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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수사 비웃는 보이스피싱 … 올해 피해액 1조원도 넘을판

보이스피싱 피해액 작년 두배
1억이상 뜯긴 사람들도 3배 쑥
한층 교묘해진 수법으로 무장
추적기술 나와도 우회로 뚫어
IT전문 전담인력 더 확충하고
통신사들과 공조 체계도 절실

  • 문광민/김송현
  • 기사입력:2025.06.02 17:51:50
  • 최종수정:2025-06-02 23: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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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이 갈수록 영토를 넓혀가며 대한민국 국민을 절망 속으로 밀어넣고 있다. 경찰 등 수사당국이 수사를 강화하는 등 촘촘하게 감시망을 펼치고 있지만 피싱범들은 이보다 한발 앞선 기술과 사기기법 등을 동원해 과거보다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올해 들어 국내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이 급증세를 보이면서 역대 처음으로 연간 피해액이 올해 1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4월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는 8268건, 피해액은 4261억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피해 사례는 약 22% 늘었고, 피해액은 120% 급증했다.

피해 건수보다 피해액이 더 가파르게 증가한 것은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자 손실이 과거보다 더 커졌다는 의미다. 실제 최근 4개월간 보이스피싱 범죄로 인한 인당 평균 피해액은 5154만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약 2300만원(80%) 증가했다.

특히 1억원 이상의 고액 피해 사례가 폭증했다. 최근 4개월간 보이스피싱으로 1억원 이상 피해를 본 사례는 101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40건)보다 198%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발생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범죄는 무차별적으로 전화를 돌렸던 과거와 달리 보다 정밀하게 표적을 정하고 있어 피해액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지고 수사당국도 다양한 기법을 동원해 범죄 척결에 나서고 있음에도 보이스피싱이 더 활개를 치는 것은 보이스피싱 진화 속도를 수사당국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이동통신 악용 보이스피싱 대응 기술' 개발에 약 65억원을 투입했다. 첫 성과로 경찰은 KAIST 연구진과 협력해 '발신번호 변작 중계기(심박스·SIM box)'를 탐지·추적하는 원천 기술을 2023년에 개발했다. 심박스란 다수의 유심칩을 장착해 해외에서 걸려온 인터넷 전화를 '010'으로 시작하는 국내 번호로 위장 송출할 수 있는 장치로, 대개 3세대(3G) 통신망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심박스 추적 기술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한국 내 범죄 기반을 무너뜨릴 전환점을 마련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경찰은 이 기술을 실제 수사 현장에 활용하지는 못했다.

피싱 조직이 수사당국보다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피싱단은 기존 3G 기반 심박스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4G 통신망을 활용하는 새로운 범행 수법으로 옮겨갔다.

이에 경찰은 4G 통화를 3G 망으로 강제 전환해 탐지하는 기술을 추가로 개발했지만 이 역시 맹점이 있다. 3G 서비스를 하지 않는 특정 통신사의 통신망이 범행에 이용되면 탐지·추적 자체가 불가능하다.

빠르게 진화하는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 역량을 키우는 것뿐 아니라 정보기술(IT) 전문성을 갖춘 전담 인력을 확충하는 일도 중요하다. 박춘식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는 "수사기관에 IT 전문 인력을 별도로 배치해 범죄 조직의 온라인상 행적을 신속·정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현장 수사 인력이 활용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통신기업과 수사기관 간 원활한 공조를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명주 인공지능안전연구소 소장은 "형사사건에 한해 기업이 개인정보를 유연하게 공개하도록 형사소송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광민 기자 / 김송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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