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입력 2025.04.23 12:00:00
심장이 어디 있는지 궁금하면? 달리면 된다고 합니다. 지난 주말 초등학생인 아들과 손잡고 처음으로 영종도에서 진행된 ‘선셋 마라톤’에 도전했습니다. 3km로 짧은 코스였습니다.
땅에 부딪히는 발바닥 충격을 고스란히 느끼며 20여분 간 힘껏 뛰고 온 이 날 저녁,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오랫만에 느껴 좋긴 했지만 다리 근육통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21.0975km 하프 코스를 뛴다면 얼마나 힘들까요? 인간도 뛰기 힘든 하프 코스를 근육통 하나 없이 완주한 로봇이 있어 화제입니다. 심장 대신 배터리 힘으로 2시간40분42초를 달린 중국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입니다.
관련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중국의 로봇 기술력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로봇 마라톤 대회가 열린 것만으로도 상징적인 일이라고 평가합니다.
미중 패권 다툼 속 급성장 중인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산업. 도대체 어디까지 발전한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19일 베이징시 이좡 경제기술개발구에서는 로봇 하프마라톤 대회가 열렸습니다. 일반인 9000여명과 21개의 로봇 팀이 트랙은 분리한 채 뛴 경기였습니다.
베이징 휴머노이드로봇 혁신센터가 개발한 톈궁(天工)을 포함해 유니트리의 G1, 베이징과학기술대의 작은 거인(小巨人) 등이 참가한 로봇들입니다.
운영방식은 그야말로 로봇 맞춤형. 경기 도중 배터리 교체가 허용됐고요. 페널티를 감수할 경우 로봇 본체도 바꿀 수 있도록 했습니다.
최대 3명의 보조인력이 로봇과 함께 달리며 주행을 보조할 수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마라톤 코스에는 직선 뿐 아니라 좌우회전을 해야하는 코스와 오르막길, 내리막길 등이 있으니 길잡이가 있어야 할 테고 중간 중간 배터리 교체시 엔지니어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보조인력과 함께여도 사건사고를 피할 수 없었습니다. 경기가 시작하자마자 넘어져 부서지는 로봇이 나왔고요. 달리다가 그만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그대로 멈춰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잘 달려 로봇 마라톤 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주인공은 다름 아닌 톈궁.
키180cm에 몸무게 52kg인 텐궁은 로봇 중 가장 먼저 출발했고, 최대 주행 속도로 시속 12km까지 찍으며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달했습니다.
인간을 닮은, 닮고자 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동시 균형 유지와 충격 흡수, 섬세한 관절 운동 등에서 고질적인 한계를 드러내왔습니다.
이같은 한계는 생산현장에서 뿐 아니라 휴머노이드 로봇 기술을 앞세워 가정용 로봇 시장 등을 선점하려는 로봇업체들 사이 꼭 넘어야할 기술적 관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열린 로봇 마라톤 대회에서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고도의 균형 능력과 내구성, 무엇보다 약 25만회의 정밀 관절 운동이 가능한 알고리즘 등 진정한 휴머노이드 로봇으로서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보여준 겁니다.
앞서 지난 2월 관영 CCTV 내 CGTN 한 프로그램에 등장한 로봇들이 춘 중국 전통무용 공연에서도 이같은 기술력은 전세계에 눈도장을 찍은 바 있습니다.
자칫 생방송 도중 로봇들이 말썽을 일으키면 공개적인 망신을 볼 게 뻔한데도 출연을 감행했습니다. 그만큼 자신들의 기술력을 믿었던 것이죠.
실제로 무려 5시간에 걸친 대형 생방송인데다 중국인 10억명이 시청하는 설 특집쇼에 등장한 휴머노이드 로봇 16대는 사람과 함께 완벽하게 ‘칼군무’를 해냈습니다.
이미 세계 산업용 로봇의 절반 이상은 70만개의 중국 로봇 기업들이 공급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은 오는 2030년까지 1038억위안(20조2929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압도적인 경쟁력입니다.
중국 정부는 이번 휴머노이드 로봇 하프 마라톤 대회를 단순한 기술 시연 뿐 아니라 미래 산업의 이정표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열린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중국 정부는 로봇 기술 육성을 전면에 강조했습니다. 이에 따라 중국 당국은 올해 휴머노이드 로봇을 대량 생산해 오는 2027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을 달성하겠다는 목표입니다.
2년여 시간 밖에 남지 않은 상황 속 중국의 지방정부와 기업들은 세계 최고 수준 달성을 위해 휴머노이드 로봇 연구 개발과 제조, 응용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AI) 반도체의 선두주자인 엔비디아의 젠슨황 최고경영자(CEO)도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정보기술) 전시회 ‘CES 2025’ 기조연설을 통해 “향후 2~3년 내로 로봇공학의 챗GPT 순간이 오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엔비디아와의 파트너 업체들인 14개의 휴머노이드 로봇과 연단에 서서 발표를 이어갔는데요. 국가별로 보면 중국업체가 6곳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미국, 노르웨이, 이스라엘, 독일, 캐나다 등의 로봇이 차지했습니다. 한국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로봇 산업에 전 세계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국내 첫 휴머노이드 로봇인 휴보를 개발한 레인보우로보틱스, 에이로봇, 홀리데이로보틱스 등의 기업이 노력 중입니다.
하지만 미중 패권 다툼 속 ‘로봇 굴기’로 밀어부치는 중국 앞에서 조바심이 커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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