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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분양 관리지역’ 평택…‘마피’ 5000에도?

‘반도체 불황’ 영향 이 정도일 줄이야…

  • 조동현
  • 기사입력:2025.03.18 21:00:00
  • 최종수정:2025-03-18 18: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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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불황’ 영향 이 정도일 줄이야…

# 지난 3월 11일 오후 경기도 평택시 화양지구 A아파트 공사장은 한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한창 건설 중인 아파트 인근 분양대행사와 공인중개사사무소엔 분양 광고가 걸려 있지만, 찾는 사람 없이 흙바람만 나부꼈다. 평택시가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된 다음 날 풍경이다.

평택시 현덕면 일대 279만㎡ 규모로 개발되는 화양지구는 총 2만여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끼고 있어 평택시에서도 핵심지로 꼽히는 고덕국제신도시 일대까지 자동차로 30분 거리인 곳이다. 하지만 현장에선 미분양이 급증하면서 분양권을 포기하고 ‘마이너스 프리미엄(마피)’으로 내놓는 매물이 넘쳐난다. 인근 B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마피 1500만원 정도 손해 보고 분양권을 팔면 금방 나갔다”며 “그런데 요즘은 e편한세상, 힐스테이트 같은 대형사 브랜드 아파트 분양권을 4000만~5000만원 손해 보고 내놔도 매수자가 없다”고 사정을 들려줬다. 인근 C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 의견도 다르지 않다. “가격이 더 내려갈 거라는 전망이 많다 보니 실수요자들이 관망하는 추세다. 이 상태라면 준공 후 미분양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최근 경기도 평택시가 또다시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됐지만, ‘거래 절벽’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다. 한때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과 대규모 산업단지 개발 호재로 주목받던 곳이지만, 최근 반도체 업황 악화와 공급 과잉이 맞물리면서 미분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모양새다. 지방을 넘어 수도권까지 미분양 공포가 확산하면서 미분양 해소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른다.

경기도 평택시에서 미분양이 급증하면서 분양권을 포기하고 ‘마이너스 프리미엄’으로 내놓은 매물이 넘쳐난다. 사진은 평택시 화양지구 아파트 공사장. (윤관식 기자)
경기도 평택시에서 미분양이 급증하면서 분양권을 포기하고 ‘마이너스 프리미엄’으로 내놓은 매물이 넘쳐난다. 사진은 평택시 화양지구 아파트 공사장. (윤관식 기자)

평택, 1년 만에 미분양 18배 증가

반도체 공장 건설 지연에 청약 찬바람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평택시는 지난 3월 10일부터 4월 9일까지 한 달간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됐다. 2020년 6월 이후 4년 10개월 만이다. 평택시는 2018년 5월부터 약 2년 동안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됐다, 2020년 6월 부동산 활황이 경기 외곽과 지방으로 확산하면서 관리지역에서 해제된 바 있다. 앞서 지정된 경기 이천시와 강원 속초시, 전남 광양시, 경북 경주시에 이어 다섯 번째다.

미분양 관리지역은 미분양 가구 수가 1000가구 이상이면서 ‘공동주택 재고 수 대비 미분양 가구 수’가 2% 이상인 시·군·구 중에서 지정한다. 미분양 증가 속도가 빠르거나, 미분양 물량이 계속해서 해소되지 않는 지역, 신규 미분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곳이 대상이다.

미분양 관리지역에 포함되면 신규 분양이 까다로워진다. 분양보증 발급 전 사전 심사를 받아야 하는 등 HUG 보증 심사가 강화돼 시행사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다. 신규 주택 공급을 제한한 상태에서 미분양을 털어내려는 목적이다.

평택의 미분양 증가 속도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도 압도적이다. 지난해 1월 미분양이 361가구였는데 올해 1월 6438가구로 1년 만에 18배가량 증가했다. 경기 지역 전체 미분양(1만5135가구)의 42.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이 중 대부분은 화양지구, 브레인시티 등 신규 택지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평택의 미분양 급증 원인 중 하나로 반도체 산업 불황이 꼽힌다. 평택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9년 반도체 벨트 조성 계획이 나오면서 부동산 시장이 꿈틀댔다. 2021년과 2022년에는 집값 상승률, 외지인 매매 비중, 갭투자 비율 등 주요 지표가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부동산 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건설사들이 분양 물량을 쏟아낸 상황에서 2022년부터 부동산 경기가 침체돼 아파트값이 조정을 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업황 악화로 신규 공장 가동을 연기하면서 지역 내 산업단지 확장도 지연되고 있다. 자연스레 매수자 투자 심리도 위축되는 양상이다.

아파트 청약 시장에도 찬바람이 분다. 지난해 12월 평택 브레인시티 일반산업단지에 분양한 ‘브레인시티푸르지오’는 일반공급 1933가구 모집에 1·2순위 합쳐 312명만 청약하는 데 그쳤다. ‘브레인시티수자인’은 1·2순위 864가구 모집에 94명만 접수했다.

주택 공급 과잉도 미분양 증가세를 부채질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평택에 분양된 아파트는 2022년 1만2130가구, 2023년 1만3026가구, 지난해 1만4275가구로 매년 1만가구를 웃돌았다. 문제는 앞으로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현재 평택시의 미분양은 대부분 ‘준공 전’ 물량이다. 올해부터 3년간 2만9455가구가 입주 예정이다. 이는 평택시 연평균 적정 주택 수요(2500가구)의 10배에 달하는 수준이라 악성 미분양인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넘쳐날 우려가 크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평택은 미분양 관리지역으로 지정될 만큼 분양 시장 전망이 좋지 않아 기존 미분양 물량이 해소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결국 삼성 평택캠퍼스 공장 건설이 속도를 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사진설명

미분양 불길, 수도권으로 ‘북진’

세금, 대출 규제 완화 절실

평택뿐 아니라 수도권 전역에 미분양이 늘어나는 만큼 정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수도권 미분양 주택은 2021년 8월 1183가구로 최저점을 찍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해 2만가구 돌파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특히 준공 후 미분양 비중이 높아지면서 시장 불안이 커지는 모습이다. 수도권 준공 후 미분양은 올해 1월 기준 4446가구로 전체의 22.5% 수준이다. HUG로부터 미분양 관리를 받는 이천 역시 1월 기준 미분양 물량이 1873가구로 평택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전년 동기(151가구)에 비해 11배가량 늘어난 수치다. 경기 광주시(899가구), 가평군(686가구), 안양시(273가구) 지역도 미분양 가구가 세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다.

문제는 정부의 미분양 해소 대책이 주로 비수도권 지역에만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수도권 주택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CR리츠(기업구조조정 부동산투자회사)의 미분양 주택 매입 대상에서 빠졌다. 여기에 실수요자들이 이용하는 주택구입(디딤돌)·전세자금(버팀목) 금리를 수도권은 오히려 0.2%포인트 인상했다. 지방 준공 후 미분양에 대해서는 0.2%포인트 내린 것과 대조된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과세 특례 적용 지역을 비수도권에서 ‘서울을 제외한 지역’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LH나 CR리츠의 미분양 매입 대상에서 수도권을 제외하면서 수도권 미분양 해소는 더욱 어려워졌다”며 “수도권 외곽지역도 미분양이 심각한 만큼 지원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분양 문제를 해결하려면 단순한 금융 지원을 넘어 보다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새겨들을 만하다. 양도세, 취득세 등 세금을 대폭 감면하거나 LTV(주택담보인정비율),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완화 등 대출 문턱을 확 낮추는 것도 시급하다는 의견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까지 미분양 주택 매입 지원을 확대하고, 대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는 미분양 위험이 높은 지역의 공급 조절과 입주 물량 분산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1호 (2025.03.19~2025.03.2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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