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씁쓸하지만, 연기를 보는 맛은 있다. 바로 ‘소주전쟁’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영화 ‘소주전쟁’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소주 회사가 곧 인생인 재무이사 종록과 오로지 성과만 추구하는 글로벌 투자사 직원 인범이 대한민국 국민 소주의 운명을 걸고 맞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과거 외환위기 당시 경영난으로 그룹이 해체된 진로그룹을 모티브로 했다.

독보적인 맛으로 전국을 평정했던 국보소주가 자금난에 휘청거리고, 글로벌 투자사 솔퀸의 직원 인범(이제훈)은 국보소주 매각을 위해 회사에 접근한다. 국보그룹의 재무이사 종록(유해진)은 회사를 살려보겠다는 일념으로 스마트한 인범에게 의지한다. 소주 하나로 가까워지지만, 이해 관계가 상충되는 이들의 만남은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앞서 유해진은 ‘소주전쟁’에 대해 “생각할 게 많은 영화다. 보고 나면 마냥 ‘오락 영화 잘 봤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약간의 숙취가 있는 영화다. ‘어제 내가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곱씹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오락 영화를 기대했다면, 그 예측을 빗겨나간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우정과 배신을 담은 영화를 보고 나면 원제가 왜 ‘모럴 헤저드’였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나름으로 생각할 볼거리도, 이야기할 거리도 있다.

영화는 건조하고 담백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후반부를 위해 달려가는 속도가 느린 탓에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만큼 ‘전쟁’의 맛은 덜하다. 캐릭터의 매력이나 쫀쫀함도 약한 탓에 짜릿한 쾌감을 원하는 이들이라면, ‘소주전쟁’의 씁쓸한 뒷맛에 아쉬움이 클 수도 있겠다.

영화의 미덕은 배우들이다. 어떤 배역을 맡든 캐릭터 그 자체로 보이는 유해진은 이번에도 종록이란 인물을 스크린에 생생하게 그려낸다. 가장 최근작인 ‘야당’과는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몰입을 돕는다. 이제훈도 글로벌 투자사 직원 캐릭터에 잘 녹아들었다. 뉴스와 경제지를 챙겨보고, 영어 대사를 달달 외웠다는 그는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손현주는 또 어떤가. 감탄을 부르는 차진 연기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빅쇼트’ ‘스카이스크래퍼’ 등 할리우드 작품에서 활약해 온 배우 바이런 만과 극 중 법무법인 대표 변호사 최영준도 각자의 색으로 극을 풍성하게 만든다.

한편, ‘소주전쟁’은 시나리오 탈취 의혹이 제기돼 갈등을 빚었고, 결국 감독 타이틀 없이 극장에 걸리게 됐다. 오늘(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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