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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지위’ 위태롭다...차라리 코스피 사라

워런 버핏 “지옥에나 갈 달러 투자하겠나” 관세 전쟁 여파…유로·위안화만 신났다

  • 명순영
  • 기사입력:2025.06.04 21:00:00
  • 최종수정:2025-06-04 13: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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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지옥에나 갈 달러 투자하겠나”
관세 전쟁 여파…유로·위안화만 신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전쟁이 통화 전쟁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최근까지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미 달러 가치를 의미하는 달러인덱스는 10% 가까이 하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인 관세 정책으로 달러 표시 자산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며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미국 신용등급 하락 이후 투자자 움직임 역시 약해진 달러 패권을 보여준다. 미국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투자자는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미국 주식과 국채 등 자산을 팔고 기축통화인 달러를 현금으로 보유하려는 심리가 강해진다. 공식대로라면 달러 강세가 나타나야 한다. 이번엔 달랐다. 달러 약세 현상은 투자자가 달러조차 안전자산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달러 패권이 흔들리자, 이를 기회 삼아 유럽과 중국이 유로화와 위안화 글로벌 확장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한국도 고민이 깊어졌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암울한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기존 전망치 1.5%(2월)에서 거의 반 토막 난 0.8%로 전망했다. 최근 30년간 우리 경제가 1% 미만 성장했던 때는 1998년(-4.9%), 2009년(0.8%), 2020년(-0.7%) 등 세 번이었다. 모두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팬데믹 같은 장기간의 위기를 겪었던 해다.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75%에서 0.25%포인트 내린 연 2.5%로 결정했다. 한·미 금리 격차는 또다시 역대 최대인 2%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고, 원화 가치가 떨어져 환율 변동성을 자극할 우려가 나오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사진설명

“누구도 지옥에 갈(going to hell) 통화를 소유하길 원하지 않는다.”

지난 5월 버크셔해서웨이 주주총회, 워런 버핏이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나며 한 말이다. 미국 증시 전설이 한 말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거친 단어를 썼다. 관세 전쟁으로 달러 가치가 흔들리며 달러 약세가 이어질 수 있다는 묵직한 경고였다.

그의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달러가 기축통화 위상을 공고히 다질 수 있었던 힘은 미국에 대한 신뢰였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임 이후 미국에 대한 믿음은 무너졌다. 우방국에조차 가차 없는 관세 정책, 미국 신용등급 하락과 국채 가격 폭락, 누적된 재정적자 우려가 맞물리며 투자자 불안 심리가 극에 달했다.

금융 시장에서는 현재 미국 자산 시장이 1970년대 ‘닉슨 쇼크’ 때와 유사하다는 말이 나온다. 당시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을 중단하며 달러와 금의 연결고리가 끊겼다. 달러 가치가 급락하며 글로벌 기축통화 체제에 충격이 컸다. 기축통화에 대한 신뢰가 훼손되자 금 가격은 8년간 24배 폭등했고, 미국 이외 해외 자산과 방위 산업이 주목받았다.

지금 상황이 비슷하다. 최근 금 가격은 연초 대비 20% 넘게 급등해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달러 자산을 줄이고 금, 해외 자산, 엔화 등 대체 투자처로 자금을 이동시키는 등 ‘셀 아메리카(Sell America)’에 나섰다. 올해 들어 달러인덱스(DXY)는 8% 넘게 하락했다. 반면 방위 산업 관련 종목은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과거 사례를 근거로 향후 달러 약세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국 달러화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REER)은 1971년 닉슨 쇼크 이후 110대 초반에서 1980년대 초 80선까지 9년간 꾸준히 하락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5월 미국 경제 상황이 주가·국채값·통화 가치가 모두 급락한 ‘트리플 약세’를 겪었던 1990년대 일본 경제 상황과 유사하다며 미국 금융과 경제가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고 보도했다.

1970년대 닉슨 쇼크와 유사

달러 가치 급락하고 금 폭등

미국 달러 약세를 반기는 건 유럽과 중국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5월 26일(현지 시간) 달러 신뢰가 흔들리며 유로화가 대안이 될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독일 베를린에서 한 연설에서 “세계 경제의 개방성과 다자간 협력이 보호주의와 힘의 경쟁으로 대체된다”며 “이 체제를 떠받치는 달러의 지배적 역할에 대한 불확실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금태환 중지 선언 때와 달리 현재는 달러와 함께 또 다른 국제 통화인 유로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 말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17년 1분기 기준 각국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은 64%였다. 이 밖에 유로화(19%), 엔화(4.5%), 위안화(1.1%)가 자리 잡았다. 지난해 3분기에는 달러 비중이 57%대로 내려왔다. 유로화(20%), 엔화(5.8%), 위안화(2.2%) 비중은 소폭 증가했다.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올해 들어 10%가량 상승했다. 연초 1.03달러였던 달러·유로 환율은 1.1398달러 수준으로 올라왔다.

중국도 위안화 확장에 속도를 내는 중이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최근 국제 무역 시 위안화 결제 비율을 높여달라고 주요 은행에 요구했다.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최신 조치다.

또한 미국 국채 보유량도 꾸준히 줄여왔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 순위는 미중 관세 전쟁이 격화하기 이전인 지난 3월 영국에 2위 자리를 내주고 3위로 내려왔다. 중국의 미 국채 보유액이 영국보다 적어진 것은 2000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명순영 기자 myoung.soonyou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2호 (2025.06.04~2025.06.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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