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주식 지산그룹 회장(79)은 지난 20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 본사에서 매일경제와 만나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지산그룹은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200만평(약 660만㎡) 규모 토지를 보유한 '땅부자' 기업이다. 용인을 비롯해 물류센터만 7곳을 보유 중이며 이와 관련한 건설·건설자재 제조 계열사 등도 거느리고 있다.
한 회장은 "물류센터 경쟁력은 고품질의 항온·항습시설이 좌우하는데, 이는 데이터센터 경쟁력을 결정하는 요인과 일맥상통한다"며 "화성·여주·이천·안성·용인·평택·오산·음성 등 8개 지역에 단계적으로 데이터센터를 건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 연배의 성공한 기업가가 그렇듯 한 회장 역시 어려운 고학생이던 시절이 있었다. 경상북도 경주 출신으로 고교(경주고) 졸업 후 상경해 건국대 화공과에 입학했지만 졸업하지는 못했다. 가난한 고학생은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다. 처음에는 먹고살기 위해 독서실 운영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수완을 보였다. 독서실은 금세 12개로 불어나 체인으로 성장했으며 영어·수학 학원에 고시원까지 영역을 넓혔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서 운영하던 고시원은 사법시험 합격자 배출 명소로 고시계 잡지에 소개될 만큼 유명해지기도 했다.
학생 신분으로 주체하기 힘든 액수의 돈을 벌었다. 한 회장은 "매일 오후 수금을 다녔고 은행 갈 시간이 없어 지폐 뭉치를 가방에 쌓아뒀다"면서 "하루 수입으로 논 10마지기(2000평)를 살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농부의 아들로 땅에 한이 맺혔던 그는 버는 족족 경기권 땅을 사들였다. 지목이나 용도를 불문하고 투자했다. 과수원의 사과가 탐스럽게 익었다는 이유 하나로 그 땅을 사는 식이었다. 토지 매수 의뢰가 들어오면 답사도 하지 않고 계약서에 도장부터 찍었다.
그렇게 사 모은 토지가 무려 200만평에 달한다. 대부분 임야 등 효용성이 낮은 토지였다. 땅에 투자하면서 동시에 토지 형질변경 서적을 탐독했다. 토지 관련 법은 상위법과 하위법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하위법에서는 불허되지만 상위법은 금지 조항이 없는 사례가 많은데 이를 찾아내 허가를 이끌어냈다. 1999년에는 아예 형질변경 정보를 제공하는 '코리아2000'이라는 컨설팅회사를 차렸다. 보유 토지에 현재의 물류센터인 창고를 지은 것도 형질변경으로 가능했다. 땅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가 장래 온라인 유통이나 전자상거래가 뜰 것으로 예측하고 물류센터를 세우기 시작했다. 그의 전망대로 물류센터는 대박을 쳤다. 지산그룹은 현재 용인 남사물류터미널(연면적 25만593㎡), 이천 호법물류단지(4만9918㎡), 안성 일죽 남이천창고(6281㎡), 당진 송악물류센터(7만7739㎡), 안성 대덕창고(37만7334㎡), 안성 일죽물류센터(12만662㎡), 여주 대신물류센터(5만2949㎡) 등 7개의 물류센터를 운영한다. 물류센터에서 국내 1인자로, 쿠팡·삼성전자·다이소·올리브영 등이 고객사다.
물류센터를 지을 때 필요한 설계·자재 생산·시공·운영 등도 수직계열화해 13개의 계열사를 갖췄다. 이를 통해 물류센터 외 사업도 진행한다. 용인·이천 등 3곳에 SK하이닉스 직원 등을 위한 2350실 규모 기숙사를 신축하고 있으며 충북 음성에서는 공단 6곳을 조성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연매출은 건설 4000억원, 건설자재 제조 2000억원, 물류센터 1000억원 등 총 7000억원이며 영업이익은 1500억원 수준이다. 자산은 2조원이 넘고 직원은 450명에 달한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다. 한 회장의 요즘 주 관심사는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다. 경기 공동모금회와 대한적십자사 경기지사에 가족 전원(4명)이 1억원 이상을 각각 전달해 두 기관에서 '경기도 1호 고액기부 가족'이 됐다. 한 회장은 "자식이 먹고살 방도는 다 마련해뒀다"며 "회사도 상속하지 않고 사회에 돌려줄 것"이라고 말했다.
[용인 배한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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