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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자담배 피니까 괜찮아”…담배연기 늘어나는 대한민국, 금연 대책 절실하다

5월 31일 세계 금연의 날 한국 금연예산은 500억원뿐 적극적 치료 정책 마련해야

  • 심희진
  • 기사입력:2025.05.27 09:56:09
  • 최종수정:2025.05.27 09:5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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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1일 세계 금연의 날
한국 금연예산은 500억원뿐
적극적 치료 정책 마련해야
챗GPT로 만든 이미지.
챗GPT로 만든 이미지.

“우리나라 흡연자들이 연간 담뱃세로 지불하는 금액이 12조원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금연 지원 서비스에 투입하는 예산은 500억원에 불과하죠. 0.5% 수준도 안돼요.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생각한다면 금연 치료 정책을 마련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합니다.”

연초형 일반담배에 이어 궐련형 전자담배, 액상형 전자담배, 멘톨·과일 등의 향을 첨가한 전자담배 등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한동안 하락세를 보였던 국내 흡연율이 다시 반등했다. 전문가들은 제품 형태가 다각화함에 따라 흡연자들이 담배 유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반면 금연 치료에 대한 접근성은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는 31일 ‘세계 금연의 날’을 맞아 공중보건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국내 금연 정책을 다시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7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성인의 담배제품 현재사용률은 2023년 22.2%로 5년사이 0.6%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전자담배 현재사용률은 5.1%에서 8.1%로 3%포인트 올랐다. 이성규 한국담배규제교육연구센터장은 “국내 담배시장은 연초형이 70%, 궐련형 전자담배가 20%, 액상형 전자담배가 10%를 차지하고 있다”며 “신종 담배가 덜 해롭다는 마케팅이 진행되면서 흡연자들이 금연을 목표로 하기보단 다른 제품으로의 ‘이동’을 선택하고 있고 신규 흡연자도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문제는 다중 사용자(multi-user)의 비율이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담배규제연구교육센터에 따르면 조사 대상 2306명 중 940명(41%)이 일반 담배와 여러 전자담배를 혼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 센터장은 “연초를 완전히 중단하고 전자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제품 2~3개를 같이 사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이렇게 되면 니코틴 흡입량이 늘어나면서 의존도도 높아지고, 추후에 금연을 결심하기가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흡연율이 상승함에 따라 금연 시도율은 반대로 낮아지는 추세다. 이 센터장은 “흡연자들이 금연을 결심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냄새’로, 특히 20~40대가 냄새를 금연 동기로 꼽았다”며 “문제는 전자담배의 경우 연소 과정이 없어 특유의 냄새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흡연 사실을 숨길 수 있고 냄새로 인한 불편함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금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흡연자들의 금연 유도를 적극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진행 중인 금연 지원사업은 보건소의 금연 클리닉, 17개 지방자치단체의 지역금연지원센터, 금연 콜센터 등이 있다. 모두 2015년 정부가 담뱃세를 2000원 인상하면서 시작했다. 이 센터장은 “예산 삭감 등으로 서비스의 질은 떨어지고 이용자도 감소한 상황”이라며 “지난 10년동안 미비점은 무엇인지, 어떤 부분을 강화해야 하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력한 금연 정책으로 흡연율을 실제 떨어뜨린 뉴질랜드 사례가 참고할 만한 교과서로 거론된다. 오클랜드대 의대에 따르면 뉴질랜드의 흡연율은 7%대다. 크리스 불렌 오클랜드 의대 교수는 “뉴질랜드에선 담배 한 갑 가격이 40뉴질랜드달러(한화 약 3만3000원)로 우리나라(4500원)의 7배”라며 “높은 가격은 흡연을 시작하거나 흡연을 유지해가는 동기를 꺾는 데 크게 기여한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저소득층이면서 담배에 중독된 사람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가 담배 가격을 올리면서 별도의 금연 보조제도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비윤리적인 처사”라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금연보조 제도로는 니코틴 대체요법(NRT), 상담 서비스 등이 있다. NRT란 담배 대신 소량의 니코틴을 공급해 금연 시도자의 금단 증상과 흡연 욕구를 줄여주는 치료법이다. 불렌 교수는 “뉴질랜드에서 NRT는 일반 마트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고 정부 보조금을 통해 거의 무료로 제공되기도 한다”며 “한 연구에 따르면 NRT는 금연 성공률을 2배이상 높여주는데 껌·스프레이 등의 속효성 제제와 패치 등의 지속형 제제를 병용할 경우 효과가 배가되며, 전문의약품인 바레니클린과 동등한 금연 효과를 갖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흡연율 하락을 위해선 의료진의 적극적 개입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불렌 교수는 “뉴질랜드에서는 의약계 전문가에게 온라인 교육을 진행하고 금연 상담을 진행할 수 있는 수료증을 발부한다”며 “의대 4년차에는 금연 상담에 대한 내용을 필수로 배우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언제든 쉽게 방문할 수 있는 약국에서도 정부 지원의 NRT를 비롯해 여러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건소와 병의원에서만 정부 지원의 NRT를 제공받을 수 있는데, 사실상 이들보다 접근성이 더 뛰어난 약국이 금연 시작을 돕는 창구 역할에서 배제돼있어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뉴질랜드에는 흡연이 당연하지 않다는 인식, 즉 ‘흡연의 비일상화’가 확산돼있다. 불렌 교수는 “누군가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한번도 보지 못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며 “길거리, 식당, 카페, 공원 등의 공공장소는 물론 아이가 탄 차량 내에서도 흡연이 금지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흡연자에 대한 낙인을 조장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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