를 감싸는 블랙 클래딩은 역동적이면서도 세련됐다.
기존 세단에서 볼 수 없었던 루프 스포일러가 차체 양 끝에 배치돼 혁신적인 실루엣을 완성한다. 뒤 유리와 루프 사이에 ‘턱’이 생긴 모습이다.
차량 가장자리를 따라 위치한 수직 형상의 헤드램프와 테일램프도 세단 공식에서 벗어났다. 가로형 램프가 아니라 주로 SUV나 픽업에서 볼 수 있는 세로형 램프로 차별화를 추구했다.
캐딜락 CT6 램프 디자인과 비슷하지만 더 세련되고 차체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공격적인 성향도 보인다.
휠 아치도 세단의 정석인 반원 형태가 아니다. 팔각형을 절반으로 접어둔 형태다. 오프로더의 사다리꼴 형태와 세단의 반원 형태를 섞어놓았다.
크기도 준중형급을 벗어났다. 아반떼보다 크고 실내공간을 결정하는 휠베이스는 중형 세단인 쏘나타에 버금간다. 체급을 뛰어넘는 하극상이다.
전장x전폭x전고는 4730x1860x1480mm다. 아반떼(4710x1825x1420mm)보다 길고 넓고 높다.
휠베이스는 2820mm로 아반떼(2720mm)보다 100mm 길다. 쏘나타(2840mm)보다 20mm 짧을 뿐이다.
편의성과 공간활용성도 체급 이상으로 향상시켰다. 형님인 EV6, EV9에 없는 기능도 기아 최초로 채택했다. 역시 하극상이다.
12.3인치 클러스터, 5인치 공조, 12.3인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세 개의 화면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파노라믹 와이드 디스플레이를 채택했다.
운전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며, 차량 조작 버튼을 최적 배치해 편의성과 공간 활용성을 향상시켰다.
디스플레이 하단에 적용된 히든 타입 터치 버튼은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운전 중 직관적으로 조작해야 하는 미디어 전원, 음량 및 공조 온도, 풍량 기능은 사용 편의성을 고려해 에어 벤트 아래에 물리 버튼으로 적용됐다.
운전석과 조수석을 항공기 비즈니스 좌석처럼 활용할 수 있다. 전방으로 80mm 확장 가능한 ‘슬라이딩 콘솔 테이블’을 적용해서다.
1열 승객은 정차 중 업무나 식사 때 이 테이블을 활용할 수 있다. 기아는 1열 활용도를 높여줄 용품도 선보였다.
콘솔 암레스트를 2열을 향해 수평으로 열 수 있는 ‘회전형 암레스트’를 기아 최초로도 적용, 2열 승객의 공간 활용성도 향상시켰다.
1열에 릴랙션 시트를 적용하고, 2열 시트 등받이의 각도를 최적화해 모든 탑승객이 한층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도록 했다.
기아 최초로 EV4에 간단한 조작으로 시트 포지션과 조명 밝기를 전환할 수 있는 ‘인테리어 모드’도 채택했다.
넉넉한 실내공간과 적재공간은 기존 준중형 세단에서 맛볼 수 없는 안락함을 선사한다.
높아진 전고, 넓어진 전폭, 길어진 휠베이스를 통해 2열에도 성인 3명이 편안히 앉을 수 있다. 헤드룸과 레그룸도 여유가 있다.
트렁크 용량은 동급 최대 수준인 490L(VDA 기준)에 달한다. 트렁크가 열리는 면적을 넓혀 적재 편의성과 활용성도 향상시켰다.
전기차의 핵심인 충전 성능도 향상시켰다.
EV4는 현대차그룹 전기자 전용 플랫폼인 E-GMP를 기반으로 81.4kWh 용량의 배터리를 얹은 롱레인지 모델과 58.3kW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한 스탠다드 모델로 판매된다.
롱레인지 모델은 자체 측정 기준 350kW급 충전기로 배터리 충전량 10%에서 80%까지 충전하는데 31분이 소요된다.
EV4 스탠다드와 롱레인지 모델의 복합전비(2WD, 17인치 휠 기준)는 기아 EV 라인업 중 가장 높은 5.8km/kWh를 달성했다.
공기역학적인 설계를 바탕으로 기아 차량 중 가장 우수한 공력성능인 공기저항계수 0.23을 달성했다.
휠 갭 리듀서와 17인치 공력 휠을 적용하고 휠아치 후방 곡률 형상을 다듬어 휠 주변의 공기흐름을 최적화했다.
냉각 유동을 능동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범퍼 일체형 액티브 에어 플랩을 탑재해 냉각 저항도 개선했다.
사이드 실 언더커버, 3D 곡률 형상의 전·후면 언더커버 등 총 8종의 차체 하부 부품으로 공기 흐름을 최적화했다.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롱레인지 2WD 17인치 휠 기준)는 533km로 현대차그룹 전기차 중 가장 길다.
가속 페달 조작만으로 가속, 감속, 정차가 가능한 i-페달 기능을 모든 회생제동 단계에서 활성화할 수 있는 i-페달 3.0도 적용해 운전 편의성과 승차감도 향상시켰다.
실내외 V2L 기능 적용으로 다양한 상황에서 전력 공급이 가능해 차량 활용성도 우수해졌다.
기아 인공지능(AI) 어시스턴트를 탑재하고 혁신적인 커넥티비티 사양도 채택했다.
사용자가 기아 커넥트 스토어에서 ‘스트리밍 프리미엄’ 서비스를 가입할 경우 12.3인치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와 하만카돈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을 통해 유튜브,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게임, 노래방 등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기아는 기아 커넥트 스토어를 통해 구매할 수 있는 디스플레이 테마에 기존 미국프로농구(NBA) 외에도 KBO 리그와 협업해 한층 다채로운 테마를 제공한다.
기아 앱(Kia App)과 연동한 무선(OTA)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능을 기아 최초로 적용했다.
주차 동작 감지 모드가 포함된 빌트인 캠 2 플러스, 디지털키 2, 무선 폰 커넥티비티(애플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 등 최신 커넥티비티 사양도 갖췄다.
안전성도 체급 이상이다. 스티어링 휠 그립 감지, 전방 충돌방지 보조, 후측방 충돌방지 보조, 차로 이탈방지 보조, 지능형 속도 제한 보조, 후측방 모니터, 운전자 주의 경고,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차로 유지 보조 2, 고속도로 주행보조2 등을 탑재했다.
시승은 지난 23일 경기도 하남에서 경기도 광주에 이르는 왕복 75km 구간에서 진행됐다. 시승차는 EV4 롱레인지 모델이다.
디스플레이가 기아 타이거즈로 세팅돼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아이콘은 차량이 아닌 호랑이다. 호랑이 등에 타고 달리는 셈이다.
에코, 노말, 스포츠, 마이 드라이브, 스노로 구성된 드라이브 모드 중 저·중속에서는 노말을 선택했다.
움직임은 전기차의 특징 그대로다. 조용하고 안락하다. 과속방지턱도 깔끔하게 넘어간다. 충격을 잘 억제한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가속페달을 밟으면 즉각적이지 않지만 답답하지 않지 속도를 높인다. 스포츠 모드로 바꾸면 스티어링휠이 좀 더 무거워지는 게 손으로 전달된다. 페달을 밟는 발의 힘에 맞춰 속도를 높인다. 내연기관 차량처럼 괴성을 내지르지는 않지만 시원시원하게 움직인다.
고속 안정감도 뛰어나다. 불안감을 주지 않는다. 풍절음과 노면소음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무게중심이 낮고 공기저항계수도 뛰어나 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지그재그로 움직일 때 손발에 지시에 딱 맞춰 치고 빠져 나오는 움직임이 스포츠세단 뺨친다.
스티어링휠에 붙어있는 감속 패들시프트를 사용하면 4단계로 감속 성능을 조절할 수 있다. 0단계에서는 가솔린 차량과 주행질감이 같다. 감속 3단계가 되면 아이페달(i-Pedal) 모드가 된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바로 속도가 뚝 떨어진다. 가속, 감속은 물론 정차까지 가능하다.
속도를 급하게 줄여야 할 때, 지그재그 구간이나 내리막길을 내려갈 때 브레이크 작동 없이 ‘원페달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다.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은 운전 피로를 덜어준다. 정체 구간에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하면 운전자에게 떠넘기기 않고 알아서 차 스스로 속도와 거리를 제어하고 차로 중앙을 유지하며 움직인다.
다른 차가 갑자기 끼어들어도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적절히 속도를 조절하면서 안정적으로 달린다.
EV4는 하극상을 넘어 반칙을 일삼은 ‘세그먼트 버스터(Segment Buster)’다. 디자인, 크기, 성능, 사양 측면에서 기존 세그먼트로 정확히 분류하기 어려운 차이기 때문이다.
세그먼트를 파괴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세그먼트를 창조했다. 이유는 ‘한’ 때문이다.
한을 풀기 위해 하극상과 반칙을 일삼다 보면 문제가 생긴다. 가격 상승이다. 기아는 ‘한풀이’의 완성을 위해 가격 인상을 억제했다.
가격은 4042만원부터 시작된다. 전기차 보조금을 받으면 서울 기준으로 실 구매가격은 스탠다드 모델이 3400만원대, 롱레인지 모델이 3800만원대다.
아반떼 하이브리드(2658만~3265만원)와 쏘나타 하이브리드(3383만~4074만원) 중간에 해당하는 가격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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