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법원 상호관세 제동에 품목별 관세 꺼내들어
韓 철강 업계 치명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부과 중인 25% 관세를 50%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미 법원이 상호관세에 제동을 건 상황에서 철강·알루미늄 관세를 올려 관세 정책에서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30일(현지 시간) 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US스틸 공장에서 한 연설에서 이같이 밝히며 “이는 미국 철강 산업을 더욱 탄탄하게(secure)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5%(기존 관세율)는 허점이 있었는데, 이 조치(50%)를 피할 방법은 없다”며 “누구도 이 (철강) 산업을 훔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때는 철강만 언급했지만 연설 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철강뿐 아니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도 50%로 인상하겠다며 “이는 6월 4일부터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번 결정은 연방국제통상법원(CIT)이 상호관세 및 펜타닐 관세 근거로 사용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 사용에 제동을 건 데 따른 대응으로 해석된다. 지난 5월 28일 CIT는 관세를 부과할 배타적 권한이 의회에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IEEPA에 근거해 부과한 상호관세가 무효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다음 날 항소법원은 트럼프 행정부가 제출한 ‘판결 효력 정지 요청’을 받아들여 항소심 판결 때까지 상호관세를 일시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불확실성이 큰 IEEPA 대신 무역확장법 232조에 근거해 철강·알루미늄 등 품목별 관세 인상을 밀어붙이는 모습이다. 품목별 관세는 트럼프 1기부터 적용된 만큼 법적 리스크가 훨씬 적다.
문제는 한국이 품목별 관세 전략에 더욱 취약하다는 점이다. 철강은 한국의 대미 수출 주력 품목이고, 또 다른 품목별 관세 유력 타깃인 자동차·반도체는 대미 수출 35%를 차지하는 핵심 산업이다. 상호관세가 무산되더라도 품목별 관세 인상이 추가되면 한국 입장에서 대미 무역 협상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발 관세는 이미 대미 수출에 타격을 주고 있다. 지난 3월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25%로 일괄 인상된 후 열연강판 기준 미국 내 한국산 철강재 가격은 t당 20만원 넘게 올랐다. 이에 따라 미국산 열연강판보다 한국산 가격이 t당 약 5만원 더 비싸졌다. 그만큼 수요는 줄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3월 미국으로 수출된 철강재는 23만9000t으로 전년 동기(27만8000t) 대비 약 14% 줄었다. 4~5월 감소폭은 더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강경한 조치를 밀어붙이는 배경에는 미국 내 철강 생산만으로도 충분히 수요를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미국은 지난해 2859만t을 수입한 세계 최대 철강 수입국이지만, 국내 생산량도 7950만t으로 수요(연 9500만t)의 약 83%를 감당할 수 있다. 현재 가동률이 70% 초반인 만큼 100% 가동을 가정하고 신규 투자가 이어지면 철강 수요를 내수로 채울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블룸버그는 철강 관세 부과로 인해 건설 회사들의 필수 건축 자재 가격이 상승하며 공급이 감소하고, 신규 주택 가격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안드레아스 월드키르히 콜비 칼리지 경제학 교수는 AP에 “철강 일자리가 몇 개 더 늘어날 순 있겠지만, 관세 부과로 생길 간접비용은 결국 다른 곳의 일자리를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이 모든 것을 합치면 상당히 큰 손실이 발생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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