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에서 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장흥에는 유독 문인이 많기 때문이다. 『서편제』의 이청준,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한승원, 『녹두장군』의 송기숙, 『생의 이면』을 쓴 이승우 등 한국 현대문학을 빛낸 문인들이 장흥 출신이다. 시인으로는 김영남, 이성관, 이한성, 박순길이 있다.
고 이청준 선생은 1960년대 중반 문단에 나와 40여 년 동안 소설계를 이끌었으며, 장흥을 무대로 많은 작품을 썼다. 이청준 선생이 태어난 곳이 바로 회진면 진목마을. 마을 입구에서 좁은 골목을 돌아가면 이청준 선생의 단편 「눈길」에서 어머니가 “다섯 칸 겹집에다 앞뒤 터가 운동장이었더니라”라고 자랑한 생가가 보인다. 조그만 집 방에는 선생의 사진과 유물이 다소곳이 놓였고, 마당에는 지금도 사람이 사는 듯 장독대가 앉았다.
장흥의 바다에도 문향이 짙다. 장흥 회진면 신덕리 출신인 한승원이 대표적. 오래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온 그는 고향과 가까운 율산마을에 해산토굴이라는 집필실을 지었다. 율산마을 앞 바닷가에는 ‘한승원 문학산책로’가 조성돼 있는데 산책로를 따라 그의 시비가 서 있다. 한승원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경북 울진은 시인 김명인이 태어난 곳.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그는 『동두천』, 『머나먼 곳 스와니』, 『파문』 등의 시집을 통해 쓸쓸한 삶의 풍경을 특유의 섬세하고 서정적인 언어로 아름답게 음각해 왔다. 죽변항 뒤편에 자리한 까마득한 절벽인 용추곶에 서면 시인이 경험했던, 그리고 시인을 끝내 놓아주지 않았던 바다와 마주할 수 있다. 파도에 깎여 칼처럼 날카로워진 바위를 또 다른 파도가 달려와 깎고 또 깎는다. 그러면서 파도는 제 몸도 산산이 부순다. “매운 실패가 생살을 저며내는 동안에 파도는/ 부서진 제 조각들 시리게 끌어안는다.”(시 ‘파도’ 中)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주변함 용추곶에는 또 다른 볼거리가 있다. SBS 드라마 ‘폭풍 속으로’의 세트장이다. 드라마의 주인공 현준과 현태의 집과 교회, 선착장, 대나무숲길이 그대로 남아 있다. 바닷가 작은 마을은 1910년에 세워진 하얀 등대까지 어우러져 제법 이국적인 정취를 뽐낸다. 엽서에나 나올 것 같은 주황 지붕의 예쁜 교회당이 서 있고 아래쪽에 아담한 집이 자리 잡고 있다.
[글과 사진 최갑수(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96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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