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꾼 집단의 꾀임에 넘어가 아내를 잃은 제페토는 인조인간 ‘피노키오’를 제작한다. 의학지식을 총동원해 만든 피노키오는 ‘창조주’ 제페토의 설계에 따라 위선자, 사기범을 차례대로 살해한다. 연쇄살인범 피노키오는 스스로를 다독인다. “나는 진실이다.” 하지만 자꾸만 피노키오의 기억에 ‘자신이 거짓말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유는 뭘까.
피노키오에 관한 전통 서사를 비튼, 새로운 서사의 영화가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제목은 ‘피노키오: 비긴즈’. 이 영화는 서사적 독창성도 주목할 만하지만 형식 면에선 더 큰 주목을 요한다. 12분53초의 영상을 모두 인공지능(AI)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CGV AI영화 공모전’에서 수상한 AI영화 5편이 이날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히어로’와 ‘빌런’을 주제로 한 이번 공모전에는 예선을 거쳐 15편이 본선에 올랐고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엄태화 감독, 김중혁 작가,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AI영화 ‘엠호텔’을 연출했던 정창익 감독의 심사와 7000명이 참여한 온라인 투표로 당선작이 확정됐다.
대상작은 현해리 감독의 ‘The Wrong Visitor’가 차지했다. 이승과 저승을 잇는 공간에서 근무하는 늑대의 이야기다. 어느 날, 양의 얼굴을 한 어린 소녀가 이 공간으로 오면서 고민과 갈등은 시작된다. AI 기술로만 만들어진 이 영화는 이질감이 거의 없고, 탄탄한 플롯도 매력적이었다. 현 감독은 시상식장에서 “생각만 했던 이야기가 AI 툴을 통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개념이 실체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 시대를 사는 저는 축복받았다고 생각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우수상에는 강대형 감독의 ‘0KB(제로킬로바이트)’가 차지했다. 죽음을 맞이한 뒤 인간의 뇌가 기억하는 ‘74초’를 클라우드에 저장하는 기술이 만들어지면서 벌어지는 영화다. 젊은 시절, 이 기술의 상업화에 공을 세운 전직 해커가 아내의 죽음 직전 74초에 의문을 품으면서 갈등이 발생한다.
우수상에는 김영현 감독의 ‘은하의 고양이 택배’와 안예은 감독의 ‘피노키오: 비긴즈’, CJ ENM 특별상에는 김윤각 감독의 ‘페이퍼월드’가 선정됐다. CGV는 수상작 5편에 본선 진출작 4편을 추가해 총 9편의 AI 영화를 이번 여름 특별 상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