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5 21:00:00
(26) 뤼튼테크놀로지스
국내 AI 플랫폼 시장에 새로운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그동안 카카오, 네이버 등 대형 IT 기업이 독점해온 생활형 서비스 영역에 스타트업 뤼튼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불과 1년 반 만에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 500만명을 돌파했고 유료화에도 성공했다. 그 덕에 시리즈B 유치로 누적 투자액 1300억원을 달성하며 ‘천억클럽’에 합류했다. 주요 투자사로는 BRV캐피탈매니지먼트, Z벤처캐피탈, 캡스톤파트너스, KDB산업은행 등이 있다. AI를 일상 깊숙이 스며들게 하겠다는 ‘생활형 AI’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뤼튼은 어떤 회사
‘글쓰기 병목’ 해결하며 출발
뤼튼테크놀로지스는 2020년 설립된 생성형 인공지능(AI) 플랫폼 기업이다. 창업자 이세영 대표(1996년생)는 고교 시절부터 글쓰기와 말하기에 어려움을 겪는 주변 친구들을 보며 “표현의 병목을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 주목받았다. 2014년 직접 개최한 ‘한국청소년학술대회(KSCY)’는 첫해 참가자 30명으로 시작해 불과 3년 만에 3000명 규모로 커졌고, 청소년학술대회 기준 아시아 최대 규모로 자리 잡았다. 이 대표는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한 부담을 덜면 본질적인 문제 해결과 아이디어 공유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SCY 운영 과정에서 쏟아진 수많은 논문 자료를 검색·정리할 필요성이 커지자 새로운 기술적 해법에 눈을 돌린 것이 창업 계기가 됐다.
사명 ‘뤼튼(WRTN)’은 ‘WRITTEN(글로 표현된)’에서 따왔다. 이 대표는 대학(연세대 문헌정보학과) 재학 시절(2020년 말) GPT 초기 모델의 뛰어난 문장 생성 능력을 확인하고 그간 품어온 ‘표현의 병목’을 AI로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AI가 글쓰기를 쉽게 만들어주면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부담 없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생활형 AI 플랫폼으로 확장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창업 초기만 해도 지금의 사업 모델은 아니었다. 텍스트 기반 생산성 AI에서 출발했다. 카카오톡 기반 챗봇으로 사용자 친화형 서비스를 구축해 대중성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이후 ‘생활형 AI 플랫폼’을 지향하며 앱을 출시했고 지금은 AI 생성 도구, 캐릭터 챗봇, 검색 기능, 나만의 AI 제작 등 다양한 기능을 하나의 플랫폼에서 통합 제공한다. 이 전략이 주효하며 뤼튼은 국내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생성형 AI 플랫폼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기준 뤼튼의 누적 가입자 수는 800만명을 넘어섰고 일평균 대화량은 수천만회를 자랑한다.
특히 눈길 끄는 점은 유료화에 성공했다는 점이다.
2023년까지 무료 전략을 고수하던 뤼튼은 지난해 하반기 유료화 실험에 돌입했다. 캐릭터 챗봇 기능에 고성능 AI를 탑재한 유료 상품 ‘슈퍼챗’을 도입한 결과 출시 한 달 만에 매출 10억원을 기록했다. 이후 구글플레이 최고 매출 앱 순위 14위까지 오르며 시장성을 입증했다. 유료 사용자 비율이 1%만 넘어도 수익 구조가 탄탄해지는 구조라는 점에서 이 같은 성과는 의미가 크다.
기존의 생성형 AI 서비스가 업무 중심이라면 뤼튼은 일상과 감정 교류를 아우르는 ‘EQ 기반 AI’로 차별화를 꾀했다. 사용자는 원하는 외형과 말투의 캐릭터와 소통할 수 있고 직접 캐릭터를 만들 수도 있다. 지난해 12월 기준 사용자 제작 캐릭터만 30만개 이상이다. 이를 바탕으로 유료 이용자 확산과 생태계 확대에 성공했다. 여세를 몰아 뤼튼은 AI 캐릭터 간 소셜 기능도 강화해 창작자의 팬 커뮤니티 형성까지 유도하고 있다.
AI 경제 생태계도 구축
‘AI로 수익 창출하는 사용자’ 만든다
유료화에 성공하면서 뤼튼은 AI를 통해 사용자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새로운 모델도 제시하고 있다. 최근 공개한 디지털 광고 플랫폼 ‘뤼튼 애즈(WRTN Ads)’는 AI 캐릭터가 사용자와 대화하며 자연스럽게 광고를 노출하고 이에 따른 보상으로 ‘뤼튼 캐시’를 지급하는 구조다. 이 캐시는 서비스 결제나 상품 구매는 물론 향후 현금화 기능까지 제공될 예정이다. AI 광고가 게임·엔터테인먼트에 이어 새로운 수익 모델로 각광받는 시점에서, 뤼튼은 개인 사용자에게까지 그 수익을 환원한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는 평이다.
창작자 수익 분배 모델도 눈길 끈다. 사용자가 제작한 AI 캐릭터가 슈퍼챗 등에서 활용되면 일정 수익을 제작자에게 공유해주는 방식이다. 웹툰·웹소설 플랫폼을 닮은 구조로, AI 기반 창작 생태계 기반을 마련했다. 향후에는 캐릭터 NFT 발행, 크리에이터 브랜드 협업 등으로 확장 가능성이 높다.
해외 진출·기술 공개도 박차
1인 1LLM·오픈소스로 확장
지난해 뤼튼은 ‘AI 포털’을 공식 비전으로 내세웠다. 검색, 메신저, 콘텐츠 소비 등을 통합하던 과거 포털처럼 생성형 AI 시대 생활 접점 플랫폼이 되겠다는 포부다. 이를 위해 ‘1인 1AI’ 전략과 함께 EQ 기반 ‘AI 서포터’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단순한 챗봇이 아니라 사용자 성향, 대화 맥락, 장기 기억을 학습해 정서적으로 유대할 수 있는 개인 AI 조력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진화는 ‘뤼튼 3.0’으로 집약된다. 4월 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는 뤼튼 3.0은 대화형 메모리 성능을 10배 향상시켜 사용자 맞춤형 반응을 제공한다. ‘AI 서포터’로 명명한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비서나 보조자를 넘어 이용자 각 개인과 정서적으로 친밀하면서도 개인의 최적화된 형태로 업무와 여가 활동을 돕는 AI 조력자를 제공하겠다는 복안이다. 장기적으로 ‘자비스’나 ‘사만다’처럼 애착 형성이 가능한 AI를 지향한다. 뤼튼은 이를 통해 단순한 툴이 아닌 ‘친구 같은 AI’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최근 뤼튼은 창립 4주년을 맞아 AI 에이전트 오픈소스 사업을 예고했다. 각 기업이 자체적으로 AI 비서나 상담 서비스를 쉽게 도입할 수 있도록 핵심 기능을 개방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세영 대표는 “과거에 웹사이트·앱을 만들듯 앞으로는 모든 기업이 자체 AI를 갖게 될 것”이라며 “뤼튼이 그 시작을 돕겠다”고 밝혔다. 뤼튼은 AI 개발 프레임워크인 ‘에이전티카(Agentica)’ 서비스와 프론트·UI 자동화 개발 도구 ‘오토뷰(AutoView)’를 공개해 누구나 쉽고 빠르게 AI 서비스를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오픈소스는 향후 글로벌 SaaS(쓴 만큼 돈 내는 구독형 서비스) 기업으로 가기 위한 핵심 포석으로 해석된다. 또 뤼튼은 ‘무료를 넘어 소득까지 제공하는 AI 경제 시스템 구축(AI 이코노믹스)’ 비전을 제시했다.
공예진 애드 비즈니스 담당은 “AI 기능과 연계된 미션 수행, 외부 광고 플랫폼 연동 등을 통해 사용자들에게 실질적인 뤼튼 캐시 보상을 제공하고, 이를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뤼튼 캐시는 결제, 상품 구매 등에 활용 가능하며 향후 현금 인출 기능까지 도입될 예정이다.
해외 진출도 본격화한다. 싱가포르 정부 관계자가 뤼튼을 방문해 협력을 타진한 데 이어 일본·동남아 시장을 중심으로 마케팅, 서비스 현지화에 나서고 있다. 영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 다국어 지원을 강화해 글로벌 사용자의 진입장벽도 낮추고 있다.
이세영 대표는 “사용자와 개발자가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를 만들어 궁극적으로 글로벌 생활형 AI 포털이 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뤼튼의 기업가치를 4000억~6000억원 사이로 평가하고 있으며 향후 IPO 추진도 기대하고 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6호 (2025.04.23~2025.04.29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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