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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erseas Trip]놓칠 수 없는 골목길, 포르투갈 소도시 산책

포르투갈 여행② 작지만 거대한 소도시 골목길 여행

  • 추효정(여행작가)
  • 기사입력:2025.06.03 04:09:04
  • 최종수정:2025-06-03 04: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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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②
작지만 거대한 소도시 골목길 여행

아직도 공주와 왕자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성, 뼈로 만든 예배당에서 느끼는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방 같은 카페들. 포르투갈 소도시에는 낯설지만 친숙한, 소박하지만 멋스러운 매력이 있다. 중부와 남부에 위치한 각기 다른 매력을 풍기는 4곳의 소도시로 떠나는 여정. 자, 이제부터 한적한 소도시의 골목길을 거닐어보자.

(위) 신트라행 기차 (아래) 로시오 기차역 전경
(위) 신트라행 기차 (아래) 로시오 기차역 전경
포르투갈 소도시 ① 신트라
에덴 동산 같은, 동화 속 세상을 만나다

리스본의 봄 날씨는 더도 덜도 말고 완벽 그 자체다. 아침과 저녁에는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한낮에는 따사로운 햇빛이 땅을 적셔 발길 닿는 곳마다 온기가 뜨겁게 일렁인다. 이런 찬란한 날씨를 품은 날에는 뭘 하든 부족할 리 없겠지만 가장 좋은 선택은 주변 소도시로 당일치기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리스본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깝고, 쉽게 여행할 수 있는 곳, 바로 신트라(Sintra)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을 여행하면서 당일치기로 경기도권에 있는 지역에 방문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리스본 도심에 있는 로시오역에서 신트라까지는 기차로 40분이면 닿는 거리다. 거리상 가깝다는 장점은 한편으론 ‘인기 관광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만원 기차에 탑승해야 했지만 창밖으로 펼쳐진 청명하고 눈부신 하늘이 시끌벅적한 소란스러움에서 해방감을 선사했다.

(우) 신트라 시가지 전경 (아래) 무어 양식의 건축물 신트라 국립궁전
(우) 신트라 시가지 전경 (아래) 무어 양식의 건축물 신트라 국립궁전

장엄한 신트라 산맥 북쪽 기슭에 자리 잡은 소도시 신트라는 중세시대부터 1910년 포르투갈 혁명 이전까지 포르투갈 왕족이 여러 세대에 걸쳐 거주했던 왕궁이 있는 곳이다. 언덕 위에는 당시의 시대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11세기 무어 양식의 성과 궁전 및 주택 등이 있는데, 그 풍경이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현재에도 왕자와 공주가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신트라 일대는 이러한 여러 낭만주의 건축물, 유서 깊은 저택과 빌라, 정원 등 문화적 중요성과 뛰어난 자연경관을 인정받아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8세기말, 신트라의 이국적이고 신비로운 유적과 자연은 당시 유럽의 여러 낭만주의 시인들에게 창조적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시인과 예술가들은 신트라를 낙원을 뜻하는 ‘에덴 동산’이라 극찬했으며, 상류층의 거주지역으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다.

좁은 골목길마다 상점과 식당이 자리해 있다.
좁은 골목길마다 상점과 식당이 자리해 있다.

그 명성에 걸맞게 한 집 건너 하나씩 유적지가 나타나는 형국인데, 사실 이 모든 곳을 둘러보려면 당일치기로는 역부족이다. 하루이틀 숙박을 고려하는 것도 좋지만, 여의치 않다면 한두 곳의 유적지 탐방을 권한다. 무어풍 낭만주의 건축의 걸작이라 평가받는 페나 국립궁전이나 10세기 무어인들이 지은 무어성, 중세시대부터 1910년까지 왕실의 여름 별장으로 쓰였던 신트라 국립궁전 등이 대표적인 유적지로 손꼽힌다.

한 가지 고려할 것은 어디를 가든 거대 인파에 휩쓸릴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신트라는 단체관광객의 수가 많아 가이드를 따라 길게 줄지어 다니는 무리를 쉬이 볼 수 있고, 이로 인해 번잡함의 체감이 더욱 크다. 인적 드문 장소에서 신트라의 자연경관을 오롯이 즐기고 싶다면 신트라역에서 숲을 지나 국립궁전을 통과한 후 무어성 입구로 가는 산책로를 추천한다.

(좌측 1, 2번째)무어 양식 건축물 신트라 국립궁전, (우측)무어성 입구로 가는 산책로
(좌측 1, 2번째)무어 양식 건축물 신트라 국립궁전, (우측)무어성 입구로 가는 산책로

울창한 나무로 뒤덮인 구불구불하고 좁다란 산책로를 한 시간여 걷고 오르면 신트라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 도달하게 된다. 예로부터 ‘자연 공원’이라 불려온 신트라 전체 경관은 온통 초록빛이 무성하다. 숲 내음을 크게 들이쉬며 자신의 호흡에 집중할 것. 잔잔한 산맥과 이끼가 무성한 숲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포르투갈 소도시 ② 에보라
삶과 죽음을 상기시키는 중세 도시

리스본 주변 소도시 가운데 신트라 다음으로 당일치기 여행으로 손꼽히는 지역인 에보라(Evora). 리스본에서 동쪽으로 약 130km 떨어져 있는 이 도시는 버스로 2시간이면 닿는다. 일정상 여유가 생겨 에보라에서는 1박을 계획하고 갔는데, 체류일정이 하루씩 늘어 결과적으로 3박을 꼬박 채웠다. 이유는 간단했다. 관광객들로 붐비지 않는 소도시만의 여유가 넘쳤지만, 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는 심심한 여행지도 아니었기 때문. 에보라에 도착한 뒤 일단 한산한 풍경에 놀랐고, 볼거리가 많아서 다시금 놀랐다. 대도시보다 소도시 여행을 선호하고, 소소한 재미에 더 흥미를 느끼는 여행자라면 에보라야말로 최적의 장소임이 틀림없다.

낭만주의 건축물이 아름다운 신트라 거리 풍경
낭만주의 건축물이 아름다운 신트라 거리 풍경

일단 산책이 즐겁다. 포르투갈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존된 중세 도시 중 하나인 이곳은 구시가지 중심부와 중세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거리 곳곳을 걸으며 과거로의 발걸음을 내딛기에 좋다. 특히 14세기 성벽 안에 자리잡은 에보라의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가장 흥미로운 요소다.

미로처럼 나 있는 골목길은 지도를 확인하지 않는 순간 길을 잃게 만드는데, 이 또한 매력적이다. 지도를 보지 않고 열린 길을 따라 계속해서 나아가다 보면 골목과 골목을 잇는, 그러다 그 길 끝에 메인 도로를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길을 잃는 즐거움과 모든 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경험이, 나아가 과거와 현재가 연결되어 미래로 나아가는 힘을 얻는 일이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자연스레 피어난다.

좁은 골목길마다 상점과 식당이 자리한다.
좁은 골목길마다 상점과 식당이 자리한다.

구시가지에는 로마 사원을 포함해 다양한 역사적 건축물과 기념물이 자리해 있다. 기원전 57년에 로마인들이 이 도시를 정복하고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로 확장한 것이 현재까지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 당시 에보라는 여러 중요한 도로의 교차로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는 포르투갈에서 번성한 도시 중 하나로 명성을 떨친 배경이기도 하다.

대성당과 사원, 왕궁, 대학교 등이 위치한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오늘날 대표적인 관광요소가 됐다. 정교한 고딕 양식의 중세 대성당과 회랑, 마을 광장은 에보라의 과거와 현재를 살필 수 있는 중추적인 공간이다. 잘 보존된 역사적 건축물이 가진 힘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끼고 경험하기에 제격이다.

(좌)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신트라 시가지 (우) 에보라의 좁고 구불구불한 자갈길
(좌) 전망대에서 바라다본 신트라 시가지 (우) 에보라의 좁고 구불구불한 자갈길

많은 방문객이 에보라를 찾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뼈 예배당’을 직접 보기 위해서다. 성 프란치스코 교회 입구 옆에 위치한 작은 실내 예배당인 ‘카펠라 도스 오소스(Capela Dos Ossos)’는 에보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이면서 동시에 소름 끼칠 정도로 가장 섬뜩한 공간이라 일컬어진다. 그도 그럴 것이 내부 벽이 인간의 두개골과 뼈로 덮여 있고, 약 5,000구의 시체가 예배당 벽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1816년 프란치스코회 수도사들에 의해 조성된 뼈 예배당은 당시 교회와 수도원 일대에 묘지가 넘쳐나는 현실을 해결하고자 택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이에 더해 수도사들이 주민들에게 ‘삶과 죽음은 가까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 것도 뼈 예배당을 지은 배경과 맞닿아 있다. 예배당 입구 상단에 ‘여기 있는 뼈들이 당신의 뼈를 기다린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그야말로 삶과 죽음이 종이 한 장 차이 같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심장을 후벼 팠다. 죽음을 상기시키는 이 예배당에서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뜨겁게 살아있음을 명확히 체감했다.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오히려 살아가는 것을 마주보게 한다.

포르투갈 소도시 ③ 베자
로컬 마을 특유의 정취를 따라서
(위) 에보라 구시가지 전경 (아래) 에보라 로마 신전
(위) 에보라 구시가지 전경 (아래) 에보라 로마 신전

에보라와 닮은 듯 다른 소도시, 베자(Beja)로 향했다. 에보라에서 남쪽으로 약 80km 떨어진, 차량으로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거리상의 이점이 베자를 목적지로 피크닉 계획을 세우게 했다. 무엇보다 에보라 호텔 직원이 포르투갈 특유의 로컬마을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베자를 방문할 것을 적극 권했는데 가보니 직원이 추천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말 그대로 관광요소와는 약간 거리가 먼 천연 로컬 소도시다. 달리 보면 그런 점이 베자에 관해 흥미를 끌 만한 요소로 충분히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아름답고 비옥한 계곡으로 둘러싸인 높은 언덕에 자리잡고 있는 베자는 천혜의 환경으로 오랜 세월 곡물과 올리브오일, 와인 등의 풍부한 농산물 재배가 이뤄져 왔다. 중세 시대에 지어진 옛 로마 성벽이 여전히 도시의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는데, 베자 성은 포르투갈에 남아 있는 중세 건축물 중 가장 뛰어난 사례로 여겨진다.

(위) 중세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심  (아래) 인간의 두개골과 뼈로 덮여 있는 뼈 예배당
(위) 중세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도심 (아래) 인간의 두개골과 뼈로 덮여 있는 뼈 예배당

120피트 높이에 정사각형의 거대한 구조물로 지어진 베자 성은 13세기 디니스 왕의 통치 기간 동안 요새의 기능을 했다. 197개의 나선형 계단을 통해 망루 꼭대기에 오르면 마을 전체와 더불어 맑은 날에는 주변 신트라 산맥까지 조망할 수 있다. 성 주변의 여러 성당이나 박물관 등을 둘러보며 베자 마을의 역사를 살피기에 충분하다. 중세 건축물 탐방을 뒤로 하고 ‘특유의 로컬 마을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동네 카페를 찾았다. 의미나 분위기로 따지면 ‘다방’에 더 가깝다.

도심에 심장처럼 자리한 ‘루이스 다 로샤(Luiz da Rocha)’ 카페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이켜며 마을의 정취 또한 한껏 삼켰다. 1893년 문을 열어 130년 넘게 베자를 지켜온 곳이다. 낡고 오래된 내부 인테리어가 지나온 세월과 빈티지한 감성을 오롯이 느끼게 한다. 그 안에서 삼삼오오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이들은 노년층이 대다수다. 카페에 사람이 한 명씩 들어올 때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주민들을 보고 있자니 동네의 사랑방이 따로 없다.

10세기 무어인들이 지은 성곽
10세기 무어인들이 지은 성곽

베자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사랑방은 베자 성과 대성당 주변에 위치한 ‘포르노 다 티 비아 가델랴(Forno da Ti Bia Gadelha)’로, 100년 전에 지어진 도시의 공동 오븐 공간이다. 과거 주민들은 각자 자신의 집에서 빵을 반죽한 뒤 이곳에 다같이 모여 오븐에 빵을 구웠다. 지금은 각 가정집마다 오븐이 있지만 수십 년 전만 해도 오븐은 사치품이나 다름없었다.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나고 장작불에 갓 구운 빵의 신선하고 고소한 냄새가 마을 전체에 퍼졌던 옛 풍경은 이제 사라졌지만 이 공동 오븐 공간만큼은 여전히 남아 마을과 주민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있다.

포르투갈 소도시 ④ 파로
최남단에 위치한 매혹적인 휴양 도시
13세기에 지어진 베자 성
13세기에 지어진 베자 성

포르투갈 남부 알가르베(Algarve) 지역은 포르투갈의 여름 경제를 책임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즉,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대표적인 여름 휴양 도시라는 의미다. 일년 내내 햇살이 비치는 이 지역은 황금빛으로 반사되는 높은 절벽, 긴 모래사장, 푸른 빛을 띠는 해변이 즐비하게 자리한다. 지역 전체를 ‘파라다이스’라 통칭하는데, 알가르베에 속한 여러 도시 가운데 포르투갈 특유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는 곳이 바로 파로(Faro)다. 포르투갈 최남단에 위치한 이곳은 휴양 도시의 매력과 동시에 로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위에서 부터) 베자 성 안에 자리한 박물관, 130년 넘게 베자를 지켜온 ‘루이스 다 로샤’ 카페, 베자 도심 전경
(위에서 부터) 베자 성 안에 자리한 박물관, 130년 넘게 베자를 지켜온 ‘루이스 다 로샤’ 카페, 베자 도심 전경

도심 중앙부에 위치한 매력적인 항구에서 구시가지로 향하는 길은 18세기 포르투갈 및 무어 양식의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며 예스러운 분위기를 흠뻑 자아내는 데다, 구불구불한 자갈길을 따라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현대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소도시만의 소박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파로 구시가지 전경
파로 구시가지 전경

파로 해변은 약 6km에 달하는 큰 면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한여름철 관광객들로 붐비는 시기에도 비교적 한적한 풍경을 자랑한다. 해안선을 따라 위치한 리아 포르모사 자연공원(Nature Park of Ria Formosa)은 포르투갈의 7대 자연경관 중 하나로 꼽힌다.

(위로부터) 파로 마리나 전경, 생태 관광의 중심지인 리아 포르모사 자연공원, 리아 포르모사 자연공원에서 바라본 일몰 풍경
(위로부터) 파로 마리나 전경, 생태 관광의 중심지인 리아 포르모사 자연공원, 리아 포르모사 자연공원에서 바라본 일몰 풍경

소금 석호와 간석지로 이루어진 공원은 모래언덕이 흩어져 있어 습지나 수로, 작은 섬과 같은 반도를 형성하고 있다. 수생 철새와 해양 생물로 인해 생태 관광 지역으로도 인기가 높은 편이다. 석호 위에서 카약이나 보트를 타거나 습지 사이로 나 있는 트레킹 코스를 따라 산책을 즐기며 생물의 환경을 관찰하는 생태 관광으로도 각광받는다.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81호(25.05.2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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