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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너무 기준이 높아요”…자살률 급증한 사회에 경고장, 한류 전도사의 조언

‘한류 전도사’ 샘 리처드 교수 방한 인터뷰 높은 기준으로 발전 이룬 한국 암기 교육·자살률 급증 등 폐해 뛰어난 韓학생들 교실선 소심 실패 경험 늘어야 성공도 가능 미국 대학생들 K-드라마 열광 한류의 힘 앞으로도 엄청날 것

  • 이향휘
  • 기사입력:2025.06.02 10:40:40
  • 최종수정:2025-06-02 17: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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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전도사’ 샘 리처드 교수 방한 인터뷰

높은 기준으로 발전 이룬 한국
암기 교육·자살률 급증 등 폐해

뛰어난 韓학생들 교실선 소심
실패 경험 늘어야 성공도 가능

미국 대학생들 K-드라마 열광
한류의 힘 앞으로도 엄청날 것
샘 리처드 펜실베니아 주립대 교수가 지난주 건국대에서 한국 기술 혁신과 한류에 대해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샘 리처드 펜실베니아 주립대 교수가 지난주 건국대에서 한국 기술 혁신과 한류에 대해 매일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한국인들은 너무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눈부신 경제 발전도 이루었지만, 동시에 자살률도 높죠.”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다는 ‘한류 전도사’ 샘 리처드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사회학과 교수(건국대 석좌교수·65)의 지적이다. 지난주 건국대에서 만난 그는 청바지에 ‘서울 마이 소울’이라는 로고가 적힌 서울시 티셔츠 차림으로 시종일관 유쾌한 모습이었다. 학생 20명을 이끌고 방한해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얼마 전엔 한국 독자를 위해 인생 통찰을 담은 ‘스위트 스팟(Sweet spot)’을 출간했다.

그의 10대는 모범생과 거리가 멀었다. 드럼을 연주하고, 지게차를 운전하고, 페인트칠을 해 돈을 벌었다. 대학교 자퇴 위기에서 공부를 제대로 하겠다는 결심이 섰고, 그 후 40년간 강단에 섰다. 2018년 자신의 대학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방탄소년단(BTS)이 누구인지 모른다면 앞으로 세계에서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는 영상이 유튜브로 퍼지며 유명해졌다.

샘 리처드 펜실베니아 주립대 교수가 지난주 건국대에서 서울마이소울 티셔츠를 입고 한국 기술 혁신과 한류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샘 리처드 펜실베니아 주립대 교수가 지난주 건국대에서 서울마이소울 티셔츠를 입고 한국 기술 혁신과 한류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그가 처음 한국을 눈여겨 본 것은 40년 전이었다.

“1984년, 칠레와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군사정권을 연구하던 중이었어요. 한국인 대학원생이 한국 군사정권 얘기를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되었죠. 당시 한국은 칠레보다 가난했고, 미국 수출품들도 품질이 낮았어요. 가장 쌌던 금성 카세트테이프를 구매하곤 했는데 툭하면 고장이 났죠. 지금은 어떻습니까. 미국인들이 화장품을 살 때 프랑스산을 사지 않아요. 한국산을 삽니다. 한국에 대한 신뢰가 높아요. 문화 콘텐츠 품질도 압도적이죠.”

한류의 지속 가능성을 묻자 그는 전 세계 인구가 80억명이라는 수치를 제시했다. 성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얘기다. 다만 한국에서 되레 K컬처에 대한 반응이 시큰둥한 점을 의아해했다. “건국대 학생들 상당수가 K드라마를 보지 않더군요. 이야기가 진부하고 로맨스로만 끝난다면서요. 오히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학생들이 더 열광합디다.”

샘 리처드 펜실베니아 주립대 교수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이승환 기자]
샘 리처드 펜실베니아 주립대 교수가 매일경제와의 인터뷰 도중 환하게 웃고 있다. [이승환 기자]

최근 본 드라마 가운데 최고작으로 ‘사랑의 불시착’을 꼽았다. “이 드라마는 북한과 남한, 군사, 사랑과 우정, 가족, 소주 등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요. 스토리가 정말 좋아요.”

세계적인 문화 역량에 비해 한국 정치는 어떻게 평가할까.

“한국 정치인들이 절 만나고 싶어하고, 제 지지를 원하더군요. 다른 무엇보다 제가 얘기할 수 있는 건 부정부패에 대해서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높은 기준을 갖고 있다는 것이에요. 좋을 수도 있지만 효과적인 정부 운영엔 나쁠 수도 있지요. 한국에서는 사소한 일로도 ‘부패’ 프레임이 씌워집니다. 영부인이 명품 백을 받은 것처럼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세요. 자신과 저녁 만찬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수백만 달러 코인을 구매하도록 했죠.”

트럼프 대통령과 하버드 대학 간의 충돌에 대해서는 “어리석은 싸움”이라며 “트럼프는 미국을 국제무대에서 고립시키고 있으며, 결국 이 싸움은 대법원까지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도 자신의 정책을 강조하려고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겁니다.”

샘 리처드 펜실베니아 주립대 교수가 지난주 건국대에서 서울마이소울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이승환 기자]
샘 리처드 펜실베니아 주립대 교수가 지난주 건국대에서 서울마이소울 티셔츠를 입고 있다. [이승환 기자]

리처드 교수는 이제 글쓰기 과제를 내주지 않는다. 학생들이 챗GPT로 숙제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휴대전화를 들고 자기 생각을 대화하듯이 말하는 영상을 찍어 과제로 제출하라고 하죠.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하는데, 인공지능(AI)이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어요.”

교실에서 한국 학생들은 유독 손을 들고 질문을 하지 않는다. 수학이나 과학 성적이 뛰어난데도 자신을 평가하라고 하면 “보통이예요”라고 말한다. 서양 학생들이 “잘하고 있다”고 대답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는 “완벽하지 않으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겸손함은 자칫 자신감 부족으로 비칠 수 있다”며 “자신감은 스스로 문제 해결을 할 때 생긴다. 실수와 실패를 반드시 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사진설명

“한국인 25~34세 사이 70%가 대학 학위를 갖고 있지만, 대졸자를 위한 일자리가 충분하지 않죠. 그렇다 보니 사람들이 촘촘하게 모든 걸 등급화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은 성적을 내 스카이 대학 진학이 전부인 양요. 시험을 위해 암기하고 정답 찾기에만 집중하죠.”

그는 책 ‘스위트 스팟’에서 경쟁과 스트레스에 치인 한국인들에게 삶의 균형, 즉 ‘밸런스’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스위트 스팟은 최적의 지점을 의미하는 스포츠 용어로 책에선 인생 최고의 상황을 뜻한다.

“삶은 투쟁이자 질문입니다. 일, 학교, 인간관계? 모두 균형 문제죠. 불교 가르침처럼 ‘현재’에 집중할 때 ‘스위트 스팟’을 누릴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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