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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연극 ‘킬링시저’로 고전극 도전한 배우 손호준·유승호…시대 불변의 고전과 ‘뜨겁게 모인 배우들’

배우 손호준과 유승호의 참여로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은 연극 ‘킬링시저’가 베일을 벗었다.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성황리에 개막한 극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재창작한 작품이다. 공화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벌어진 시저 암살이 결국 또 다른 독재자를 탄생시킨 아이러니를 연극으로 구현했다. ‘고전의 세련된 재해석’이라는 평을 받으며 순항 중인 ‘킬링시저’. 그 중심에는 11명의 배우와 연출, 작가, 스태프들의 힘과 합이 있었다.

  • 이승연
  • 기사입력:2025.06.02 11:26:33
  • 최종수정:2025.06.02 11:2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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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손호준과 유승호의 참여로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은 연극 ‘킬링시저’가 베일을 벗었다.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성황리에 개막한 극은,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재창작한 작품이다. 공화정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벌어진 시저 암살이 결국 또 다른 독재자를 탄생시킨 아이러니를 연극으로 구현했다. ‘고전의 세련된 재해석’이라는 평을 받으며 순항 중인 ‘킬링시저’. 그 중심에는 11명의 배우와 연출, 작가, 스태프들의 힘과 합이 있었다.
‘킬링시저’ 속 시저 역의 배우 손호준(사진 토브씨어터컴퍼니)
‘킬링시저’ 속 시저 역의 배우 손호준(사진 토브씨어터컴퍼니)

죽음으로도 사라지지 않는 권력의 그림자

로마 공화정 시절, 독재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각종 공훈을 얻으며 강력한 세력가로 입지를 굳혀갔다. 브루터스를 비롯한 공화정 원로들은 그가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암살하지만, 이후 공화정은 파멸하고 옥타비아누스를 중심으로 한 로마 제국이 등장한다. 로마 제국의 전신과 설립이라는 역사적 사실은, 많은 고전 작품의 모태가 되었다. 대중에게 친숙한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이를 바탕으로 희곡을 썼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하나인 ‘줄리어스 시저’(1599)를 재창조한 연극 ‘킬링시저’는 셰익스피어 원작 속 서술과, 실제 로마 제국의 설립 속 등장하는 인물들을 밀도 높게 그려냈다. 도입부는 시저 암살로 시작된다. 로마 공화정의 독재관 줄리어스 시저(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민중의 절대적 지지를 받지만, 황제의 자리에 다가간 그의 존재에 위험을 느낀 원로원 의원과 브루터스, 동료들에게 암살당한다.

로마의 절대적 지도자이지만 암살 위기에 처한 시저와, 공화국의 이상과 친구를 배신해야 하는 딜레마 속에 갈등하는 이상주의자 브루터스, 또 정치적 야망과 공화국 수호의 명분 속에서 갈등하는 ‘카시우스’ 등은 첨예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후 ‘왜 시저를 죽였는가?’로 이어지는 선동, 인물 간의 갈등이 반복되며, 극의 후반으로 갈수록 죄책감에 미쳐가는 브루터스와, 시저의 후계자이자 새로운 권력자인 옥타비아누스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했지만 권력에 짓눌려 죽음을 맞는 브루터스, 로마 제국의 탄생을 이끌며 권력의 정점에 선 옥타비아누스의 클라이맥스 장면은 상반된 명암처럼 깊은 잔상을 남긴다.

(왼쪽부터)배우 유승호, 김준원(사진 토브씨어터컴퍼니)
(왼쪽부터)배우 유승호, 김준원(사진 토브씨어터컴퍼니)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온 손호준·유승호

시저 역에는 배우 김준원과 손호준이, 브루터스 역에는 유승호가 활약하며, 안토니우스/카시우스 역에는 양지원이 합류했다. 손호준과 유승호, 양지원은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2024)의 인연으로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속, 시저가 죽음을 마주하며 외치는 유명한 대사 “브루터스, 너마저”의 브루터스가 바로 이번에 유승호가 연기하는 배역으로, 극의 전개상 중심을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이 밖에도 권력의 이양에 따라 배우들의 역할이 달라진다는 점은 주목해볼 부분. 암살당한 시저는 극 후반, 또 다른 시저의 이름을 지닌 ‘옥타비아누스’로서 등장, 브루터스와 해방자들의 혼란을 야기한다. 안토니우스와 카시우스를 연기하는 배우(양지원) 역시 동일 인물이다. 그는 극 후반 브루터스의 상상을 발현시킨 인물 ‘X’로서도 정체를 드러낸다. 무대 위 7명의 코러스 역시 각 장면마다 다양한 인물과 상황과 상징을 넘나들며 90분 내내 긴장감을 놓지 않는 극적 흐름을 이끈다.

권력의 정의에 대해 논하는 이 작품이, 작금의 시대 상황과 맞물리는 것 역시 어찌 보면 절묘하다. 누군가는 고전 특유의 묵짐함을, 누군가는 현시대 권력 다툼에 대한 메시지를 느낄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김정 연출은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어떻게 하면 연극적으로 강렬한 무대를 만들 수 있을까가 중요했다”고 말하며, 이어 “끝없이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의지를 지키는 인간의 저항심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끝에서 브루터스는 ‘로마가 수많은 해방자의 시체 위에 세워졌다’고 말한다. 권력 간의 다툼이 아니라 나라를 세우고 있는, 모든 저항을 해온 시민들의 의지가 우리가 사는 나라의 바탕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사진 토브씨어터컴퍼니)
(사진 토브씨어터컴퍼니)

오세혁 작가 역시 “연극을 준비하며 좋아하는 시 한 줄을 되뇌었다. 그 시가 ‘아무도 매장되지 않은 들판이란 없다’이다. 권력은 혼자가 아니라 그 힘이 발휘되도록 한 수많은 사람, 즉 국민들에게서 온다고 생각한다. 그 권력을 이어받은 자가, 힘을 어떻게 받았는지는 잊고 유지하는 것만 생각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르는가를 고려했다. 권력을 정의로 무너뜨리려는 미약한 한 명, 그리고 여러 명이 주는 에너지가 얼마나 파장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생각한 것 같다”며 이번 극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설명했다.

이 밖에도 무대와 화려한 퍼포먼스 또한 이 극의 묘미로 꼽을 수 있다. 마치 로마 공화정을 연상시키는 원형 입체무대는 단출하지만 시선을 집중시킨다. 무대와 객석 1열에 단차가 없는 극장의 형태가 관객을 마치 군중의 일부로 끌어들이는 듯하다. 또한 시저의 암살, 브루터스의 결말까지 비극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미장센은 연극의 지닌 가치를 보여준다.

연극 ‘킬링시저’는 오는 7월 20일까지 서강대학교 메리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Mini Interview
“뜨거운 배우들과 뜨거운 연출이 모였다”

Q&A 김정 연출, 오세혁 작가, 배우 김준원, 손호준, 양지원, 유승호

(※ 아래 기사는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질의응답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사진 토브씨어터컴퍼니)
(사진 토브씨어터컴퍼니)

Q  (유승호, 손호준 배우에게)이번 연극을 준비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 또, 영화와 드라마와 다른 연극만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유승호 “연극은 하나의 대본을 가지고 60회 이상의 공연을 해야 한다. 색다른 감정이 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하면 할수록 내가 느껴보지 못했던, 새로운 감정들과 장면들이 나오는 것들이 흥미로웠다. 이번에도 연출님과 배우, 코러스 배우들이 대본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떻게 하면 완성도 높은 연극을 만들 수 있을까 거듭 고민하고 있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손호준 “제가 생각했을 때 매체에서 하는 연기는 (테이크가 있다 보니)조금 더 완벽한 나의 감정 상태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 연극은 그럴 수 없다 보니 더 긴장되고 더 많이 연습하게 된다. 더 공부하게 되고 더 성장해가는 매력이 있는 것 같다. 또한 연극은 관객들과 한 공간에서 함께 호흡한다는 것 자체가 매력적이다. 무대 위에서 많이 긴장하고 떨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나고 나면 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연극은 힘쓰는 부분이 많아 에너지를 소비하는 것 외에는 배우들, 연출님, 작가님 등 좋은 사람들이 모여 대본을 보고, 함께 극을 만들어가는 즐거운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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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연극을 다시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는지.

유승호  “무대를 쉬는 동안 그 위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 합을 맞추던 모습이 그리웠다. 지원 형은 사석에서도 봤지만, 무대 위에서 더 빛나고 강렬한 배우이다. 한 번 더 무대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리고 멋있게 잘 해내서 무대에서도 뛰어다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손호준 “승호 씨랑은 전작에서 만났는데, 그때도 비슷했다. 무대 공포증이 있다 보니 각자 청심환도 먹고, 같이 떨고, 실수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도 했다. 연극이란 게 정말 묘한 작업인 거 같다. 끝나고 나면 또 하고 싶어진다. 뭔가에 이끌림에 끌려온 듯한 느낌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킬링시저’란 작품에 매료돼 무대 위 서 있게 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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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공연 내용이 조금 암울하고 무서운 장면도 있지만, 손짓, 안무들이 아름다운 선의 연장선처럼 보였다. 이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는가.

김정 연출“연출로서 한번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리고 비극적 이야기를 다룰 때 무대 위 사람, 구조물, 빛깔, 소리 등 모두가 아름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끔찍한 이야기일수록 아름다운 구도가 있어야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비극을 끔찍한 장면으로 재연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저렇게 아름답게 비명을 지를 수 있을까’ 하는, 상황과 상반된 틀을 보여주려고 했다. 자극적인 소스가 많은 세상에서 연극을 관람하기 위해 공연장을 찾아온 분들께 ‘다른 장르와의 차이를 보여주고 싶다’ 생각하며, 끊임없이 고민하며 만든 작품이다.”

(사진 토브씨어터컴퍼니)
(사진 토브씨어터컴퍼니)

Q  (양지원 배우에게)이번 배우들과 함께 연극을 하고 싶어 연출을 찾아갔다고 들었다. 이유는 무엇인가.

양지원“호준이 형, 승호랑 같이 한 번 더 연극을 해보고 싶었다. 두 분은 제 공연도 많이 보러 와 주신다. 처음에는 ‘죽어도 다시 (연극을)안 하겠다’고 하더니, 어느 날 무대가 그립고 하고 싶다고 하더라. 진심으로 뜨겁게 도전해보고 싶다고 해서, 고민하다 세혁 작가님께 전화를 드렸다. ‘뜨겁게 모인 배우들’이라고 하니, 굉장히 뜨거운 연출이 계시다고 하더라(일동 웃음). 그 후 승호 배우와 함께 연출님의 ‘붉은 웃음’이라는 공연을 보고 연출님께 매료됐다. 이후 순조롭게 모든 분야에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다. 호준 배우는 연기 정말 잘하는 분과 더블 캐스팅으로 하고 싶다고 해 (시저 역의)김준원 선배께 연락을 드리게 됐다. 그렇게 막을 올렸고, 상업 프로덕션에서 국립극장 작품을 보는 듯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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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지난 연극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서 유승호, 손호준 배우는 같은 역할이다 보니 함께 무대에 서는 순간이 없었는데, 이번에 함께 오르게 된 소감이 어떤가.

유승호 “손호준 배우님과 마주 보며 연기를 해보고 싶었다. 즐겁게 연기를 하는 배우였기 때문에 눈앞에서 (함께)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연습 때는 물론 무대 위에선 당연히 감히 얘기하지만, 너무 훌륭하고 잘 표현하는 배우이다. 남은 회차가 더 기대되는 시저이지 않을까.”

손호준“유승호 선배님(일동 웃음)과 전작에선 같이 호흡을 맞추진 못했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선배님과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연도 많이 봤었고. 진짜 잘한다. 같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계속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진짜 승호 씨가 정말 보여주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서 같이 호흡을 맞추는 저도 놀랄 때가 많다. 즐겁게 작업하고 있다.”

[ 이승연 기자 lee.seungyeon@mk.co.kr] [사진 토브씨어터컴퍼니]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82호(25.06.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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