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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로직스의 분할···삼성이 그리는 큰 그림 [스페셜리포트]

  • 배준희,최창원
  • 기사입력:2025.06.03 21:00:00
  • 최종수정:2025-06-02 21: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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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이 바이오 부문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다. 구조 개편 골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위탁개발·생산(CDMO)’ 전문 기업으로 남기고 기존 ‘신약·복제약 개발’ 부문은 신설법인 ‘삼성에피스홀딩스’로 분리하는 것. 조기 대선이 임박한 시점인 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삼성바이오 분식 회계 의혹 관련 재판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깜짝 발표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 최대 규모 시설을 기반으로 그룹 ‘캐시카우(현금 창출원)’ 역할을 하고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연구개발(R&D)·글로벌 파트너십 확대·M&A(인수·합병) 등으로 외연을 확장한다는 게 삼성의 복안이다.

삼성바이오 측은 “바이오 사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일 뿐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무관하다”고 선을 긋는다. 다만 개편 시점과 파급 효과에 비춰 삼성그룹 전체 시각에서 곱씹을 대목이 많다. 재계에서는 삼성그룹이 이재용 회장의 ‘트로피 사업’으로 바이오 부문을 낙점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보낸다. 이건희 선대회장이 반도체를 초격차 반열에 올린 반면, 이재용 회장은 이렇다 할 ‘트로피 사업’이 없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이번 분할을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연관 짓는 이도 많다. 삼성그룹 첫 지주사가 나온다는 점 등에 비춰 한동안 수면 아래 있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재개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삼성바이오 분할을 둘러싼 관전 포인트를 분석한다.

복제약 넘어 신약으로

다가온 에피스의 시간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5월 22일 인적분할 방식을 통해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설립하고, 삼성바이오에피스를 100% 자회사로 편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경아 삼성바이오에피스 대표가 홀딩스 대표이사직을 겸임한다. 이번 분할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고객사로부터 바이오 의약품(단백질·유전자 등으로 만든 의약품) 주문을 받아 만드는 CDMO 사업에 집중한다. 고객사 가운데 삼성바이오에피스와 경쟁 관계에 있는 기업이 적지 않아 이를 완전히 분리해 수주를 늘릴 계획이다.

시장에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분할이 시기의 문제일 뿐 방향은 정해져 있다는 시각이 많았다. CDMO로 벌어들이는 현금과 축적한 개발 역량을 지렛대 삼아 신약 개발 사업에 역량을 집중한다는 계획이 국내 바이오 업계의 다음 발걸음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던 터다.

우선, 삼성이 글로벌 바이오 산업 후발 주자임에도 CDMO 산업에 뛰어든 데는 이유가 있다.

CDMO 산업은 우리 기업 주특기 제조업과 속성이 유사하다. 설비투자(CAPEX)와 유지비용 등 고정비 비중이 높지만, 장기 수주 산업으로 수주 규모에 따라 규모의 경제 구현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막대한 비용과 오랜 시간이 소요되면서도 성과를 확신하지 못하는 신약 개발과 달리, CDMO는 투자가 곧 점유율로 이어진다. 지난해만 봐도 CDMO 부문 투자비용은 2조원을 넘어섰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삼성그룹 기대에 부응했다. 2011년 설립돼 15여년 만에 글로벌 톱티어로 성장해 그룹 새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반면,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특성상 단기간에 가시화된 성과를 내기 힘들어서다. 하지만 2023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창립 12년 만에 연간 매출 1조원 벽을 넘어서면서 삼성바이오에피스를 향한 기대감이 부쩍 커졌다. 동시에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넥스트 스텝에 눈길이 쏠렸다. 바이오시밀러는 한계가 뚜렷하다. 약가는 오리지널 의약품 대비 저렴할 수밖에 없고, 개발 가능한 제품도 한정적이다. 최근에는 경쟁까지 치열해진 상태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또 한 번의 퀀텀점프를 원한다면 신약 개발에 뛰어드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다.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통해 자본력과 기술력이 축적된 만큼 기본기도 탄탄한 상태다.

다만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다. 삼성그룹 바이오 사업의 구조적 문제점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의약품 생산을 맡기는 주요 고객은 화이자, MSD(머크), 로슈, 아스트라제네카, 노바티스, GSK, 일라이릴리 등 글로벌 빅파마다. 이들이 일감을 맡길 때 가장 큰 리스크는 삼성바이오에피스였다. 본인들의 의약품 제조 노하우와 기술이 유출될 수 있어서다. 이 상황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신약 개발을 꿈꾸는 건 언감생심.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CDMO 회사가 자체 신약 개발을 하는 것은 금기시되기 때문에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모자회사 구조는 삼성바이오에피스 성장에 다소 걸림돌이었다”고 분석했다.

삼성그룹은 바이오 부문 인적분할로 이해상충 우려를 덜어냈다.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급격한 글로벌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민첩하게 대응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양 사가 각 사업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이번 분할을 결정했다”며 “양 사 모두가 성장을 가속화해 글로벌 톱티어 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증권가 반응은 긍정적이다. 지금까지는 엄격한 방화벽(Firewall) 정책에도 이해상충 요소가 고객사 선택에 영향을 미쳤는데, 이를 풀었다는 설명이다. 여노래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분할은 필연적”이라며 “CDMO와 바이오시밀러 사이 이해관계 충돌로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주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사진설명

기대만큼 커진 에피스 부담

‘빈털터리’ 홀딩스 짊어져야

인적분할로 존재감 확대와 신약 개발 퀀텀점프 기회는 잡았지만, 그만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부담도 가중될 전망이다. 새로운 모회사가 된 신설법인 삼성에피스홀딩스(가칭)의 곳간은 사실상 빈털터리 수준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할계획서 속 ‘분할재무상태표’를 보면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승계받을 현금성 자산은 1000억원에 불과하다. 분할 전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 1조877억원 중 9.1% 정도다. 적극적으로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신약 개발을 지원하고 인수합병(M&A)까지 병행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더군다나 삼성에피스홀딩스는 별도 수익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은 삼성바이오에피스에서 받는 배당금과 수수료가 전부다. 삼성그룹 차원의 출자 등이 없다면 결국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스스로 돈을 벌어 신약 개발을 이어가야 한다.

이 때문에 자본 시장 한편에선 삼성바이오에피스 상장 가능성이 솔솔 흘러나온다. 삼성그룹은 “향후 5년간은 상장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유승호 삼성바이오로직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향후 5년간은 삼성바이오에피스 중복 상장을 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형준 삼성바이오에피스 부사장도 “분할 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으나 당장은 (상장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주목할 대목은 ‘5년’ ‘당장’이라는 시간이다. 보는 시각에 따라 5년 뒤에는 상장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경우 향후 나스닥 상장 가능성도 열려 있다”며 “5년 후 삼성바이오에피스 상장 가능성은 삼성에피스홀딩스의 디스카운트 심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수년 전부터 나스닥 상장 의지를 드러내왔다. 지난해 삼성전자 미래사업기획단장으로 임명된 고한승 전 삼성바이오에피스 사장은 2015년 기업설명회에서 “한국 시장의 한계점을 벗어나 가치평가를 받을 수 있는 나스닥에서 열심히 해온 일에 대해 증명을 받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신약 개발과 5년을 엮어 보는 시각도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신약 개발을 본격화할 경우 임상 구간 진입까지 필요한 시간이 5년이고, 본격적인 임상 시점에 맞춰 대규모 자금 조달 방안을 고려할 것이란 설명이다. 신약 개발은 크게 후보물질 스크리닝·임상시험계획(IND)과 임상 구간으로 구분된다. 보통 후보물질을 탐색하는 데만 4~5년이 필요하다. 5년 뒤에야 임상 구간에 진입할 수 있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임상에 진입할 때부터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다”며 “보통 바이오텍도 임상 진입 시점부터 라이선스 아웃이나 IPO 등을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상장을 추진할 경우 시장 비판을 피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에피스홀딩스가 이미 상장된 상황에서 삼성바이오에피스까지 상장하는 형태여서다. 단 한 번의 인적분할로 바이오 부문 상장사가 1개에서 3개로 늘어난다.

선제적 투자 이어온 ADC

첫 신약 후보 기대감

신약 개발 후보로는 차세대 항암제인 항체-약물접합체(ADC)가 꼽힌다. 그간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선제적 투자를 이어온 분야다. ADC는 한마디로 유도탄 방식으로 약물을 직접 전달하는 차세대 항암제다. 암 항원과 결합하는 항체와 암을 죽일 수 있는 세포 독성 약물(페이로드)을 링커(Linker)로 결합한 구조다. 항체가 약물을 암세포까지 유도한 뒤 선택적으로 공격하기에 정상세포가 아닌 암세포만 공격한다. 기존 화학 요법 대비 효능을 높이고 약물 독성을 줄이면서 정상 조직 손상을 줄일 수 있다. 올해 진행된 ADC 관련 기술 이전 거래액만 합쳐도 10조원을 넘어설 만큼 글로벌 바이오 시장의 핵심 키워드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ADC 관심은 2023년부터 본격화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23년 국내 바이오텍 인투셀과 최대 5개 항암 타깃을 대상으로 한 ADC 공동연구 개발을 체결했다. 최근 코스닥에 상장한 인투셀은 국내 대표 ADC 바이오텍이다. 리가켐바이오 공동창업자 겸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인 박태교 대표가 2015년 설립했다. 인투셀은 ADC 중에서도 ‘링커 기술’에 특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뿐 아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2023년 삼성물산·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라이프사이언스펀드’를 공동 출자했다. 주목할 대목은 해당 펀드가 총 8개 국내외 기업에 투자했는데, 3개사가 ADC 기업이라는 점이다. 이에 바이오 부문 M&A 전략도 ADC와 관련 있을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앞서 삼성그룹은 삼성에피스홀딩스의 신사업 진출 전략을 소개하면서 “장기적으로는 M&A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이 바이오 부문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다. 사진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직원이 4공장 배양기를 점검하는 모습.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삼성그룹이 바이오 부문 지배구조 개편에 나선다. 사진은 삼성바이오로직스 직원이 4공장 배양기를 점검하는 모습. (삼성바이오로직스 제공)

삼성 지배구조 연관성은

다시 돌아가는 지배구조 개편 시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이번 분할을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연관 짓는 시선도 있다.

삼성그룹에서 첫 지주사가 나온다는 점 등에 비춰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이후 중단된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재개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장에서는 삼성 파운드리사업부 분사설도 재점화되는 분위기다.

자본 시장에서는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끊이지 않고 나온다.

현재 삼성의 소유 구조는 ‘이재용 회장 등 오너 일가 → 삼성물산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이 회장은 그룹 주력 계열사 삼성전자 지분율이 매우 낮지만 이를 물산, 생명 등으로 우회해 간접 지배력을 행사한다. 이 회장은 그룹에서 사실상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삼성물산 최대주주(약 19%)다. 오너 일가를 모두 더한 삼성물산 지분율은 약 33%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 지배력을 지렛대 삼아 생명과 전자에 간접적인 지배력을 행사한다. 이 회장은 이건희 선대회장 사후 지분 상속으로 삼성생명 2대 주주(10.4%)로 올라 그룹 전체 지배력을 강화했다.

이 같은 소유 구조에 비춰, 이번 분할 동력으로 시장에서는 ‘삼성생명법’을 지목한다. 지금까지 보험사는 계열사 주식을 총자산의 3%까지만 보유할 수 있게 돼 있다. 보험사가 보유한 자산의 대부분은 보험료를 납입한 고객에게 되돌려줘야 할 부채인데, 이를 특정 자회사에 과도하게 투자함으로써 자칫 리스크가 전염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다. 이제껏 보험사 보유 주식의 자산 평가를 취득원가로 했기 때문에 ‘3% 룰’을 비켜갈 수 있었지만 국회 계류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은 이를 시가로 바꾸도록 한다. 22대 국회에선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 등이 발의해 정무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시가로 평가하면 27조원 안팎이다. 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삼성생명은 20조원 안팎에 달하는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국내 자본 시장에서 갖는 삼성전자의 위상과 비중을 고려하면 해당 지분을 시장에서 처분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더군다나 이 회장의 낮은 삼성전자 지분율을 고려하면 실현 가능성은 더욱 떨어진다. 삼성 오너 일가 지분의 블록딜(장외 대량 매매)을 전담해온 골드만삭스 주도로 우호 세력에 이를 ‘파킹’하는 방안도 거론됐지만, 이 역시 실현 가능성이 낮다.

이런 이유로, 생명의 전자 지분을 물산에 넘기고 물산이 보유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스왑(Swap·맞교환)하는 시나리오가 수년 전부터 꾸준히 거론됐다. 전배승 LS증권 애널리스트는 “보험업법 개정안이 지난 2월 발의됨에 따라 대선 이후 삼성전자 지분 매각 이슈가 재점화될 수 있다”고 봤다.

최관순 SK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물산은 중간지주사인 삼성에피스홀딩스 지분 매각을 검토해볼 수 있다”며 “보유하고 있는 삼성에피스홀딩스 지분을 매각할 경우 29조6000억원 규모 현금을 마련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최 애널리스트는 “삼성생명(8.5%)과 삼성화재(1.5%)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전자 합산 지분 가치가 32조9000억원이므로, 삼성 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이 확보할 여력이 생기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남은 문제는 있다.

삼성전자가 물산의 손자회사에서 직접 자회사로 편입되면 물산은 법적 지주사로 강제 전환된다. 지주사에 대해서는 공정거래법상 여러 규제가 적용된다. 지주사(삼성물산)는 상장 자회사(삼성전자 등) 지분을 30%(비상장사 50%) 이상 보유해야 하고 자회사는 상장 손자회사 지분을 3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은 자회사가 된 삼성전자 지분을 30% 이상 보유해야 하는 부담에 노출된다. 물론 지주사로 강제 전환되더라도 유예 기간이 주어지고 지주사 전환을 회피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채권을 발행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물산 부채를 늘려 총자산을 키우는 식으로 자회사 지분가액을 낮추면 된다. 단, 이 또한 편법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고 막대한 이자 비용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삼성 수뇌부의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보인다.

사진설명

파운드리 분사설도 재점화

전자 투자·사업회사 분할 시나리오도

그룹지배구조와 별개로,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 분사설도 다시 달아오른다.

파운드리 분사설을 뒷받침하는 논리의 뼈대는 ‘사업부 이해충돌 우려 제거’라는 이번 인적분할 배경과 다르지 않다. 삼성 파운드리 역시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 아래 종속된 현 조직 구조로는 독립적인 의사 결정 프로세스를 구축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현 조직 구조로는 글로벌 팹리스(반도체 설계) 업체의 기술 유출 우려를 불식하는 것부터 난제다. 글로벌 팹리스 업체는 반도체 핵심 자산인 설계도를 경쟁 기업인 삼성전자에 맡기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물론 파운드리사업부 분사와 증시 상장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는 험로가 예상된다. 분사 뒤 파운드리사업부가 독자적으로 막대한 설비투자를 지속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부터 떠오른다. 지금은 메모리 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을 지렛대 삼아 TSMC와 사활을 건 투자 레이스를 펼친다. 지난 수년간 메모리가 벌어들인 수십조원의 순이익 상당 부분이 파운드리로 흘러 들어갔다. 그럼에도 TSMC에 견줘 투자 규모가 부족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할과는 제반 여건도 차이가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경우 본업 CDMO에서 현금흐름이 탄탄한 데다 바이오시밀러를 담당하는 삼성바이오에피스도 흑자를 내고 있다. 실질적인 생존 기반이 어느 정도 마련됐다는 판단 아래 위탁생산과 개발 간 분할이 이뤄질 수 있단 평가다.

반면,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은 수년째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다. 추정치는 제각각이지만, 시스템LSI와 합쳐 분기별 조 단위 영업적자를 기록 중인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내년에는 26조원이 투입된 미국 테일러팹 가동도 예정돼 있다. 이 팹은 초미세 선단공정 파운드리지만, 유의미한 매출 기반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감가상각비만 늘어나 적자폭은 더 커질 수 있다. 다만, 나스닥 상장 때는 국내보다 높은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모기업 삼성전자 주가가 재평가받는 계기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시장 일각에서는 삼성 바이오 분할과 맞물려 향후 삼성물산 지주사 전환 이슈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삼성전자 지배구조 개편 역시 더는 미루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분할 시나리오로는 크게 삼성전자를 투자회사(홀딩스)와 사업회사로 인적분할하고 파운드리사업부 분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분할 시 110조원에 달하는 현금성 자산 상당 부분을 삼성전자 투자회사에 배치하고 분사 후 파운드리사업부도 여기에 두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삼성물산은 분할로 몸집이 가벼워진 삼성전자 투자회사 지분을 추가 확보할 수 있고 지주사 전환에 걸림돌이 사라진다. 파운드리사업부도 메모리사업부와 분리되는 가운데 투자회사 지원을 받아 독자 생존 기반을 다질 시간을 벌 수 있다. 김수현 D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삼성그룹의 약한 연결 고리는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이었으나 이번 분할로 이런 우려를 일부 덜 수 있게 됐다”며 “중장기적으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배준희 기자 bae.junhee@mk.co.kr,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12호 (2025.06.04~2025.06.1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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