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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생 똑똑한데 소심…실패 두려워 마세요

'한류 전도사' 샘 리처드 교수 방한 인터뷰
실수·실패 겪으며 한층 성장
암기보다 해결능력 키워야죠
韓 서열화·자살 급증 등 폐해
일·학교·인간관계 균형 절실
미국 대학생들 K드라마 열광
한류의 힘 앞으로도 엄청날 것

  • 이향휘
  • 기사입력:2025.06.02 17:38:11
  • 최종수정:2025-06-02 19: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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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너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뤘지만, 동시에 자살률도 높죠."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다는 '한류 전도사' 샘 리처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사회학과 교수(건국대 석좌교수·65)의 지적이다. 지난주 건국대에서 만난 그는 청바지에 '서울 마이 소울(SEOUL MY SOUL)'이라는 로고가 적힌 서울시 티셔츠 차림으로 시종일관 유쾌한 모습이었다. 학생 20명을 이끌고 방한해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그는 얼마 전엔 한국 독자를 위해 인생의 통찰을 담은 '스위트 스팟(Sweet spot)'을 출간했다.

그의 10대는 모범생과 거리가 멀었다. 드럼을 연주하고, 지게차를 운전하고, 페인트칠을 해 돈을 벌었다. 대학 자퇴 위기에서 공부를 제대로 하겠다는 결심이 섰고, 그 후 40년간 강단에 올랐다. 2018년 자신의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방탄소년단(BTS)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앞으로 세계에서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는 영상이 유튜브로 퍼지며 유명해졌다.

그가 처음 한국을 눈여겨본 것은 40년 전이었다.

"1984년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군사정권을 연구하던 중이었어요. 한국인 대학원생이 한국 군사정권 얘기를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죠. 당시 한국은 칠레보다 가난했고, 미국으로 수출하는 제품들도 품질이 낮았어요. 가장 쌌던 금성 카세트테이프를 구매하곤 했는데 툭하면 고장이 났죠. 지금은 어떻습니까. 미국인들은 화장품을 살 때 프랑스산을 사지 않아요. 한국산을 삽니다. 한국에 대한 신뢰가 높아요. 문화 콘텐츠 품질도 압도적이죠."

한류의 지속가능성을 묻자 그는 전 세계 인구가 80억명이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성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다. 다만 한국에서 되레 K컬처에 대한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점을 의아해했다. "건국대 학생 상당수가 K드라마를 보지 않더군요. 이야기가 진부하고 로맨스로만 끝난다면서요. 오히려 펜실베이니아주립대 학생들이 더 열광합디다."

최근 본 드라마 가운데 최고작으로는 '사랑의 불시착'을 꼽았다. "이 드라마는 북한과 남한, 군사, 사랑과 우정, 가족, 소주 등 모든 것을 다 지니고 있어요. 스토리가 정말 좋아요."

리처드 교수는 이제 글쓰기 과제를 내주지 않는다. 학생들이 '챗GPT'로 숙제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를 들고 자기 생각을 말하는 영상을 찍어 과제로 제출하라고 하죠.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인공지능(AI)이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어요."

교실에서 한국 학생들은 유독 손을 들고 질문을 하지 않는다. 수학이나 과학 성적이 뛰어난데도 자신을 평가하라고 하면 "보통이에요"라고 말한다. 서양 학생들이 "잘하고 있다"고 대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는 "완벽하지 않으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겸손함은 자칫 자신감 부족으로 비칠 수 있다"며 "자신감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때 생긴다. 실수와 실패를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25~34세 한국인 중 70%가 대학 학위를 갖고 있지만, 대졸자를 위한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촘촘하게 모든 걸 등급화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성적을 내 'SKY'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전부인 양요. 시험을 위해 암기하고 정답 찾기에만 집중하죠."

그는 '스위트 스팟'에서 경쟁과 스트레스에 치인 한국인들에게 삶의 균형, 즉 '밸런스'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스위트 스팟은 최적의 지점을 의미하는 스포츠 용어로, 책에선 인생 최고의 상황을 뜻한다.

"삶은 투쟁이자 질문입니다. 일, 학교, 인간관계? 모두 균형 문제죠. 불교에서의 가르침처럼 '현재'에 집중할 때 '스위트 스팟'을 누릴 수 있어요."

[이향휘 선임기자·사진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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