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빌리어드뉴스 MK빌리어드뉴스 로고

‘당구계 훈남’오태준 “올핸 전국대회 4강 이상 노려야죠”

[한국당구 차세대기수]⑤작년 인제대회 16강, 잔카아시아오픈 8강
매탄고 2학년 재학 중 세계주니어3쿠션 동메달
“(조)재호 형‧(김)경률이 형 제 당구선수에 큰 영향”

  • 기사입력:2019.01.11 12:37:57
  • 최종수정:2019.01.12 08:14:4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편집자주> 2018년 한국 당구는 유난히 젊은 선수들의 성장이 돋보인 한 해였다. 대한당구연맹이 내건 역대 최고 우승상금(5000만원‧KBF슈퍼컵) 주인공은 ‘26세’ 조건휘였고, 장대현(성남·국내 79위)은 조명우(실크로드시앤티·6위)에 이어 ‘세계3쿠션주니어선수권’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서서아(광주조선대여고·국내女포켓5위)는 ‘세계주니어9볼선수권’ 준우승에 올라 한국당구의 미래를 밝게 했다. 이 밖에도 지난해는 국내 당구 각 종목서 ‘영파워’가 주목받은 해였다. 이미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 김행직(전남‧1위)과 조명우 이후, ‘차세대 한국당구의 기수’로 떠오르고 있는 선수를 소개한다.

23245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사진설명지난 9일 서울 양천구 YG캐롬클럽에서 만난 오태준(27‧서울)이 당구 큐와 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MK빌리어드뉴스 최대환 기자] 지난 2009년 벨기에 루벤에서 열린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대회.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김행직(당시 수원 매탄고 3학년)이 8강에서 탈락한 사이 그의 1년 후배인 오태준(27‧서울‧당시 2학년)이 동메달을 획득하며 국내 당구팬들을 놀라게 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18년, 오태준은 4월 ‘인제오미자배 3쿠션 페스티벌’ 16강에 오른데 이어 11월 ‘잔카챔피언십 아시아3쿠션오픈’에서는 성인무대 데뷔 이후 처음으로 8강에 오르며 한층 더 성장했음을 증명했다.

올해는 전국대회와 3쿠션월드컵에서 자신의 최고 성적을 넘고 싶다는 오태준을 지난 9일 서울 양천구 YG캐롬클럽에서 만나봤다.

▲지난해 인제오미자배 16강, 잔카아시아오픈 8강에 오르고 영월동강배 복식에서 우승했다. 성적에 만족하나.

=만족한다. 그동안 전국대회에서 16강만 3~4번 진출했는데 전국규모 대회에서 처음으로 8강에 올라봤다. 스스로 ‘한 단계 성장했구나’라고 느꼈다. 인제에서는 우승자인 (강)동궁이 형과 16강에서 만났다. 졌지만 좋은 경험이었다. 특히 인제대회 때는 속초에 사시는 부모님이 모처럼 경기장에 와서 응원해주셔서 더욱 기억에 남는다.

▲처음으로 8강에 오른 잔카아시아오픈은 어떤 마음으로 대회에 임했나.

=예선부터 32강전을 치를 때는 매일매일 ‘하루만 더 치고 싶다’는 마음으로 대회에 임했다. 16강에 진출했을 때는 ’여기까지는 전에도 해봤잖아. 조금만 더 해보자‘라고 되뇌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8강에 올라와있더라.

▲8강전에서 경기 전후반이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오태준은 8강전 박춘우와의 경기에서 한때 14:31까지 뒤지고 있다가 후반에 맹추격했다. 하지만 31:40으로 석패했다).

=평소 아침 8~9시에 일어나 10~11시에 구장에 나가는 등 나름의 루틴이 있다. 그날은 평소처럼 일어났지만 경기는 저녁 6시에 했다. 그러다보니 내 리듬을 찾는데 애를 먹었다. 지금까지 그 시간에 경기를 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거기에 생방송 경기도 처음이라 여러모로 긴장됐다. 그 상태로 경기에 들어가니 내 팔이 아니었다. 힘 조절도 제대로 안됐고, 샷 감각도 엉망이었다. 경기 후반부에는 감각을 되찾았지만 승패를 뒤집지는 못했다.

23245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사진설명오태준은 지난 11월에 열린 "2018 잔카챔피언십 아시아 3쿠션 오픈" 대회에서 성인무대 첫 8강에 올랐다.


▲처음으로 올라간 8강전에서 패배했다. 아쉬움은 없었나.

=(옅은 한숨을 내쉬며) 너무 아쉬웠다. 대회를 시작하기 전부터 연습도 많이 해서 자신감이 있었다. 대회 중에도 공이 잘 보여서 내심 좋은 성적을 기대했다.

▲영월동강배 대회에서는 정승일(서울‧165위)과 함께 복식전 우승을 차지했다.

=잔카대회 때와 비슷하게 컨디션이 좋았다. 상대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내 컨디션이 너무 좋아서 진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4강전 빼고는.

▲4강전 경기는 어땠나.

=우리가 1이닝에만 11점을 올렸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쎄하더라. 역시나 서창훈(평택‧19위)-송현일(오산‧58위) 선수가 끈질기게 쫓아오면서 경기가 어려워졌다. 결국 우리가 먼저 30점을 채워 상대 후구공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가 5연속 득점에 성공하더니 6번째 공도 비교적 쉬운 배치가 나왔다. 그래서 내심 승부치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상대 6번째 샷이 빠지더라. 순간 ‘이건 하늘이 우승하라고 준 기회구나’하고 생각했다.

▲우승 후 정승일과 무슨 얘기를 나눴나.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고, ‘다음에 소주 한잔하자’고 간단히 얘기했다. 그런데 영월 대회는 복식전인데도 트로피를 하나만 주더라. 나는 예전에 전국대회 단체전에서 우승(2014년 서천한산모시배)을 해본 적이 있지만 승일이 형은 전국대회에서 입상을 처음 해봤다고 하더라. 그래서 승일이 형한테 트로피를 양보했다. 결국 나는 영월대회 트로피를 가져가지 못한 셈이 됐다. 하하.

▲2015년 베트남 호치민3쿠션월드컵에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

=외국에서 열린 월드컵을 처음 나갔던 때였다. PPQ에서 시작해 본선(32강)까지 진출했다. 32강에서는 다니엘 산체스(스페인‧18위)와 맞대결했다. 둘 다 2점대 에버리지를 기록하며 브레이크타임에 돌입했다. 그래서 속으로 ‘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니(산체스)가 브레이크타임 이후에 한 2~3큐 만에 경기를 끝내버리더라. 씩씩하게 치자고 다짐했었는데 그렇게 빵빵 얻어맞다보니 어느새 대니와 인사를 하고 있었다. 하하. 그래도 졌지만 잊을 수 없는 경기였다. 나는 몰랐는데 현장에 같이 있던 (조)재호 형이 ‘관중들이 산체스뿐만 아니라 너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치더라’고 말해줬다.

▲수원 매탄고 2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9년에는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 공동3위에 입상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대회였다. 1학년 때였던 2008년에도 세계주니어대회에 나갔는데 그때는 힘없이 예선탈락했다. 그래서 그 다음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연습량을 늘리는 등 칼을 갈며 준비했다. 결국 국내선발전을 통과해 2009년 대회에도 출전하게 됐다. 주니어이기는 해도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하는 거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결국 4강까지 진출했지만 준결승에서 하비에르 팔라존(스페인‧33위)에게 졌다. 팔라존은 그 당시 주니어에서는 언제나 입상권에 드는 강호였다. 그 패배로 세계의 벽이 무척 높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출전했던 대회 중 자신의 ‘인생경기’를 꼽는다면.

=경기는 아니지만 세계주니어대회를 공동3위로 마친 후 처음 학교에 왔을 때가 생각난다. 난 평소에 후문을 통해서 등교를 했는데 어느날 선생님이 대뜸 정문으로 가라고 하셨다. 그래서 정문으로 가보니 후배들이 도열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를 보니 축하 플래카드도 걸려있더라. 얼떨떨했지만 기분은 참 좋았다.

23245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사진설명지난 2016년 호치민월드컵 PQ라운드에서 오태준은 마슈르 아부 타예(요르단)를 상대로 단 6이닝 만에 30점을 올려 에버리지 5를 기록했다. 이 경기 후 오태준은 세계캐롬연맹(UMB) 홈페이지 메인을 장식했다. (사진=UMB 홈페이지 캡쳐)


2016년 호치민월드컵도 빼놓을 수 없다. 본선 진출에는 아쉽게 실패했지만 예선에서 6이닝 만에 30점을 쳐서 에버리지 5점을 기록했던 적이 있다. (PQ에서 마슈르 아부 타예(요르단‧84위)를 상대로 기록) 내가 연거푸 점수를 올리니 상대가 실성한 듯이 웃더라. 이 경기 덕분에 당시 UMB 홈페이지 메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또 이 경기가 2016년 전체 월드컵 베스트게임으로 기록됐다.

▲요즘은 누구한테 공을 배우고 있나.

=시간 될 때마다 (조)재호 형을 찾아가서 배우고 있다. 이번 주에도 찾아가기로 했다. 세계적인 선수다보니 배울 점이 참 많다. 재호 형은 나를 친절하게 지도해주기도 하고, 친형처럼 편하게 대해준다. 언제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고 김경률에게도 지도를 받은 적이 있다고 들었다.

=20살 때 (김)경률이 형한테 직접 찾아가서 지도를 부탁했다. 당시에는 당구가 쉽다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마냥 놀기만 했다. 그랬는데 경률이 형이 ‘그럴거면 당구치지 마라’고 쓴소리를 해주셔서 정신을 차렸다. 또 경률이 형이 내가 없는 사석에서 ‘태준이는 당구를 잘 칠 수 있는데 노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고 들었다. 난 그 얘기를 형이 세상을 떠난 다음에 들었다. 뒤늦게 들은 그 말 덕분에 각성하고 더 당구에 집중하게 됐다. 참 고마운 형이다. 그래서 지금도 경률이 형 기일에는 꼭 찾아간다. 재호 형과 경률이 형 모두 내 당구인생에 큰 영향을 준 사람들이다.

23245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사진설명오태준은 "11살 때였던 2002년 아버지가 운영하던 당구장에서 처음 당구를 접했다"고 돌아봤다. 사진은 인터뷰 후 샷 시범을 보이고 있는 오태준.


▲처음 당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11살 때였던 2002년에 당구를 처음 쳐봤다. 당시엔 아버지가 당구장을 운영하셨다. 어느날 아버지가 당구장 손님들과 2002년 월드컵으로 보면서 열심히 응원을 하고 계셨는데 나는 축구도 잘 모르고 해서 한켠에서 당구를 치고 있었다.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시더니 당구를 제대로 배워보라고 하셨다.

▲그때부터 정식선수를 꿈꿨나.

=사실 처음에는 선수가 될 마음은 없었다. 처음에는 고덕동 ‘김철민당구클럽’에서 김현수 선생님한테 지도를 받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가 14살 때 선생님이 중국으로 가시면서 나를 서울당구연맹에 덜컥 등록을 시키는 바람에 얼떨결에 선수가 됐다. 그렇게 대회를 몇 차례 나가다가 잠시 당구를 놓은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큐를 잡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당구를 안 칠 때는 친구들과 PC방을 가도, 노래방을 가도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다시 당구를 쳐야겠다는 생각에 서울 가산동에 있는 한국당구아카데미에 들어가서 연습에 매진했다. 그러던 중 중학교 3학년때 양구에서 열리는 대회 학생부에 출전했다. 그런데 초중고 합쳐서 출전선수가 4명밖에 없어서 두 경기만 이기면 우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하. 첫 경기에서 (김)행직이 형을 정말 얼떨결에 이기고, 결승에서 (조)명우를 만나서 이겼다. 그 대회를 통해 매탄고에 진학할 수 있었다.

▲롤모델이 있다면.

=학생 때는 세미 세이기너(터키‧5위)가 롤모델이었다. 세이기너 특유의 쇼맨십과 눈이 즐거운 당구에 푹 빠졌었다. 또한 넘치는 자신감도 선망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내가 시원시원한 플레이를 선호하는 편이라 재호 형 플레이를 가장 좋아한다.

23245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사진설명인터뷰 말미에 오태준은 "올해는 국내대회 입상과 월드컵 16강 이상 올라가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올해 목표가 궁금하다.

=국내대회에서 입상하는 것이 목표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연습하겠다. 8강은 해봤으니까 더 높이 올라가고 싶다. 올해부터는 월드컵에도 꾸준히 출전할 생각이다. 월드컵도 내 최고성적인 32강을 넘어 16강 이상 올라가보고 싶다. 이렇게 한 단계씩 차근차근 성장하고 싶다. 우승을 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그 생각에 조급해지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사람들이 당구라는 종목을 편하게 받아들이고 즐겁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선수들이 언론에 많이 노출돼서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우선 내가 당구를 잘 쳐야한다. 당구를 잘 치려면 연습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나름 단계별로 생각해봤다. 내가 세계랭킹 1위가 되는 것 보다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cdh10837@mkbn.co.kr]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