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한덕수 전 총리가 2일 서울 종로구 주민공동시설 ‘새뜰집’에서 오세훈 서울시장과 인사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https://wimg.mk.co.kr/news/cms/202505/03/news-p.v1.20250502.f7de3212fd2f4283b8520943108c8e58_P1.jpg)
21대 대선에 뛰어든 한덕수 전 국무총리(76)는 민간 분야에서 일한 시기를 빼고도 무려 40년 이상 공직에 머문 ‘행정의 달인’으로 불린다.
선출직 출마 경험은 전혀 없다. 오랜 세월 동안 ‘현실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의 생애 첫 번째 선거 도전이 바로 대통령 선거가 됐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0년 22세에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줄곧 통상·외교 전문 관료의 길을 걸었다.
호남 출신인 그는 보수·진보 양쪽 정부에서 중용됐다. 김대중 정부 때 초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 이명박 정부에서 주미 대사,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국무총리를 맡았다. 두 정권에 걸친 국무총리 경험은 장면·백두진·김종필·고건 전 총리에 이어 5번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역대 최장기간 재임한 총리(1077일)라는 기록도 가지고 있다.
일각에선 그를 ‘신념 없는 관료’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이날 출마 회견에서 “한번도 우리가 수호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그리고 사회적 약자 보호에서 일탈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투철한 ‘성장론자’인 그는 시장경제를 확대하고 세계에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한 전 총리는 김대중 정권 때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처음 추진했다. 노무현 정부 때 경제부총리를 맡으며 ‘스크린쿼터’를 절반으로 축소시켰다. 또 쌀시장 개방, 추곡수매제 폐지 과정에서 농민단체에 볍씨 세례를 받기도 했다.
진보 정권에서 시장경제·대외개방과 관련해 일종의 ‘악역’을 맡았던 셈이다. 그는 지난 3월 2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복귀하면서 “좌도 우도 아닌 위로, 앞으로”를 외쳤다.
평소 부드러운 성격이지만 윤석열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맡은 뒤 국회에서 강단 있는 모습도 보였다. 철저한 업무 태도도 유명하다. 총리실 관계자는 “한 전 총리는 최근에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조간 신문을 다 읽고 출근했다. 실무자보다 디테일을 꿰고 있어 질문을 받고 당황했던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며 “직접 작성하는 글에 오탈자가 하나도 없었다”고 전했다. 좌우명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면 길이 있다”는 ‘필사즉생(必死則生)’으로 알려졌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주미 대사 등을 거치며 영어도 능숙하게 구사한다. 지난달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처음엔 통역을 썼지만 나중에는 통역 없이 28분간 영어로 대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약점은 역시 선거 경험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행정관료가 곧바로 대선에 나와 성공한 전례는 없다. 또 위법한 계엄으로 탄핵된 윤석열 정부의 2인자였다는 점도 부담이다. 당장 국민의힘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돌파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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